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실리콘벨리 통신]코스닭(닥)? 나스닭(닥)?

  • 입력 2000년 7월 9일 18시 49분


작년 이맘때 한국의 단체관광단에 끼어 멕시코 여행을 갔다. 마이크가 한바퀴 돌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이른바 미국에 사는 한국인으로서 정통한 ‘미국 소식’을 전할 차례가 된 것이다.

“저는 실리콘밸리에 살고요…”라고 운을 떼는 순간부터 고국에서 온 분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그럼 벤처산업에 종사하시나요?” “컴퓨터 잘 하시겠네요.” “정말 대단하네요.”

하늘이 노랬다. 실리콘밸리? 남들이 실리콘밸리라 부르는 곳에서 10년을 넘게 살았지만 나는 그곳에 대해 무엇을 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었다. 내가 알고 있는 건 우리 집 담 너머로 보이는, 애플컴퓨터 건물의 오색 찬연한 사과간판뿐이었다. 그게 내가 아는 실리콘밸리의 전부였으니까.

그리고 지난 겨울 한국을 방문했다. 아침마다 신문을 펼치면 그저 실리콘밸리와 벤처 얘기 투성이였다. 분명 우리 동네 이야기이건만 도무지 알 수 없는 내용들이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TV를 틀었다. 아줌마들이 우르르 등장하는 광고가 방영되던 참이었다.

나를 닮은 한 아줌마가 “코스닥이 뭐예요? 개량종 닭의 이름이던가?”라며 떠드는 장면이 나왔다. 문득 멕시코 여행에서의 내 생각이 났다. 나 역시 ‘미국엔 나스닥이 살고 한국엔 코스닥이 살았더냐?’ 정도의 수준이었다. 그 순간 ‘아는 것이 힘이다’는 표어는 더 이상 초등학교 벽을 도배하던 진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나는 ‘우리동네’ 실리콘밸리의 실체를 알아내기 위해 온 겨울을 보내기로 작정했다.

이때부터 ‘등잔 밑의 어둠 속’에 살고 있던 한 아줌마의 지적 탐험이 시작됐다. 자료를 찾아 여기저기를 헤매고 주말이면 동네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다. 남편은 “웬 오도방정”이냐고 했지만 나는 내 가슴 속의 궁금증을 억누를 수 없었다.

우연한 기회에 그렇게 몇 달 동안 정리한 자료를 동아일보 지면을 통해 고국의 독자들에게 전할 수 있게 됐다. 사실 나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벤처산업 전문가’는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한 사람의 아줌마로서, 가정을 지키고 아이를 키우는 주부로서 실리콘밸리의 잘 알려지지 않은 모습을 독자 여러분께 전할 수 있다면 크나큰 영광이겠다고 생각한다.

▼필자 프로필▼

이윤선/1964년 서울 출생. 한양여자고등학교와 이화여대 교육학과를 졸업. 대학원을 다니다 현재의 남편을 만나 87년 결혼. 89년 미국으로 건너가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를 거쳐 쿠퍼티노에서 7년째 살고 있다. 현재 샌타클래라 카운티 통합교육부에서 언어발달 프로그램을 담당. 샌프란시스코대에서 ‘다인종 다문화 교육’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열네살, 여덟살된 두 아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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