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죽하면 남편에게 그랬을까. 이처럼 코골이는 당사자보다 함께 자는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그러나 병이라고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적다. 국내 성인의 45%가 자주 코를 골고 25%는 매일 밤 코를 골지만 이 문제로 병원을 찾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헉, 숨을 안 쉬어=코를 고는 이유는 공기가 다니는 ‘기도(氣道)’가 좁아졌기 때문이다. 입을 벌리고 숨을 쉴 수밖에 없다. 이때 공기가 벽에 자꾸 부딪치면서 소음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피곤하거나 과음을 했을 때 코를 고는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가끔 코를 고는 수준이라면 깊은 잠과 얕은 잠을 반복하기 때문에 다음 날 피곤한 게 가장 큰 증상이다.
그러나 수면무호흡증의 경우는 다르다. 코를 골다가 ‘컥’ 하면서 10초 정도 숨을 쉬지 않고 있다가 다시 ‘후’ 하고 숨을 몰아쉬는 현상이다. 보통 한 시간에 다섯 번 이상 이런 현상이 나타나면 수면무호흡증으로 진단한다.
이 경우 산소공급량이 줄어 심근경색이나 뇌중풍(뇌졸중)과 같은 심각한 병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따라서 정확한 검사가 필요하다. 하룻밤을 자면서 이상 유무를 측정하는 수면다원검사를 받는 게 좋다.
코골이 치료에는 마스크를 쓰고 자면서 공기를 공급받는 ‘지속양압치료(CPAP)’가 비수술요법으로 가장 효과가 큰 것으로 평가받는다. 산소가 충분히 공급됨으로써 호흡이 정상적으로 이뤄지고 코 고는 소리도 나지 않는다.
수술은 비수술요법이 효과가 없을 때 시도해 볼 수 있으며, 기도를 넓혀 주는 성형수술이 일반적이다. 최근에는 레이저를 도입해 수술 후 부기와 통증을 줄여 회복 속도가 빨라졌다.
▽코 고는 소리에 가는 귀 먹는다?=큰 소음을 오래 들었을 때만 가는귀가 먹는 게 아니다.
최근 코 수술 전문 하나이비인후과에서 코골이 때문에 이 병원을 찾은 환자 중 귓병이나 소음에 노출된 적이 없는 64명의 청력을 조사했다. 그 결과 28.2%인 18명에서 난청 징후가 보였다.
이들을 대상으로 다시 조사한 결과 모두 짧게는 16초에서 길게는 178초까지 수면무호흡증 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다시 말해 코골이가 수면무호흡증으로, 다시 청력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결과에 대한 정확한 분석은 나오지 않았지만 대체로 코를 골 때의 소음이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크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시끄러운 소리가 코 바로 옆에 있는 귓속의 기관을 지속적으로 자극해 ‘고장’을 내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심하게 코를 골 때 그 소리는 65∼100dB로 고속버스가 달릴 때 엔진에서 나오는 소음과 맞먹는다.
▽살부터 빼자=기도가 좁아지는 원인 중 가장 큰 것이 비만이다. 실제 코골이 환자의 70%가 정상 체중을 20% 이상 초과한 비만환자라는 조사결과도 나와 있다.
일반적으로 여자보다 남자가 코를 많이 고는 것 또한 남녀의 해부학적 특성 때문이 아니라 남자가 비만체형이 더 많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물론 남자가 담배나 술처럼 자극적인 것을 더 즐기는 탓도 크지만 말이다.
체중 10%를 줄이면 수면무호흡증이 30% 이상 줄어든다는 보고도 있다. 결국 비만부터 해소해야 코골이를 없앨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처럼 약이나 수술을 동원하지 않고 코골이를 예방 또는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많다.
우선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면 폐의 활동력이 강화되기 때문에 코골이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잠을 자기 전에는 과식이나 과음을 피하는 것도 방법이다.
잠자리에서는 똑바로 눕지 말고 옆으로 비스듬히 자는 게 좋다. 테니스 공과 같은 둥근 것을 잠옷의 등 쪽에 고정시켜 놓으면 잠결에 다시 똑바로 눕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베개는 가능하면 낮은 것을 고르도록 한다. 침대에서 잘 경우 머리 쪽을 30도 정도 높이는 것도 방법이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소리 없는 코골이’ 의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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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김모(36·서울 성동구 금호동) 씨는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머리가 묵직하거나 아프다. 하루 종일 피곤할 뿐 아니라 오후 2∼3시가 되면 견딜 수 없을 만큼 잠이 쏟아진다.
김 씨는 아내에게 자신이 밤에 자면서 코를 고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아내는 고개를 저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제시간에 잠자리에 들었고 별 문제없이 잠을 잔 것 같았다. 다만 입을 벌리고 자는 버릇이 있기는 한데 그게 문제였을까?
김 씨의 말을 전해 들은 의사는 “아마도 ‘상기도저항증후군’일 것 같다”고 말했다. 의사는 이 병을 ‘소리 없는 코골이’라고 덧붙였다. 코를 골지는 않지만 다음 날 일상생활에 큰 지장을 주는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코골이나 수면무호흡증은 기도가 좁아지면서 발생하는 병이다. 그러나 상기도저항증후군은 기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입을 벌리고 잠을 잘 때 뇌파가 깨어 있을 때처럼 자주 각성을 일으키는 게 원인이다. 입의 구조상 벌리고 자면 혀가 안 쪽으로 밀리면서 일시적인 호흡장애가 발생한다. 뇌가 순간 놀라 깜짝 깬다는 것이다. 따라서 숨을 일시적으로 멈추는 일도 없고 산소공급량이 크게 줄어들지도 않는다.
고려대 안암병원 신경과 코골이클리닉 연구팀이 최근 지난해 12월부터 올 7월까지 8개월 동안 수면다원검사를 시행한 131명을 분석한 결과 24%(31명)가 상기도저항증후군인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팀이 31명을 대상으로 재분석한 결과 남성과 여성의 증상이 약간씩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의 경우 잠자고 일어났을 때 입이 마르고 성적 능력이 떨어진다고 호소하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여성은 감정 변화나 불면증, 두통, 어지럼증, 근막동통증후군을 주로 호소했다.
대체로 남녀를 불문하고 밤에 자려고 누워도 금방 잠들지 못하고 한참을 뒤척이는 경우가 많다. 또 새벽녘에도 별 이유 없이 꼭 한두 번씩은 잠에서 깬다. 불면증 경향이 있는 사람도 이런 증후군이 자주 나타난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자주 깨는지를 모르는 사람이 많다.
이런 사람들은 바른 자세보다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 자는 게 좋다. 그렇게 하면 입이 닫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심각하게 피곤하고 증상이 좋아지지 않으면 수면다원검사를 받아 정확한 원인을 찾아보는 게 좋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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