[김상욱 교수의 과학 에세이]달에서 본 지구, 지구에서 본 달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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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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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욱 부산대 물리교육과 교수
김상욱 부산대 물리교육과 교수
1년 중 모두가 달을 유심히 쳐다보는 날이 있다. 추석이다. 옛날에는 인공의 불빛이 거의 없었다. 밤의 어둠 속에서 빛을 밝히는 것은 달의 몫이었다. 따라서 달이 가장 밝은 날은 중요한 의미를 가졌으리라. 모든 이가 달이 날마다 변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시절 달은 분명 밤의 지배자였다. 달은 서양에서 불길한 존재로 여겨지기도 한다. 동양에서는 달이 태양과 함께 음양의 조화를 이루는 쌍이다. 한가위 대보름, 서양인들이 늑대 울음소리 속에서 두려워할 때 우리는 축제를 한다.

밤은 연인들의 시간이다. 왜 그런지 설명할 필요 없으리라. 그래서 달은 감미로움이기도 하다. 드뷔시의 피아노곡 ‘달빛’은 호수 표면에서 사뿐히 부서지는 달빛의 모습을 생생히 재현한다. 인상주의 음악이라 할 만하다. 이 곡을 듣다 보면 감미로움은 미각이라기보다 청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연인들에게는 촉각일지도 모르겠지만. 음악가 장세용의 ‘달에서의 하루’란 곡이 있다. 이 곡은 뉴에이지 ‘달빛’이라 할 만하다. 여기서는 톡톡 튀는 감미로움이 느껴진다. 재미있는 것은 곡의 제목이다. 현대의 달은 빛으로서만이 아니라 우리가 가서 밟을 수 있는 대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달에서는 푸른색의 지구가 보인다. 인공위성 사진의 지구를 하늘에 띄웠다고 보면 된다. ‘지구빛’은 호수에 부딪혀 부서지지 않아도 그 자체로 숨 막히도록 아름답다. 달에서 본 지구에는 이상한 점이 있다. 지구가 움직이지 않고 하늘에 고정되어 있다. 달은 자전 주기와 지구 주위를 도는 공전 주기가 같다. 이 때문에 지구에서는 달의 한쪽 면만 볼 수 있다. 달이 공전하면서 같은 속도로 자전을 하기 때문에 달에서 보기에 지구는 정지 위성같이 항상 그 자리에 있게 된다.

달에서의 하루는 자전 주기인 27.3일이다. 지구에서처럼 하루의 3분의 1을 일한다면 9일을 꼬박 일해야 퇴근할 수 있다. 달에 사람이 살았다면 같은 자리에 항상 묵묵히 떠있는 지구를 바라보며 고된 삶의 위로를 구했을지 모른다. 달에서는 ‘한 달’이라는 개념이 없다. 위성이 없기 때문이다. 달에서의 1년은 지구와 거의 같다. 지구와 함께 태양 주위를 공전하기 때문이다. 달의 철학자는 우리와 다른 우주론을 만들었을 것이다. 지구의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주를 지상계와 천상계로 나누었다. 그 경계는 대략 지구와 달 사이에 있다. 지상의 물질은 물, 불, 흙, 공기, 네 가지 원소로 구성되지만 천상은 에테르라는 원소로 되어 있다. 천상의 물체들은 완벽한 구(球)형을 이루며 시작도 끝도 없는 원 운동을 한다. 달의 철학자는 하늘에 고정되어 있는 푸른색 지구를 보며 천상계를 이루는 물질이 다양하다고 생각했을 거다. 그러나 지상계의 물질은 단순하다. 오직 흙만 있다. 더구나 컬러풀한 지구가 완벽한 구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을 거다.

갈릴레이는 망원경으로 달을 본 첫 번째 과학자다. 그가 본 것은 울퉁불퉁한 표면의 모습이었다. 완벽한 구가 아니었던 것이다. 2000년간 믿어온 아리스토텔레스가 틀린 거다. 달의 과학자라면 겪지 않았을 충격이다. 뉴턴은 울퉁불퉁한 돌덩어리인 달이 왜 지상계의 다른 물체처럼 땅으로 낙하하지 않는지 의문을 가졌다. 뉴턴의 답은 놀라운 것이었다. 달은 낙하하고 있지만 지상에 닿지 않을 뿐이다. 뉴턴이 달에 살았다면 이런 답을 찾기 어려웠을 거다. 달에서 본 지구는 하늘에 그냥 고정되어 떠 있으니까. 설마 지구가 달 주위를 도는데, 하필 달이 똑같은 주기로 자전한다고 생각하기는 어려웠을 거다. 과학자들은 우연을 싫어한다. 뉴턴 역시 지구에 태어난 것을 감사해야 한다.

달은 불길한 것이자 축제의 대상이다. 달빛 속에서 프러포즈를 할 수 있지만 곤히 잠든 적들을 향해 기습공격을 할 수도 있다. 누군가는 달을 보며 이야기를 만들지만, 또 누군가는 우주의 이치를 깨닫는다. 달에서 보면 우리가 사는 지구도 하나의 행성이다. 달에서 보는 세상은 우리가 보는 것과 다르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올바른 세상이다.

살다 보면 남과 다툴 일이 있다. 여기에는 자기가 옳고 남은 틀리다는 생각이 깔린 경우가 많다. 지구에서 보는 우주만이 옳은 것이 아니라 달에서 본 우주도 옳다. 달이 지구 주위를 도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달 위에 정지해 있는지도 모른다. 달에 한 번 갔다 오는 것은 어떨까.

김상욱 부산대 물리교육과 교수
#한가위 대보름#달#갈릴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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