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분은 2개월 전에 비해 육식을 줄인 것 같습니다. 남성분은 최근 육식을 많이 한 것 같고요.”
신경훈 한양대 해양환경과학과 교수는 기자의 머리카락을 분석한 뒤 이렇게 말했다. 머리카락을 질량분석기에 넣고 분석하는 데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실험에 참가한 신선미 기자(26·여)는 실제로 10일 동안 밥과 채소만 먹었다. 회식 자리에서 닭다리를 하나 먹었을 뿐 양배추로 배를 채웠다. 기자(29·남)는 삼겹살과 통닭 등 끼니마다 고기를 먹었다. 머리카락으로 식성을 파악할 수 있다는 말에 식단을 조절한 것이다. 신 교수는 “육식을 할 경우 ‘무거운 질소’의 비율이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며 “질소와 탄소의 비율 변화로 식성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소가 먹는 음식으로 원산지 판별 가능
질소에는 무거운 질소(15N)와 평범한 질소(14N)가 있다. 무거운 질소는 원자를 이루는 중성자가 한 개 더 많다. 자연계에 0.37%만 존재하지만 생명체 안에서는 음식을 섭취하고 배설하는 대사에 따라 비율이 변한다.
동물이 섭취한 질소는 암모니아(NH3) 형태로 배출된다. 이때 가벼운 질소가 먼저 수소와 반응해 빠져나가기 때문에 생물의 몸에는 무거운 질소가 남는다. 먹이사슬에서 이런 현상이 반복되면 상위단계인 육식동물의 몸에는 무거운 질소가 점점 많이 쌓인다. 신 교수는 “반감기가 있어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다른 원소로 변하는 방사성동위원소와 달리 안정동위원소는 거의 변하지 않는다”며 “생태계 먹이사슬이나 고대 인류의 식성을 파악할 때 안정동위원소를 이용한다”고 설명했다.
안정동위원소로 동물이 무엇을 먹었는지 알아내면 어디서 자랐는지도 판별할 수 있다. 이광식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환경과학연구부 책임연구원은 나라마다 소의 먹이가 다른 점에 착안해 소에 남은 안정동위원소로 원산지를 판별했다.
이 책임연구원은 미국 호주 뉴질랜드 한국산 쇠고기 살점에 있는 탄소를 분석했다. 목초를 먹는 뉴질랜드 소는 옥수수 사료를 주로 먹는 미국 소보다 무거운 탄소(13C)가 적었다. 목초는 가벼운 탄소(12C)를 많이 흡수하기 때문에 옥수수보다 무거운 탄소의 비율이 낮다. 사료와 목초를 함께 먹는 한우는 무거운 탄소의 비율이 뉴질랜드 소와 미국 소의 중간이었고 호주 소는 무거운 탄소의 비율이 다양하게 나타났다.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되며 DNA를 이용한 원산지 판별법이 개발됐지만 호주 소와 품종이 같은 경우가 많아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이 책임연구원은 “‘종’을 구별하는 DNA 분석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소가 무엇을 먹었느냐가 중요한 판단 자료”라고 말했다. ○ “채소와 땅은 둘이 아냐”
식물이 섭취하는 물과 흙이 나라마다 달라 중국산과 한국산 배추의 구별도 가능하다. 중국의 배추 재배지는 깊은 내륙에 있어 물(H2O)을 구성하는 산소가 국내 재배지보다 가볍다. 바다에서 생성된 수증기가 이동하면 무거운 산소(18O)로 이뤄진 물방울이 먼저 떨어져 내륙으로 갈수록 가벼운 산소(16O)의 비율이 높은 비가 내리기 때문이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이를 이용해 ‘배추 원산지 판별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이 책임연구원은 “중국에서 수입한 배추는 대부분 한국과 같은 종이기 때문에 DNA 검사로 구별할 수 없다”며 “안정동위원소로 원산지를 구별하는 연구는 올해 안에 성과가 나올 것”이라고 자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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