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 톡톡]“모든 아이들에게 따뜻했던 선생님, 내 교직생활의 롤모델”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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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학 눈뜨게해준 은인… 지금도 그 수업시간 못잊어”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 내일은 스승의 날. 스승은 ‘나를 가르쳐 올바르게 이끌어 준 분’입니다. 단순히 지식만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지요. 요즘 유행하는 말로, 내 인생의 등불을 밝혀주고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는 멘토가 스승입니다. 어른이 되고 나이가 들어 삶에 대해 좀 안다고 거들먹거리다가도 문득 스승의 얼굴이 떠오르면 숙연해지는 것은 왜일까요. 누구나 가슴 먹먹할 정도로 고마운 스승 한두 분쯤은 있을 겁니다. 스승의 날을 맞아 그분들을 떠올려보는 건 어떨까요. 시민들을 만나 가장 그리운 스승에 대해 물었습니다. 추억에 잠긴 시민들의 눈빛이 따스해 보였습니다. 》


“스승님. 당신에게 인생을 배웠습니다”


―지금 초등학교 교사입니다. 가장 존경하는 분으로, 첫 발령 때 교장선생님을 꼽고 싶어요. 작은 학교였는데 애들 이름 하나하나도 다 아시고 말 걸어주시고 저한테도 친손녀처럼 대해 주셨어요. 제 결혼식에 직접 오지 못하셨다면서 전근 간 학교까지 찾아오셔서 축의금까지 주셨지요. 2010년 그분이 정년퇴직하시던 날에는 동료 교사 언니들이랑 울고 난리가 났었어요. 정말 따뜻하시고 배울 점이 많은 분이죠. 저도 저의 제자들에게 그런 선생님이고 싶고, 그러고자 노력하고 있어요.(29·여·교사)

―1968년도는 쌀이 부족해서 분식 운동이 한창이었을 때입니다. 전 초등학교 5학년이었는데, 담임선생님이 음식을 절대 남기지 못하게 했어요. 점심시간이 끝나면 선생님이 도시락을 일일이 검사해 한 톨이라도 남긴 사람은 다 먹게 했지요. 음식을 남기면 농사짓는 분들의 고마움을 모르는 거라고 하셨어요. 그 후로 40년. 음식을 남기는 법이 없어요. 먹기 싫은 음식을 먹을 때면 선생님 말씀이 많이 생각나요. 그 표정 하나하나, 열심히 지도하는 열정….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59·여·주부)

―고3 때 담임선생님은 시인으로 문학을 담당하셨어요. 선생님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줬어요. 인간 대 인간으로 학생과 이야기를 하는 선생님이 좋았어요. 물론 싫어하는 애들도 많았어요. 입시에 예민한 고3 아이들이 보기에는 진학에만 집중하는 선생님이 아니었던 거예요. 그러나 저는 학문적인 것 이외의 인간적인 면을 중시하시는 선생님으로부터 많은 걸 배울 수 있었어요. 지금도 그때의 시간들을 잊지 못하며 1년에 한두 번은 찾아뵙고 있답니다. 제 인생의 참스승이시지요.(23·여·대학 휴학생)

―제가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게 된 건 중3 때 담임선생님 덕분입니다. 선생님은 평소엔 무뚝뚝하고 표정이 별로 없는 분이었죠. ‘어떻게 저분이 음악 선생님일까’ 그랬는데, 음악을 들으면 표정이 변하셨답니다. ‘음악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구나’ 생각하며 편견을 버렸지요. 선생님이 처음 들려주신 사라사테의 ‘치고이너바이젠’은 잊지 못해요. 음악을 듣는 순간 너무 좋아서 흠뻑 빠져들었거든요. 몇 년 전 학교 100주년 행사 때 오랜만에 뵈었는데 역시나 멋지게 늙으셨더라고요. ‘선생님처럼 음악을 사랑하면 나도 그렇게 곱게 늙을 수 있겠지’ 하고 생각한답니다.(56·여·사업가)

“꿈을 만들어 준 은인”

―“너희 꿈이 뭐니?” 대학 1학년 때 한 교수님이 수업시간에 던진 질문이에요. 외교관, 최고경영자, 뭐 이런 대답들이 나왔는데 교수님은 우리 모두에게 “틀렸다”라고 하셨어요. 교수님은 “이룰 수 없는 게 꿈”이라고 하셨어요. 굉장히 인상 깊은 순간이었어요. 그때 ‘진정한 꿈’과 ‘목표’ 간의 차이를 깨달았고 큰 그림을 그리면서 인생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때 확립한 인생관이 유학생활에 큰 도움이 됐어요. 과외를 하면서 학비도 벌고, 쉽지 않은 공부도 해나가야 했던 날들이 힘겨웠지만 더 큰 인생의 목표를 생각하면서 그 시간을 버틸 수 있었어요.(28·회사원)

