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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9년 12월 28일 19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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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으로 전해지는 첫 경진년의 큰 일은 왕이라는 칭호 사용.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 해당하는 B.C.221년 고조선과 국경을 접하고 있던 중국 칠웅(七雄)중 하나인 연(燕)나라가 왕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자 고조선도 조선왕의 칭호를 쓰기 시작했다.
260년 경진년에는 백제 고이왕이 6좌평제도와 16관품제를 제정하고 관리의 등급을 옷 색깔로 구분한 공복(公服)제도를 실시했다. 고려시대 ‘문화의 꽃’인 상감청자가 만들어진 것도 1280년 용의 해였다.
조선 건국 3년째인 1400년에는 ‘용들의 전쟁’이 펼쳐졌다. 이성계의 아들간 권력투쟁인 이른바 ‘제2차 왕자의 난’이 일어난 것. 이로 인해 다섯째 왕자인 이방원이 형 방간을 몰아내고 실권을 완전히 장악해 ‘용’이 됐다. 60년 뒤에는 신숙주가 두만강 밖의 여진족을 격파했다.
근현대사로 접어들면 1880년 김홍집을 단장으로 한 수신사가 일본에 파견돼 근대문물을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일제 식민지 억압정책이 극에 달했던 1940년에는 일제의 악명높은 창씨개명이 자행됐다. 동아일보가 폐간된 것도 이 때였다. 이 해 임시정부가 세워졌고 광복군이 창설됐다.
한편 경진년은 아니지만 신라가 고구려를 멸망시킨 것도 668년 용의 해(戊辰)였고 1592년(壬辰) 임진왜란, 1904년(甲辰) 러일전쟁도 각각 용띠해에 일어났다.
〈이호갑기자〉gd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