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공단-네티즌, 쫓고 쫓기는 전쟁

  • 입력 2004년 5월 14일 19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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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엔 당근, 오른손엔 채찍, 어느 걸로 하시겠습니까.”

인터넷상에서 국민연금 피해를 고발하는 사례가 늘어나자 네티즌에 대한 국민연금관리공단의 대처 방법도 다양해지고 있다.

경기도 안양시에 사는 이모(33)씨가 인터넷에서 국민연금으로 인한 피해 사례를 모으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1월.

이씨의 아이디는 이제 국민연금 관련 사이트에 한두 번 드나든 네티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이씨는 “그동안 내가 모은 국민연금 피해 사례가 수십 여건”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연금공단이 이씨에게 쏟는 ‘대응 노력’ 역시 이에 못지 않다. 공단측은 “이씨가 인터넷에서 국민연금과 관련해 쓴 글을 모아 둔 것이 수백 장에 달한다”고 말했다. 이씨를 상대로 법적 대응을 하기 위해서다.

먼저 공단은 자사 홈페이지에 회원으로 가입한 이씨의 인적사항을 파악했다. 게시판에 올려진 이씨 글의 아이피도 추적했다. 현행 법상 인터넷 상에 공개되어 있는 자사 게시판의 아이피 추적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공단이 파악한 이씨 글의 발원지는 경기도 안산시청. 공단 관계자는 “이씨의 글이 직원들에 대한 명예훼손 여지가 있어서 법적 대응을 하려했다”면서 “시청 컴퓨터의 사용자가 많아 결국 추적엔 실패했다"고 입맛을 다셨다.

그러던 지난 3월 중순, 공단측은 아예 이씨의 인적사항을 토대로 집에 찾아갔다. 이씨는 외출 중이었고 부모와 동생 밖에 없었다.

“아드님께서 인터넷상에 허위 사실을 유포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계속 글을 올리면 저희도 형사 고발을 할 수 밖에 없어요. 아드님이 그러지 않도록 얘기 좀 잘 해 주세요. 그리고 집에 들어오면 공단으로 한 번 찾아오도록 얘기해 주십시오.”

공단 관계자는 가족 면담 이유에 대해 “이씨가 글을 올리는 이유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이씨 가족들을 설득해서 (문제를) 조정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씨를 향한 공단의 설득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씨가 국민연금 비판에 앞장서는 이유를 알고 싶었던 공단측은, 이씨는 물론 이씨 부모의 연금 납부 실적까지 조회했다.

“혹시 연금 수급에 불만이 있나 싶어 찾아봤습니다. (조회 결과)이씨의 아버지는 2년만 연금을 더 내면 평생 연금을 받을 수 있는 경우예요. 그런데 현재 납부예외 신청을 해서 (연금을 내고 있지 않아) 이같은 혜택을 받을 수 없더군요. 이씨한테 얘기해주고 싶어도 워낙 강경하게 문제제기를 하고 있어서 이같은 조언을 해 줄 수가 있어야지요.”

공단 관계자는 허탈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하지만 자사에 비판적인 네티즌은 물론, 그 가족의 연금 납부 정보까지 열람한 것은 "업무 상 취득한 정보를 사적으로 사용했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는 부분.

공단측은 이에 대해“이씨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고 활용하는 것 자체가 업무와 연관이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공단의 이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씨의 활동이 계속되자 공단은 다시 강경 방침으로 돌아섰다.

이씨 글에 대해 조목조목 반론을 담은 글을 내용증명 우편으로 발송했다. ‘국민연금 원금도 못 돌려받는다’는 지적은 사실과 다르며 ‘국민의 피와 살을 뜯어먹는 국민연금’이라는 표현은 명예훼손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이씨도 물러서지 않았다.

“원금 상환은 공단측의 심사규정을 근거로 보장이 안 된다고 말한 것이어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공단은 국민의 ‘소득’을 근거로 보험료를 책정해야 하는데 재산까지 포함해서 책정하고 있기 때문에 ‘피와 살을 뜯어 먹는다’는 표현을 썼습니다. 이런 내용은 공단 직원도 인정한 사실입니다.”

공단은 이씨의 재반론에 아직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공단 관계자는 “법률 자문을 구해보니 이씨의 글이 범죄구성요건에 4가지나 해당이 됐다”며 “그러나 법적 조치를 취하려 하자 (공단)이사장이 ‘젊은 사람의 앞길을 생각해야 한다’며 소송을 반대해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결국 현재까지는 이씨의 ‘우세승’.

하지만 공단 직원들의 반발로 상황이 언제 바뀔지는 알 수 없다.

공단 관계자는 “이씨에 대해 법적 소송을 하자는 공단 직원들이 많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현재 경기도 안양에 직장을 갖고 있는 이씨는 “공단 홈페이지에 올려진 한 네티즌의 피해사례를 우연히 읽게 됐는데 공단측의 답변이 너무 무성의해 항의표시로 비판을 시작했다”며 “국민연금으로 인해 개인적인 피해를 입은 것은 없으며 앞으로도 안티 국민연금 활동을 계속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한편 공단 관계자는 최근 인터넷 상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국민연금의 비밀'이라는 글에 대해 "또다른 네티즌 이모씨가 올린 글로 파악하고 있다"며 "이는 이씨가 어느 게시판에서 자신의 실명을 밝혀서 알게 된 것이며 이씨에 대해서는 별다른 조치를 계획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 연금제도, 이대로 좋은가(토론장 가기)

김 현 동아닷컴기자 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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