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정복 머나먼 꿈 아니다…차세대 백신 속속 개발

  • 입력 2002년 12월 1일 18시 35분



《독감이 기승이다. 독감 바이러스는 워낙 변종이 많아 해마다 그해 유행할 것으로 예상되는 독감의 백신을 맞아야 한다. 예측이 틀리면 백신을 맞아도 소용이 없다. 인류는 언제까지 독감에 시달려야 할까.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는 자동차가 건물 벽을 타고 가는 미래 사회에서조차 독감에 걸려 괴로워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나 최근 독감을 근본적으로 예방하는 새로운 방법들이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어 ‘독감 정복’의 꿈이 이뤄질 날도 아주 먼 미래는 아니다.》

기존 백신은 독감 바이러스의 표면 단백질로 만들어져 있다. 몸 안에 이 단백질이 들어오면 이를 공격하는 항체가 만들어진다. ‘항체 면역’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이 표면 단백질은 독감 변종마다 워낙 구조가 다양해 변종마다 따로 항체 면역을 길러야 한다.

최근에는 이런 문제가 없는 ‘DNA 백신’이 차세대 백신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DNA 백신은 독감 바이러스의 유전물질(RNA)을 뼈대로 만든 DNA다. DNA백신을 맞으면 우리 몸에서는 독감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를 공격하는 T세포가 생긴다. 독감 바이러스가 들어와 세포를 감염시켜도 이미 훈련을 받은 T세포가 금세 감염된 세포를 죽이기 때문에 독감에 걸리지 않는다. T세포는 독감 변종을 거의 가리지 않고 공격한다. ‘세포 면역’이기 때문이다.

포항공대 성영철 교수(생명과학과)는 “DNA 독감 백신은 93년부터 연구가 시작돼 우리팀도 올해 초 특허를 신청하는 등 세계 여러 곳에서 활발하게 개발되고 있다”며 “에이즈, 독감 등 변종이 심한 바이러스 질병은 DNA백신이 매우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살아 있는’ 독감 바이러스를 이용해 독감을 예방하는 기술도 국내에서 개발되고 있다. 독성을 없앤 독감 바이러스를 몸 안에서 ‘수비수’로 키워 진짜 독감 바이러스가 골을 넣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다. 5년 전부터 이 연구를 해온 연세대 성백린 교수(생명공학과)는 지난달부터 정부에서 연구비를 받아 본격적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성백린 교수팀은 먼저 섭씨 37도에서 잘 자라는 독감 바이러스를 무해하게 만든 뒤 훨씬 낮은 온도에서 잘 자라도록 만들었다. 이 바이러스는 몸 속에 들어와도 체온에 적응을 못해 조금밖에 번식하지 못한다. 뒤에 진짜 독감 바이러스가 들어오면 미리 자리를 잡은 무해한 바이러스가 독감 바이러스의 번식을 막는 것이다.

성백린 교수는 “무해한 바이러스의 유전자가 진짜 독감 바이러스의 유전자를 교란시켜 증식을 막는 것으로 보인다”며 “동물 실험에서 예방 효과가 높게 나타났으며, 하루 전에만 맞아도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수많은 독감 변종이라도 비슷한 구조를 갖는 부분이 있다. 현재 나와 있는 독감 치료제는 이런 곳들을 공격하는 기술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기존 제품은 아직 효과가 낮지만 머크 등 세계 유명 제약회사들이 이런 방식의 치료제를 활발하게 개발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원 최병석 교수(화학과)는 독감 바이러스의 RNA 중 특정 부위가 변종에 상관없이 프라이팬 같은 구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 지난해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했다. 최 교수는 “현재 이 부분에 달라붙어 작용을 방해하는 물질을 찾고 있으며, 좋은 물질만 발견하면 변종에 상관없이 효과를 갖는 치료제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성영철 교수는 “최근 독감 바이러스와 인체의 방어 구조에 대한 비밀이 많이 풀리고 있어 2015∼2020년까지는 효과적인 독감 백신이 개발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김상연 동아사이언스기자 dre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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