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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3월 7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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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1년은 찰스 다윈에게 있어, 또 진화론에 있어 결정적인 해다. 그해 4월 다윈은 케임브리지대 신학부를 졸업했다. 그는 목사가 될 생각은 조금도 없었지만 아버지의 뜻이 워낙 강해 그대로 시간을 보내다간 목사가 될 운명이었다. 그해 여름 운명을 바꾸는 일이 생겼다. 영국 해군이 2년 예정으로 탐사 여행을 떠나기로 하고 전함 비글호에 탑승할 박물학자를 모집한 것이다. 케임브리지대의 식물학자 존 헨슬로 교수는 다윈을 추천했다.
다윈은 당장 수락했지만 비글호에 승선하기까지 우여곡절을 겪었다. 아버지의 완강한 반대는 외삼촌의 도움으로 간신히 극복했고, 비글호 함장 로버트 피츠로이의 까다로운 면접을 겨우 통과했다.
1831년 12월 27일 오전 11시. 비글호는 영국을 떠나 장도에 올랐다. 비글호를 타고 항해한 때는 다윈에게 있어 생애 최고의 기간이었다. 기항지마다 신기한 동식물이 널려 있었고, 다윈은 표본을 채집하느라 바빴다. 이때 채집한 자료들이 진화론의 바탕이 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다윈을 태운 비글호는 남미, 갈라파고스제도, 호주, 아프리카 등을 거쳐 1836년 10월 2일 영국으로 돌아왔다. 다윈의 손에는 여행 동안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한 18권의 노트가 들려 있었다.
이처럼 비글호는 진화론 탄생에 결정적 산파역을 했고, 또 다윈 덕분에 그 시절 함선 가운데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배가 됐다.
‘비글호 항해’를 되새기는 행사가 영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한창이다. 한국에선 권영인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이 동아사이언스의 후원으로 비글호의 항해를 따라가는 ‘장보고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경기 과천시 국립과천과학관에서 5월 10일까지 열리는 ‘다윈전’(02-3679-6901∼2)에선 비글호 모형을 볼 수 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