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통신의 전자우편으로 사랑의 대화를 나누는 연인들은 앞으로 각별한 주의가 요망된다. 「악동」해커가 사랑의 대화를 훔쳐 보거나 삭제 또는 내용을 바꿔놓아 뜻하지 않은 오해나 다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경찰청 외사3과는 22일 D정보통신사의 PC통신망에 침투, 전자우편 게시판 등에 있던 4만여 사용자의 자료를 무단으로 지운 혐의(전산망보급확장과 이용촉진에 관한 법률 위반)로 김모군(15·부산 동래구 명장동·K고교 입학 예정)을 불구속입건했다.
중2 여름방학때부터 해커전문책자를 탐독하고 해커동호회에 가입, 해킹기법을 연구해 오던 김군이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발휘」한 것은 지난 13일 오전 3시경.
김군이 며칠밤을 새워 수차례의 시도 끝에 알아낸 *,,; 등 특수문자가 복잡하게 합쳐진 프로그래머(관리자)의 고유 이용자번호(ID)를 입력하자 PC통신망 자료들은 모두 김군의 소유가 됐다. 통신망의 자료를 수정, 삭제할 수 있는 관리자의 입장이 된 김군은 여기저기 자료를 마음껏 지우고 다니면서 게시판에 「D사는 해킹당했다. ∼푸하하∼」 「다음에 다시 만나길…」 등의 메시지를 남기고는 사라졌다.
김군은 「꼬리가 길면 잡힐 것 같아」 전화연결을 끊어도 전산자료는 계속 지워지도록 명령어를 입력시켜 놓았다. 자료의 약 80%가 지워졌을 때 집에서 우연히 이 사실을 안 「진짜」관리자가 시스템을 중지시키지 않았으면 95년 8월부터 쌓이기 시작한 모든 자료가 사라질 뻔했다.
D사는 8시간동안 통신이용을 중단시킨 채 백업(복제)해 놓은 자료를 다시 복원시켰으나 9일자 자료부터는 백업이 안돼 있어 사랑의 밀어가 담긴 편지 등 소중한 개인기록이 날아가 버렸다.
이같은 사실을 신고받은 경찰 해커수사대는 D사와 함께 「해커잡이」에 나선 끝에 김군의 개인ID를 알아내고 김군이 PC통신을 이용할 때마다 전화를 역추적, 지난 19일 간신히 김군의 정체를 밝혀냈다.
개인사업을 하는 아버지(50)와 함께 서울로 불려와 조사를 받은 김군은 학교에서 최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는 「모범생」이었다.
4만여명의 이용자와 D사 경찰 등 많은 사람의 애간장을 태웠던 김군은 경찰에서 『고등학교 입학기념으로 영원히 기억에 남을 추억을 만들기 위해 그런 해킹을 했다』고 천진스럽게 털어 놓았다.
김군을 조사한 경찰청의 한 수사관은 『어린 학생의 「추억만들기」장난치고는 그 피해가 너무 크다』고 말했다.
〈부형권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