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문명호/sex.co.kr

  • 입력 2002년 11월 7일 18시 42분


인터넷 사업에 활용하기 좋거나 국제적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진 기업들의 이름을 이용한 인터넷 도메인(주소)을 먼저 등록했다가 비싼 값에 파는 사람들은 ‘현대판 봉이 김선달’로 여겨진다. 노력을 들이지 않고 손쉽게 큰돈을 버는 모습이 그런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이러한 사람들을 도메인 스쿼터(squatter)라고 부른다. 스쿼터라는 말은 원래 공유지에 무단으로 들어가 자리를 차지하고 거주하는 사람이라는 뜻. 사이버공간에 주인 몰래 집을 지은 무허가주택 거주자 정도로 취급하고 있는 셈이다.

▷1999년 국내에서는 갑자기 도메인 등록붐이 일었다. 1994년에 등록이 시작된 후 99년 6월 말까지 5만4000개에 지나지 않았던 국내 도메인이 10월 말에는 15만6000개로 늘어났다. 인터넷 비즈니스 붐 탓도 있었지만 손쉽게 한탕 하려는 심리가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되팔 목적으로 한 사람이 수십, 수백개의 도메인을 등록해 놓는 일들이 속출했다. 빚을 얻어 한꺼번에 2500개나 확보했다가 원매자가 나서지 않아 거액을 날리게 된 사람이 자살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사이버 부동산투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도메인을 만들어 파는 사람들을 모두 봉이 김선달이나 투기꾼 취급을 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그들 중 많은 사람은 인터넷 시대의 흐름을 남보다 먼저 파악한 선각자라고 할 수 있다. korea.com(코리아닷컴)이라는 도메인을 처음으로 등록한 재미교포 이희준씨가 그런 사람이다. 그는 이 도메인이 언제인가 국내에서 유용하게 사용될 것으로 판단해 단돈 70달러를 내고 등록을 해두었다. 이 도메인은 재작년 국내 인터넷업체인 두루넷이 무려 500만달러(약 65억원)에 사들였다. 인터넷이 아이디어 하나로 부자가 되는 시대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최근 새로 등록이 허용된 국내 도메인 sex.co.kr의 소유권이 부산에 사는 29세의 여성에게 돌아갔다는 소식이다. sex.co.kr는 국내 도메인 관리기구인 한국인터넷정보센터가 지난달 새로 등록을 허용키로 결정한 도메인 중 하나. 국내외에서 섹스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인터넷사이트들이 큰 수익을 올리고 있어 이 도메인은 오래 전부터 네티즌들과 관련 업계에서 큰 관심을 보여 왔다. 실제로 지난달 말 신청마감 결과 무려 2만3801건이 몰려 최고의 경쟁률을 보였다. korea.com보다 더 상업성이 크다는 이도 있는 것을 보면 당장 팔기만 해도 수십억원은 벌게 될 모양이다. www.sex.co.kr라는 도메인 이름이 예고하고 있는 콘텐츠가 걱정되긴 하지만….

문명호 논설위원 munmh9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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