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폭탄 Y2k」제조업은 아직도 무방비

입력 1999-01-13 19:42수정 2009-09-24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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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1월1일 오전 1시. 서울 시내 한 종합병원의 응급실. 심장마비를 일으킨 중년의 환자가 구급차에 실려왔다.응급실 의료진은 환자에게 심장충격기를 갖다대지만 웬일인지 작동하지 않아 발을 동동 거린다. 같은 시간 이 병원 중환자실에는 한 환자의 심장이 멈추는 비상사태가 발생했다. 심장박동을 위해 환자의 심장 안에 넣어 놓은 심장안정기의 칩이 오류를 일으켜 작동을 멈췄기 때문이다.

컴퓨터가 2000년을 인식하지 못해 오류를 일으킴으로써 큰 혼란을 불러온다는 ‘밀레니엄버그(Y2k·컴퓨터 2000년 연도표기문제)’가 불러올 수 있는 가상의 상황이다.

비즈니스 현장에선 벌써 실제 상황이 일어나고 있다.한국수자원공사는 최근 외국계 금융기관에서 상업차관을 도입하면서 Y2k의 해결을 전제조건으로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 내셔널 호주은행, 싱가포르 개발은행, 일본 산와(三和)은행 등 3개 은행이 무보증신용으로 5천5백만달러를 빌려주면서 “수자원공사가 Y2k를 해결하지 못할 경우 수돗물 공급과 댐 발전 등에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해 경영손실에 따른 자금회수가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며 “Y2k를 6월말까지 완벽하게 해결할 것”등을 전제조건으로 요구한 것.

네덜란드의 1위 항공사인 KLM은 올해 12월31일부터 며칠간 비행기 운항을 전면 중단하는 극약처방을 검토중이다. KLM의 전산시스템은 밀레니엄버그에 이미 완벽하게 대비한 상태지만 다른 나라의 컴퓨터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이 주된 이유. 예컨대 암스테르담에서 아테네까지 항공기를 운항하려면 8개 공항의 항공 관제시스템을 이용해야 하는데, 만일 8곳중 1곳이라도 밀레니엄버그를 완벽하게 치유하지 못했을 때는 자칫 대형 항공기 참사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

“2000년 1월1일 이후의 비극적 시나리오는 대변동보다는 오히려 사소한 오류들이 시간을 두고 축적되면서 어느 순간 심각한 무질서로 이어질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이 국내 Y2k 전문가들의 분석.

현재 국내의 해결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세계적인 컴퓨터 컨설팅기관인 가트너그룹은 지난해말 “한국의 산업별 대응수준은 은행 보험, 제약, 컴퓨터제조 등 전산부문에서 양호했으나 전력 상하수도, 운송, 의료서비스부문 등 비전산부문에서 상당히 뒤진다”고 발표했다.

발표처럼 삼성 현대 LG 등 대기업은 그룹차원의 대응전담팀을 구성해 계열사 대부분이 거의 해결을 완료한 상태.

금융권에서도 한빛은행이 이미 지난해 11월 최종테스트를 끝낸데 이어 삼성화재 등 제2금융권도 해결작업을 완료해 테스트만 남겨둔 상태다.

그러나 비전산(제조업)분야 기업들의 상황은 이와 크게 다르다.

삼성SDS 이종훈(李宗勳·38)박사는 “비전산분야는 Y2k 전체의 80%를 차지하고 있는데도 거의 방치된 상태”라며 “2000년이 되면 밀레니엄버그로 기계를 작동하지 못해 개점휴업상태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제조업체들이 수두룩해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특히 자동화 제어설비 의료장비를 많이 보유한 기업들이 심각하다. 이들은 장비를 사들인 외국업체로부터 Y2k 해결에 대한 정확한 정보조차 얻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장비를 공급한 외국업체들조차 자신이 공급한 제품에 Y2k가 있는지 여부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거나 법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해주지 않고 있다는 게 기업측의 하소연.

비전산분야의 공기업을 보유하고 있는 정부의 안일한 대응도 문제. 대응 일정이 너무 늦고 전문인력 확보와 자금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감사원의 최근 감사에서 드러났다.

상하수도 및 여객 안전부문, 수자원공사 산하 수력발전소 등은 정부의 중점 관리대상에서 빠져 있어 최악의 경우 발전 및 송배전 불능, 통신두절로 사회전반이 마비되는 최악의 사태가 우려되고 있다.

이박사는 “밀레니엄버그가 생기는 제품 수백만건을 파악해 분야별로 목록을 서비스하는 외국 회사가 상당수 있다”며 “결국 시간을 버는 싸움이기 때문에 해당 기업들은 이같은 목록을 입수해 어떤 제품에 문제의 소지가 있는지 일단 파악해 우선 순위를 정하고 돌발적인 상황에 대비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정영태기자〉ytce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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