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환의 줄기세포]"다시 걷게 되다니" 골수 이식의 기적

  • 입력 2002년 3월 31일 17시 28분


얼마 전 준수한 외모의 중년 남자가 휠체어를 타고 미국의 상원의원 회의실에 출석했다. 그는 바로 1995년 오토바이 사고로 척수마비가 된 ‘슈퍼맨’ 크리스토퍼 리브였다.

그가 상원에 나타난 것은 자신이 척수마비로부터 회복될 수 있도록 줄기세포에 자신의 체세포를 넣어 배아줄기세포를 만드는, 이른바 치료용 인간복제를 허용해 달라고 탄원하기 위해서였다.

종류를 불문하고 모든 인간복제 자체를 금하는 법률이 미국 하원에서 통과되자, 관련 분야의 과학자들과 복제 지지자들이 이 법안이 상원에서도 통과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대규모 총력투쟁을 벌였고 그 총력투쟁에 그가 앞장을 선 것이다.

그는 또 최근 영국에서 치료용 인간복제를 허용하는 방안을 발표하자 이번에는 자신의 치료용 인간복제를 위해 영국으로 가겠다고 나서고 있다.

배아 줄기세포나 어른의 신경줄기세포를 이식함으로써 척수손상에 따른 마비증세를 호전시킬 수 있다는 동물실험 결과가 최근 잇따라 발표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소식이 환자에게까지 의미가 있으려면 해결해야 할 문제가 너무도 많다. 리브는 복제를 통해 배아줄기세포를 얻는 것은 성공률이 너무나도 낮으며 복제 후에도 비정상적으로 자라는 일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 궁금하다. 또 성체 신경줄기세포라고 해도 엄밀하게 말해서는 자기 자신의 세포가 아니기는 마찬가지라 거부반응도 고려해야 한다.

진퇴양난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은 곧이어 제시됐다. 그것은 지난달 미국 툴레인대 프록콥 박사팀이 환자 자신의 골수 줄기세포를 이식하면 줄기세포가 신경 손상부위로 가서 주변상황에 맞춰 신경계 세포로 분화된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연구팀은 동물의 허리에 충격을 주어 하체마비를 일으켰다. 그리고 배양하고 있던 골수의 간엽줄기세포를 척수손상부위에 주입한 뒤 경과를 관찰했다. 이식치료 5주 뒤 이식치료를 받지 않은 쥐들은 뒷다리로 체중을 지탱하지 못해 몇번을 일으켜 세우려고 해도 털썩 주저앉기만 했다.

그러나 골수줄기세포를 척수손상부위에 이식받은 쥐들은 대부분이 발딱 일어났고 심지어 걷기까지 가능했다.

더욱 반가운 사실은 이들 골수줄기세포는 척수손상 뒤 바로 이식한 것보다 1주일이 지난 뒤 이식한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누군가 사고로 척수를 다쳐도 자신의 골수를 뽑아서 배양을 한 뒤 이식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는 것이다.

왕년의 스타가 영국까지 가지 않고도 오랜 세월 타고다니던 휠체어에서 벌떡 일어나는 ‘기적’을 곧 볼 수 있다는 설렘이 든다.

가톨릭의대 세포유전자치료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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