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술을 하루에 10잔 이상 마시는 사람이 2잔 이하로 줄이면 건강에 얼마만큼 좋은 영향을 끼칠까? 여기에 담배까지 끊는다면…. 정부가 금연 프로그램, 절주 운동, 건강검진 등 건강예방 관련 투자를 늘리면 당뇨병 고혈압 등 만성질환자를 대폭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는 본보가 질병관리본부와 함께 만성질환이 본격적으로 발생하기 시작하는 50대 중장년층 20만 명의 빅데이터 100만 건을 시뮬레이션한 결과다. 》
금연상담사가 금연클리닉에 참가한 흡연자에게 건강한 폐와 흡연자의 폐를 비교하며 폐질환에 대해 설명하고있다. 정부가 건강 예방 투자를 늘리지 않으면 미래 노인 의료비를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동아일보DB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술을 하루 평균 10잔 이상 먹고 흡연을 하는 사람(건강고위험군)들이 만성질환에 걸릴 확률은 점차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지난해 50대 건강고위험군의 고혈압 발생률은 29.7%로 2009년(21.6%)의 1.4배로 늘었다. 당뇨병 유병률도 비슷한 상황이다. 지난해 50대 건강고위험군의 당뇨병 유병률은 12.6%로 2009년(8.3%)의 1.5배로 증가했다.
건강고위험군을 정부가 적극적으로 관리하면 만성질환 유병률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건강예방 예산을 늘려 건강고위험군을 관리할 경우 50대 당뇨병 환자는 최대 35.9%, 고혈압 환자는 최대 13.6%까지 줄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만성질환자 수의 감소는 건강보험 재정에 상당한 도움이 된다. 2012년 고혈압, 당뇨병, 비만환자에게 쓰인 건강보험 지원액은 총 3조9173억 원. 건강예방 투자를 늘리면 이 금액의 21.5%인 8454억 원을 아낄 수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양병국 질병관리본부장은 “건강예방 사업 확대의 효과가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입증됐다”며 “현재 보건의료 예산이 주로 말기 중증질환 환자에게 투입되고 있는데, 예방 투자를 확대하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의 건강예방 투자는 걸음마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이 보건의료 서비스에 투자하는 총 비용(국민의료비) 중 예방에 투자하는 비율(예방의학 예산)은 3%. 하지만 이 수치는 과장된 측면이 있다.
국내 예방의학 예산은 국민건강증진기금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국민건강증진기금의 64.9%는 건강보험 재정을 보조하기 위해 쓰였다. 건강예방보다는 병을 치료하는 데 쓰였을 가능성이 높다. 질병관리본부는 “이런 상황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면 실제 예방의학 예산은 1.7%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캐나다(5.6%), 핀란드(5.8%), 스웨덴(3.6%), 미국(3.0%) 등 선진국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예방보다 치료에 초점을 맞춘 의료비 패러다임’으로는 건강보험 적자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고령의 만성질환자에게 쓰이는 의료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전체 건강보험 지출 가운데 65세 이상 노인에게 쓰인 것은 13.5%. 이 비중은 2017년 24.4%, 2026년에는 62.5%까지 증가한다.
만성질환자에게 쓰이는 비용도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2012년 건강보험 지출 중 만성질환자에게 투입되는 비율은 38.8%(14조 원)로 2007년(8조 원)의 1.75배로 증가했다. 이 비율은 2020년까지 42.1%로 증가할 예정이다. 이런 추세가 지속될 경우 건강보험 재정은 2020년 7조2168억 원, 2030년 28조6242억 원의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학계에서는 이미 예방 투자의 효과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세계적인 의학저널 ‘랜싯’에 따르면 매일 1인당 1∼2달러를 건강예방에 투자하면 연간 3200만 명의 사망자를 줄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창현 질병관리본부 만성질환관리과장은 “의료비 지출의 무게중심을 예방에 두지 않으면 미래 노인과 만성질환자의 의료비를 감당하지 못할 우려가 높다”며 “국민의 생활습관을 개선하는 데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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