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뷰티]이성진 교수의 아이러브 e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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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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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보기’ 수정체, 노인용 안경 디옵터의 6배!

눈을 카메라에 비유하면 수정체는 렌즈에 해당한다. 직경 24mm의 눈에서 수정체는 직경 10mm, 두께 4mm나 되는 중요한 부분. 홍채 뒤쪽에 위치한 수정체는 빛이 들어오는 투명한 창문이다. 사물의 초점을 망막(필름)에 맺게 하는 돋보기이기도 하다. 노인들이 사용하는 보통 돋보기가 3디옵터인데 수정체는 무려 18디옵터나 되니까 엄청나게 두꺼운 돋보기인 셈.

1755년 독일 괴팅겐 의대 대학원생이었던 28세의 요한 진은 수정체가 눈에 보이지 않는 가는 밧줄들에 의해 눈 속 공중에 떠 있음을 알게 됐다. 밧줄이 끊어지면 수정체는 눈 속에서 기울어져 시력이 소실될 수 있다. 섬모소대라고도 불리는 이 밧줄들은 ‘진의 띠’라고도 불린다. 진은 대학원을 졸업한 후 괴팅겐대의 식물원장을 겸하며, 새로운 난초를 발견했다. 해부학과 식물학을 오가며 왕성하게 활약하던 진은 아쉽게도 32세의 나이에 요절했다.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백일홍의 학명이 지니아(Zinnia)인 것을 알게 됐다. 백과사전에는 명명법의 아버지 칼 린네가 백일홍의 이름을 붙였다고 돼있다. 스웨덴 웁살라대의 린네도 의학자면서 식물학자였고, 진보다는 20세 연상이었으나 동시대 사람이었다. 혹시 백일홍, 진, 그리고 린네는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린네는 19명의 제자가 있었다. 그는 제자들을 세계 곳곳에 보내 꽃을 수집했다. 린네는 제자들이 수집한 꽃들을 분류하고 새 이름을 붙였다. 제자들 중에는 세계를 돌며 호주에서 꽃을 채집했던 솔란데르, 3년간 미국에서 꽃을 연구한 칼름, 일본을 방문한 툰베리 등이 있었는데, 아쉽게도 진이라는 이름은 발견할 수 없었다.

이번엔 백일홍에 대해 검색해 보았다. 여러 날을 헤매다 우연히 꽃에 대한 민속 구전 설화를 보게 되었다. 1520년대 멕시코 아스텍족 최후의 황제였던 몬테수마의 정원이 이곳을 침략했던 스페인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안겨준 이야기가 있었다. 이 정원에 있던 백일홍은 단연 눈에 띄는 꽃이었다. 백일홍이 유럽에 들어온 것은 1750년이었는데, 린네는 자신의 제자 진을 기리며 이 꽃의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1800년대 말 빅토리아 여왕의 시대, 백일홍에는 ‘떠난 친구에 대한 추억들’이란 꽃말이 붙여졌다. 백일홍은 순박하고, 우아하며 예쁘다. 수정체를 공중에 띄운 밧줄에는 짧은 생을 살았지만 눈과 꽃에 영원히 자취를 남겼던 ‘진’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아름다운 꽃이 된 ‘진’, 그런 이름을 지어준 린네. 둘은 비록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누구보다도 가까운 스승과 제자였다.

안과 의사들은 혼탁해진 수정체(백내장)를 제거하는 수술을 할 때 린네와 진의 우정을 간직한 ‘진의 띠’를 손상시키지 않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이성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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