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르르 쾅’…그 찰나를 알고 싶다

  • 입력 2006년 7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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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계속되는 장맛비로 전국이 몸살을 앓고 있다. 최근 비가 내리는 기상현상을 물리학 원리로 흥미롭게 설명한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한마디로 비가 폭동과 공통점이 있다는 것. 겉으로는 아무 상관도 없어 보이는데 말이다.》

● 쌀더미 무너지는 순간

냄비에 물을 담고 가열하면 점점 뜨거워지다 100도에 이르자마자 끓기 시작한다. 이처럼 작은 변화가 계속되다 특정 지점(임계점)을 지나는 순간 전혀 다른 상태로 바뀌는 것을 물리학에서는 ‘임계현상’이라고 부른다. 물은 0도와 100도가 임계점에 해당한다.

물에서 임계현상이 나타나게 하는 요인은 온도다. 임계점에 다다르려면 ‘외부’에서 온도를 인위적으로 변화시켜 줘야 하는 것.

이와 달리 ‘스스로’ 변화해 임계점에 도달하는 것도 있다. 예를 들어 쌀알을 한 지점에 계속 떨어뜨린다고 상상해 보자. 원뿔 모양으로 쌓일 것이다. 떨어뜨리는 쌀알의 수가 늘어날수록 원뿔의 기울기는 점점 가파르게 된다. 그러다 특정한 기울기에 도달하면 쌀알을 한 톨 떨어뜨리는 순간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산사태처럼 말이다.

이 순간의 기울기가 바로 임계점이다. 쌀더미 원뿔 모선의 기울기는 쌀알을 떨어뜨리는 사람이 인위적으로 변화시키는 게 아니다. 언제까지 기울어지다 무너질지는 쌀더미에서 자체적으로 결정된다. 물론 쌀의 모양이나 무게, 떨어뜨리는 높이 등 여러 외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빚어지는 결과다.

쌀더미처럼 스스로 임계점에 도달해 상태를 변화시키는 것을 특히 ‘자기조직 임계현상(self-organized criticality)’이라고 한다.

● 수증기 한 방울이 폭우 만들어

미국 산타페 연구소 올레 피터스 박사와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 데이비드 닐린 교수팀은 비가 내리는 것도 자기조직 임계현상의 하나라고 주장했다.

연구팀은 열대기후 지역 4곳에서 인공위성이 측정한 수증기량과 비가 쏟아지는 시점 간의 관계를 통계적으로 분석했다.

바다에서 증발한 수증기는 대기 중으로 끊임없이 유입된다. 대기 중의 수증기량은 점점 증가하다 어느 순간 대기가 더 이상의 수증기를 포함할 수 없을 정도에 다다른다. 바로 이때 수증기가 추가로 유입되면 비가 쏟아지게 되는 것이다.

수증기량이 임계점 직전까지 도달했을 때의 대기는 비가 올락말락하는 매우 ‘민감’한 상태다. 이 때문에 아주 적은 양의 수증기라도 갑자기 폭우를 내리게 할 수 있다. 단 한 톨의 쌀알이 쌀더미를 무너뜨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비가 내리는 순간은 사람이나 수증기 공급원인 바다가 조절하지 못한다. 대기에서 자체적으로 결정된다. 따라서 강우(降雨)도 자기조직 임계현상이라는 것.

피터스 박사는 “지역별 강우 자료에 자기조직 임계현상을 적용한 컴퓨터모델을 개발하면 비가 내릴 시점을 지금보다 더 정확히 예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울대 물리학부 김두철 교수는 “기상현상을 물리학 원리로 설명한 것은 새로운 시도”라며 “강우 현상이 자기조직 임계현상인지 확신하기 위해서는 좀더 많은 데이터가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강우지역이 바다에서 얼마나 떨어졌는지 또는 기온이 얼마인지 등 다양한 요인도 임계점 형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 연구결과는 물리학 분야 권위지 ‘네이처 피직스’ 6월 1일자에 실렸다.

● ‘때’가 되면 터진다

우리 주변에서도 자기조립 임계현상으로 설명 가능한 사례를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이래저래 일이 꼬여 화가 나는 걸 하루 종일 꾹 참고 있다가 신경을 건드리는 사소한 말 한마디에 쌓였던 감정이 폭발하는 경우가 있다. 인내심의 ‘임계점’을 넘어선 셈.

사회문제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다 어느 새 수백 명이 된다. 사람들의 감정이 점점 격앙되다 ‘임계점’에 다다르면 ‘평화시위’가 ‘폭동’으로 바뀐다.

임소형 동아사이언스 기자 soh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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