―‘건강한 어른이란 저런 거구나’ 하는 인상을 저에게 최초로 강하게 주신 분이 대학 때 사회학과 교수님이세요. 제가 영국에 교환학생으로 가 있던 시기에 교수님께 안 좋은 일이 있었어요. 그때 교수님께 몇 차례 연락드릴 일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교수님은 “너도 쉽지 않은 상황이 많겠지만 잘 극복하며 살도록 해라”라며 힘을 주셨지요. 지금은 학교에 안 계시는데 마지막 수업 날 다들 울고 난리가 났어요. 저에겐 삶의 멘토 같은 분이에요.(25·회사원)

―쿠웨이트에서 살다가 5학년 때 처음 한국에 들어왔어요. 그렇다 보니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해 왕따를 당했는데, 그때 담임선생님이 잘 챙겨주셨습니다. 사탕이나 과자 등 간식도 몰래 주시고요. 한번은 제가 친구들이랑 크게 싸운 적이 있어요. 선생님은 그때도 저희를 공개적으로 혼내지 않고 저만 따로 부르셨어요.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는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등을 물어보며 스스로 깨닫게 해주셨죠. 종종 잘 지내고 있는지 전화도 해주시고 엄마처럼 챙겨주셨어요.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저는 더욱 고립됐을 것 같아요. 저를 잘 챙겨주셨던 선생님께 정말 감사해요.(18·학생)


“학교 밖에서 만난 수많은 스승들”


―부모님이 이혼하셨다는 이유로 친구들에게 놀림을 많이 당했어요. 너무 화가 나서 친구들이랑 크게 싸웠는데, 그때의 실수로 지금 보호관찰소 생활을 하고 있어요. 창피하기도 하고 주눅도 들었어요. 하지만 대학생 멘토링 선생님을 만나고 나서 훨씬 좋아졌어요. 선생님이랑 이곳저곳 놀러 다니고 얘기도 많이 나눠요. 선생님이 친엄마 같기도 하고 친언니 같기도 해요. 이제 꿈이 생겼어요. 열심히 해서 꼭 네일 아티스트가 될 거예요. 선생님에게 자랑스러운 어른이 되고 싶어요.(15·여·학생)

―프로 바둑기사 준비생입니다. 지금은 큰 도장에 다니는데, 초등학교 때 다녔던 작은 학원이 그리워요. 그때 제가 전국바둑어린이대회에서 우승을 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절대 우승할 실력은 아니었는데, 모두 선생님 덕분이었어요. 선생님이 “넌 정신력이 뛰어나니까 상대방이 아무리 강해도 이길 수 있다”고 반복해 말해줬어요. 그 덕분에 자신감이 생겨 바둑을 뒀는데 결국 우승을 했습니다. 부모님보다도 저를 굳게 믿어주셨던 선생님 덕분이에요.(19·학생)

―아이가 올해 초등학교 2학년인데 얼마 전 서울에서 일산으로 전학을 왔어요. 새로운 환경이 어색했는지 아이가 과격해졌어요. 친구 소개로 심리상담소를 찾았어요. 상담소의 선생님이 아이 눈높이에 맞게 잘 놀아주고 대해줘 우리 애가 저보다도 선생님이랑 얘기를 더 잘해요. 다닌 지 6개월이 좀 안 됐는데 아주 좋아졌어요. 학교 친구들과 어울리는 방법도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고…. 집에서 소리 지르는 횟수도 줄었어요. 좋은 선생님을 만난 것 같아 정말 행운입니다.(38·주부)

―우리 아이의 첫 어린이집 선생님과 지금도 연락해요. 아이는 16개월 때부터 어린이집을 다녔어요. 제가 일을 나가느라 잘 챙겨주지 못해서 미안할 때가 많았는데, 선생님 덕에 걱정을 덜 수 있었죠. 아이에게 소매가 긴 옷을 입혀 보내면 선생님은 반듯하게 소매 끝을 접어 활동하기 좋게 해주셨어요. 밥이나 간식을 먹다가 음식을 흘렸을 법도 한데, 아이 옷은 항상 깔끔했어요. 네 살 때 직장 어린이집으로 옮겼는데 많이 아쉬웠어요. 큰 시스템보다는 세심한 보살핌이 더 중요하다는 교훈을 제게 준 사람이 그 선생님이에요.(33·주부)

오피니언팀 종합·김정은 인턴기자 성신여대 심리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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