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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9년 3월 30일 19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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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굴리는 일을 업으로 삼은 사람치고는 그야말로 ‘리스키’한 발언이다. 본전이나 제대로 건질 수 있을런지…. 그러나 이 아슬아슬한 사고방식의 주인공은 수년째 온갖 설문조사에서 ‘한국영화 파워 1인자’이자 ‘21세기를 이끌어갈 영화인 1위’를 독차지하고 있다.
자타가 공인하는 충무로의 실력자 강우석(康祐碩·39)감독. ‘투캅스’1, 2편을 비롯, 지금까지 연출한 영화 11편으로 서울에서만 2백57만여명의 관객을 끌어모았던 흥행 감독이지만 요즘의 그에게는 ‘감독’보다 ‘제작자’라는 호칭이 더 잘 어울린다.
한국영화 제작 배급사인 시네마서비스 대표. ‘투캅스’로 벌어들인 흥행수익을 종잣돈삼아 영화제작에 나선지 5년째. 그동안 대기업들이 충무로에 몰려들었다가 썰물처럼 밀려나갔지만 강감독은 한국영화 제작현장을 지키는 터줏대감으로 튼실하게 자리잡았다.
올해 제작하는 영화만 해도 모두 14편. 2000년까지 한국영화의 시장 점유율을 30%대로 끌어올리는 것, 전 세계를 장악하다시피 한 할리우드 영화에 맞서 21세기 한국영화의 든든한 울타리를 마련하고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그의 목표다. 16일 투자사인 삼부파이낸스가 그의 영화 7편에 32억원을 투자하고 앞으로 5년간 해마다 60억원씩을 지원키로 확정한 일도 강감독의 흥행감각, 그가 짊어져온 한국영화 부흥의 견인차 역할에 대한 신뢰에서 비롯됐다.
“2002년 월드컵 전까지는 전국 극장 체인망을 만들어 모든 수익을 투명하게 공개할 생각이예요.좋은 영화를 만들어 극장에 배급할 때 할리우드 직배사 영화에 밀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고 돈도 벌만큼 벌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싶어요.”
그에게 지금까지 본전은 제대로 챙겼는지를 묻자 빠른 말투의 시원시원한 대답이 돌아왔다.
“영화 제작에 모두 1백31억원을 던졌고 1백26억원 정도 벌었어요. 올해 ‘먼저 질러버린’ 돈은 아직 결과를 다 보질 못했으니 밑진 건 아니죠.”
강감독이 배급을 맡아 현재 상영중인 ‘마요네즈’는 흥행성적이 저조하지만 별로 상심하는 기색도 아니다. “게임을 할 때 상대때문에 졌다는 사람이 제일 비겁하듯 관객과의 게임인 영화에서 흥행이 안됐다고 관객을 원망하는 짓은 비겁하다”는 논리다.
영화를 자주 게임에 비교하는 그의 어법에 빗대어 “고스톱 칠 줄 알면서 판돈만 대주고 있는 이유가 뭐냐”고 물어봤다.
“영화판에서 ‘돈만 벌어 나갔다’는 말은 듣고 싶지 않아요. 내가 못하는 장르나 소재에서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감독을 길러내는 인적 투자가 내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그에게는 한국영화에 대한 애정이 있다. ‘투캅스2’를 개봉했던 96년, 강감독은 그 해 영화인가운데 세금을 가장 많이 냈을 정도로 큰 돈을 벌었지만 그 돈으로 이듬해 ‘초록물고기’를 제작했다. 지난해 ‘여고괴담’에서 번 돈으로는 올해 ‘이재수의 난’을 만든다. 장사로 보면 손해지만 “그래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상업영화와 예술영화는 함께 발전해야 하니까.”
그러나 감독으로서의 그는 ‘상업영화 감독’이기를 고집했다.
“난 ‘아티스트’가 아니라 ‘엔터테이너’입니다. TV의 쇼PD를 했어도 잘했을 걸요. 임권택감독같은 분이 계시면 나같은 감독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는 일단 연출을 시작하면 완벽한 사전 콘티와 빠른 촬영, 경제적인 제작으로 유명하다. 한 장면에 필요한 배우의 몸짓까지 머리속에 그려놓을 만큼 재빠른 판단과 편집능력 덕택에 영화평론가 강한섭(서울예대교수)은 강감독의 영화를 “시나리오와 편집의 교과서”라고 평하기도 했다.
여전히 ‘강사장’보다는 ‘강감독’으로 불리기를 원하지만 당분간은 한국영화 제작 배급, 기획자 양성, 극장 전국 체인망 구성 등에 주력할 생각.
“연출력이 느슨해졌다는 비판이 있는 것도 알아요. 하지만 여전히 내 영화활동의 중심은 감독입니다. 정치 코미디를 만들어 찬사를 받는다면 그땐 아예 은퇴해도 후회가 없을 것같아요.”
〈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
★프로필★
△60년 경북 경주 생
△82년 성균관대 영문과 중퇴
△92년 ‘신씨네’, 92년말 ‘강우석 프로덕션’, 95년 ‘시네마서비스’설립
△89년 ‘달콤한 신부’로 데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89) ‘투캅스1’(93) ‘마누라죽이기’(94) ‘투캅스2’(96) ‘생과부 위자료청구소송’(98) 등 11편 연출
△‘초록물고기’(97년) ‘넘버3’(〃) ‘여고괴담’(98) ‘미술관옆 동물원’(98) 등 16편 제작 배급
△영화평론가협회 신인 감독상(89년) 백상예술 대상 감독상(93) 청룡영화제 최다흥행감독상(96년)문화체육부주최 젊은 예술인상(〃)수상.
★강우석이 말하는 「나」★
▽어떻게 감독을?〓‘바보들의 행진’을 보고 충격을 받은 중3때부터 감독이 꿈이었다. 대학2학년때 ‘바람불어 좋은 날’을 보고 더이상 학교를 다닐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 그만뒀다. 충무로 연출부 생활은 ‘애마부인’에서 시작했다.
▽고치고 싶은 버릇〓숫자에 대한 자폐증. 서울역에 가서도 기차 요금을 다 더해보고 ‘승객이 얼마면 하루에 얼마를 벌겠구나’하고 암산해보는 습관을 못버린다. 초등학교 3학년때 부모님 관심을 끌고 싶어서 혼자 주판공부를 시작해 2년 연속 전국 경시대회에서 우승했다. 지고는 못사는 승부욕이 나의 힘이기도 한 것같다.
▽최근 기억에 남는 일〓자퇴한 학교에서 교수 제의를 받았다. 내가 헛살진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지난 20일 첫아들 윤성이 태어나 아버지 대열에 합류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