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4년 9월 1일 18시 43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벤처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조성된 10조원 규모의 ‘정보화촉진기금’을 둘러싼 구조적 비리가 검찰 수사를 통해 드러났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 남기춘·南基春)는 정보화촉진기금 비리에 연루된 혐의로 1일 임모 국장 등 정보통신부 직원 9명과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전·현직 연구원 7명 등 모두 19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정통부가 93년부터 조성한 정보화촉진기금은 한국을 정보기술(IT) 강국의 반열에 올리는 데 크게 기여한 것도 사실이지만 지원과정이 투명하지 못하고 운영이 방만해 ‘벤처거품’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비판도 끊이지 않았다. 이번 수사를 통해 기금을 둘러싼 그간의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 셈이다.
▽뇌물수수 수법=정통부 직원들은 벤처기업이 제안하는 연구과제가 선정돼 기금을 지원받을 수 있도록 영향력을 행사해 준 대가로 주식이나 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또 ETRI 연구원들은 벤처기업이 ETRI로부터 기술이전을 받거나 ETRI에 납품을 할 때 편의를 봐주고 뇌물을 받은 혐의다.
뇌물 액수가 가장 많은 사람은 전 ETRI 팀장인 김모씨(47)로 4억4000만원을 받았다. 정통부 임 국장은 U사 주식을 시세의 10%에 사는 방법으로 2억3000만원의 차익을, ETRI 본부장인 박모씨도 J사 주식을 시세보다 싸게 사 2억9000만원의 차익을 얻었다.
임 국장과 ETRI 직원 4명에게 로비를 한 U사는 대기업조차 개발할 엄두를 못 내던 광채널 제어기칩 개발사업을 수주했지만 개발에 실패해 결과적으로 26억원의 국고가 낭비됐다.
▽비상장 주식이 로비 수단으로=정보화촉진기금 비리에 연루된 공무원과 연구원들은 현금보다는 비상장 주식을 싸게 사는 방법으로 뇌물을 받았다. 벤처기업의 주주가 된 공무원들은 기술이전이나 납품 등 회사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편의를 제공했고, 회사가 코스닥에 등록되면서 주가가 뛰면 시세차익을 챙기는 ‘2중의 유착고리’를 형성했다.
한 벤처기업 관계자는 “금품이나 향응 접대보다 주식이 유용한 로비 수단”이라고 진술했다고 한다.
▽정통부 해체?=지금까지 구속된 사람들은 U사, J사, E사 등 3개 벤처기업과 연관이 있는 사람들이다. 검찰의 수사 대상에 오른 벤처기업이 10여개이기 때문에 다른 기업으로 수사가 진행되면 구속자 수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특히 감사원이 검찰에 고발한 13명 중 2명만 구속됐고 나머지 11명에 대해서는 본격적으로 수사가 진행될 계획이다.
정통부 직원만 9명이 구속되자 서울중앙지법의 영장전담 판사는 정통부 직원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를 하면서 “정통부가 해체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아느냐”는 말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황진영기자 buddy@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