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영우 칼럼]북한 과학기술의 힘 어디서 나오나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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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빈국 북한, 핵무기에 해킹까지… 세계 놀라게 한 과학기술 확보
과학기술에 최고인재 투입, 고급 주택에 파격적 대우… 시행착오에 관대한 문화
‘나로호’처럼 실패하면 여론 뭇매, 한국이 고쳐야 할 점 돌아봐야

천영우 객원논설위원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아산정책연구원 고문
천영우 객원논설위원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아산정책연구원 고문
북한은 경제 규모에서 우리의 44분의 1에 불과한 세계 최빈국이고 국가예산은 우리 국방예산의 5분의 1이다. 그런데도 핵무기를 개발하는 동시에 이를 괌 미군기지와 미국 본토까지 운반할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개발을 향해 거침없이 질주하고 있다.

2016년 2월 7일 ‘광명성 로켓’으로 ‘지구관측위성’이란 물체를 지구궤도에 올린 데 이어 지난달 22일에는 우주공간으로 쏘아 올린 무수단 중거리 미사일을 대기권으로 재진입시킬 능력도 보여줬다. 핵탄두를 무수단 미사일에 장착할 수준으로 소형화 경량화에 성공하면 미국의 대북 확장억지에 핵심적 역할을 하는 괌 기지까지 북핵 위협에 노출되는 상황이 된다.

사이버 분야에서도 북한의 실력은 예사롭지 않다. 2014년 김정은을 희화화한 영화 ‘인터뷰’를 제작한 소니픽처스에 사이버공격을 감행하는가 하면 올 2월엔 방글라데시 중앙은행을 해킹해 8100만 달러를 털어가는 실력을 발휘했다. 북한이 과학기술 분야에서 이렇듯 세계를 놀라게 하는 진전을 이룩한 비결은 무엇일까?

첫째, 이공계 최고 인재들을 본인 의사와는 무관하게 과학기술 인력으로 양성하고 이를 북의 사활이 걸린 핵무기, 미사일, 사이버 분야에 투입하는 체제와 집중력이다. 민간기업이 존재하지 않는 북한에서 자연계 영재들이 실력을 발휘할 곳은 제2경제위원회, 제2과학원, 국가우주개발국 등을 중심으로 한 군사과학 분야 국책연구소와 군수산업이다. 정보기술(IT) 분야 수재들은 정찰총국의 해커부대에 들어가 ‘최고 존엄’을 해치는 외국 기관과 기업을 응징하고 정보와 기술을 훔치는 사이버 전사로 활약한다.

둘째, 북한의 유별난 과학기술자 우대 정책이다. 김정은이 5월 7차 당 대회에서 제시한 과학기술강국과 지식경제강국 건설 비전은 허황된 야심으로 가득하지만 과학기술자들의 심장을 뛰게 하는 약속이 들어 있다. “과학자, 기술자들을 귀중히 여기고 내세워주며 그들이 과학연구 사업에 전심할 수 있도록 사업 조건과 생활 조건을 보장해 줘야 한다”는 내용은 북한에서 가장 신속하고 확실하게 이행되고 있는 약속이다.

평양에서 최고급 주상복합아파트 19동과 150개의 부대시설을 갖춘 미래과학자거리를 작년 11월 완공한 데 이어 올 3월 제2의 미래과학자거리(여명거리) 건설을 지시한 것이 과학기술에 부여하는 김정은의 정책적 우선순위를 상징한다. 최고급 주택에다 전용 백화점에서 생필품을 구입할 상품권까지 제공받는 파격적 대우에 감읍한 과학기술자들은 더욱 사명감에 불타 연구개발에 온몸을 던질 것이다. 국제적 제재와 고립도 연구개발을 막을 수는 없다.

무엇보다 기술개발 과정에서의 시행착오에 관대한 문화가 있다. 로켓 발사에 여러 번 실패해도 책임자를 문책했다는 소식은 없다.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도 과학기술자들이 주눅 들지 않고 책임 추궁을 당할 걱정 없이 성공할 때까지 연구개발에 몰두할 풍토를 만들어주는 것이 북한의 가장 큰 힘이다. 외국으로부터 기술 도입에 의존하지 않고 역설계를 통해 ‘주체적’으로 기술을 개발해야 하는 북한의 처지에선 실패는 성공으로 가는 길에서 당연히 거치는 필수적인 과정으로 여겨진다. 실패에 대한 공포심이 지배하는 우리의 연구 풍토와는 대조적이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나로호’ 개발 과정에서 보여주었듯이, 첫 시험 발사에 실패하면 여론의 몰매를 맞고 예산과 인력이 삭감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우리는 2억 달러를 들여서라도 1단 로켓 완제품을 러시아에서 구입하는 안전한 방법을 선택했다. 우리 기술로 제작한 한국형 발사체를 언제 시험 발사할 수 있을지는 아직도 불확실하다. 북한이라면 분명 이 돈을 수십 번 시험 발사하여 기술 자립을 달성하는 데 투자했을 것이다.

무기 개발에서도 북한은 군사적으로 중요한 기술이면 성능이 열악한 시제품 수준이라도 일단 배치하고 계속 개량해 나가는 방법을 택한다. 북한이 1980년대부터 배치한 스커드 미사일의 정확도는 표적의 반경 2km 내에 떨어질 확률(CEP)이 50%에 불과하다. 우리의 기준으로 보면 표적에서 수십 m만 벗어나도 불량품으로 간주되어 개발책임부서는 감사와 실패 경위 소명에 시달린 나머지 개발 의욕을 상실하기 십상이다. 그 대신 일단 무기체계가 배치되면 기술 진보에 따른 성능 개량에는 소홀한 경향이 있다. 북한의 과학기술 정책에서 타산지석으로 삼을 것은 없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천영우 객원논설위원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아산정책연구원 고문
#북한#광명성 로켓#지구관측위성#나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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