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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6년 5월 8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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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후 3시. 옆 부서 김 과장의 제의를 H사의 이용대(38·서울 노원구 월계동) 과장은 다음으로 미뤘다. 전날 시작된 몸살 기운 때문.
한 시간쯤 지났을까. 이번엔 대학 동문이자 입사동기로 지방에서 수년 동안 함께 근무했던 오모(37·서울 중랑구 신내동) 과장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오 과장은 5년 전 직장을 옮겼다.
“저녁에 시간 좀 내지?”(오 과장)
낮게 깔린 음성에 가슴이 철렁한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나와 보면 안다”고 짧게 답했다. 석 달 전 오 과장은 직장생활의 고민을 오전 2시까지 털어놓았다.
오후 7시 반. 서둘러 도착한 약속 장소엔 낯선 얼굴 둘이 더 있다.
“인사해. 우리 직장 동료들이야. 여기 이 대리는 서른한 살이야. 좋은 여자 좀 소개시켜 주라고.”(오 과장)
이런! 허탈하면서도 마음이 놓인다.
반갑게 맥주 두 병을 시켜 4개의 빈 잔을 채운다. 언제부터인가 술을 ‘시작’하기 전 맥주를 마신다. 이어 담배를 오 과장에게서 받아 문다. 대학 때 배운 담배를 1년 전 거의 끊었지만 술을 마실 땐 예외다.
첫 주문은 등심 4인분에 소주 2병. 첫 잔은 습관적으로 한 번에 들이켠다. 30분이 채 지나지 않아 등심과 소주가 바닥난다. 소주 2병과 삼겹살 3인분을 추가. 평소 고기를 좋아하지만 술자리에선 더 잘 들어간다.
그렇지만 고기와 함께 나오는 야채, 샐러드, 김치, 물김치 등 식물성 안주에는 손이 가지 않는다. 쌈에 고기를 싸 먹는 것도 처음 두세 번뿐. 야채가 몸에 좋다고 하지만 취기가 돌면 싸 먹기가 번거롭다.
‘지난 황금연휴를 출장으로 보냈다’는 오 과장의 하소연 등 어느 직장이든 넘쳐 나는 애환을 나누니 어느덧 오후 9시 반.
저녁식사를 시키면서 자리를 정리한다. 절반 남은 맥주에 3분의 1 남은 소주를 섞어 네 명의 잔을 고루 채운다. 안주는 남겨도 술은 남기지 않는 게 술자리 에티켓.
소주 한 병 반 정도를 기분 좋게 마셨고 오후 10시를 넘지 않았으니 이만하면 양호한 술자리였다.
“자, 오늘은 그만 헤어지자. 몸이 안 좋다.”
무슨 말이냐는 듯 오 과장은 팔을 잡아끈다. 하긴 술자리는 예상보다 2배는 길어지기 마련. 카페에서 이어진 술자리는 밤 12시를 넘겼고 아내의 타박은 예정된 수순. 아이들 얼굴도 보지 못하고 쓰러진다. 주 1, 2회는 흔히 그렇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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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연 기자 larosa@donga.com
이 기사는 본보와 대한내과학회 생활습관병위원회가 공동 기획해 진행하고 있습니다.
■ 이 과장 일행 4인의 술자리 열량 따져 보니
이 과장의 술자리 건강법은 몇 점이나 될까.
울산대 의대 서울아산병원에 따르면 이날 술자리의 열량은 총 1만2580Cal, 개인별로는 3145Cal에 이르렀다. 술의 열량을 빼더라도 각각 7860Cal, 1965Cal. 성인 남성의 하루 권장 열량은 2500Cal다.
인제대 의대 서울백병원 가정의학과 강재헌 교수는 “안주를 보면 몸에 해로운 포화지방산과 콜레스테롤의 함량이 높고 비타민 무기질이 많은 야채는 적어 영양 불균형이 심하다”고 지적했다. 증상은 없더라도 장기적으로 혈관계 질환을 우려할 수 있다는 진단이다.
음주량도 하루 알코올 권장량인 40∼50g(소주 2홉들이 반 병)을 넘어 알코올성 간질환, 위장 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
맥주 소주 양주를 섞어 마시면 두통을 일으키는 물질이 서로 화학반응을 일으켜 독성이 강해진다. 술을 마시면서 담배를 피우면 몸에 더욱 해롭다.
연세대 의대 세브란스병원 정신과 남궁기 교수는 “알코올은 위액 분비를 증가시키고 위와 식도를 잇는 괄약근을 헐겁게 해 식도염을 일으킬 수 있다”며 “소주 한 잔을 해독하는 데 1시간이 걸린다”고 설명했다.
알코올은 위와 장에 빨리 흡수돼 음주 후 토할 경우 음식물과 위액이 주로 나오게 된다. 체내 전해질의 균형이 깨지고 이튿날 술 깨는 데 방해가 된다.
강 교수는 “안주를 잘 먹어야 몸이 덜 상한다는 한국적 음주 문화 때문에 지나치게 잘 먹는다”며 “술을 피할 수 없다면 가벼운 안주 위주로 하고 밥이나 냉면은 생략하라”고 조언했다.
전문가 진단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음복이다 약술이다 해서 음주에 대해 관대한 인식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음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술 권하는 풍토 등 왜곡된 음주 문화가 생겼다. 아직도 집단 폭음을 즐기거나 주량을 개인의 능력으로 보는 사람도 많다.
이로 인한 폐해는 말할 수 없이 크다. 성인 1인당 알코올 소비는 슬로베니아에 이어 전 세계 2위이고 평생에 한 번이라도 ‘알코올중독’으로 진단되는 성인의 비율이 22.0%에 이른다. 미국(13.7%) 독일(12.6%) 대만(7.5%)에 비해 월등히 높다.
알코올은 신체의 모든 장기에 영향을 미친다.
암의 발생 위험을 10배나 높인다는 연구결과가 있을 뿐 아니라 간 구강 후두 식도 췌장 직장 등의 암에 주원인이기도 하다.
또 식도염 위염 위궤양 등 위장 질환을 일으키고 지방간 알코올성간염 간경화 등 각종 간 질환의 발병에도 기여한다. 고혈압과 각종 심장질환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뇌에 미치는 영향도 커 일시적으로 사고 추론 등의 기능이 떨어질 뿐 아니라 장기적 폭음은 심각한 기억력 장애로 이어진다.
여성의 반복된 음주는 불감증, 무(無)월경을 일으킬 수 있고 난소의 크기를 줄여 불임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폐경기 여성의 음주는 뼈엉성증(골다공증)의 위험을 크게 높인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위험음주(폭음)의 기준은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알코올을 남성은 60g(소주 2홉들이 한 병·360mL), 여성은 40g 이상 섭취하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우리나라 음주자의 대부분이 위험음주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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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준 대한내과학회 생활습관병위원 한림대 의대 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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