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정운찬의 ‘進化’

  • 입력 2009년 10월 11일 20시 26분


코멘트
그는 최고의 명문대학 총장에서 정권 핵심부로 진입한 사람이다. 총장시절 대학개혁과 기부금 확충에 힘썼다. 여성비하성(性) 발언으로 수난을 당한 적이 있다. 케인스주의 경제학자이지만 경제적 소신은 상황에 따라 ‘진화(進化)’한다. 공직에 임명된 뒤 기업에서 과다한 사례를 받은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물의를 빚기도 했다.

前하버드대 총장 180도 달라져

정운찬 총리(이하 정운찬) 얘기가 아니다. 미국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로런스 서머스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 얘기다. 굵직한 이력만 놓고 보면 정운찬과 서머스는 기이하리만치 닮았다.

물론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차이가 있다. 정운찬은 서울대 총장 취임 초기인 2002년 ‘우 조교 성희롱 사건’이 재계약 탈락된 여자의 앙심에서 비롯됐다고 말했다가 여성계에 백배 사과하는 것으로 간신히 넘어갈 수 있었다. 좌우 가리지 않고 누구와도 잘 어울리는 성향 덕이 크다. 2005년 하버드대 총장 4년차였던 서머스는 “여성이 과학계에 적은 이유는 남녀 간의 내재된 차이 때문”이라고 말했다가, 과히 틀리지 않는 얘기고 사과까지 했는데도 끝내 1년 뒤 쫓겨나고 말았다. 좌우할 것 없이 곧잘 적으로 만드는 오만한 성격 탓이 크다.

그 뒤 서머스는 엄청나게 달라졌다. 1999∼2001년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재무장관을 할 때는 균형재정, 자유무역, 금융부문 탈규제에 앞장섰던 그였다. 그러나 시련을 겪으면서 서머스는 세계화의 부작용과 불평등 문제에 천착하기 시작했고, 정부가 적극 개입해 시장 실패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케인스주의로 돌아왔다. ‘뉴요커’ 최근호는 서머스가 “내가 변한 게 아니라 세상이 변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고 전했다.

서머스에 비해 본래 케인스주의자인 정운찬이 이명박 정부에 합류한 건 그리 놀랍지 않다. 글로벌 위기로 세상이 변하면서 현 정부도 정부의 역할을 키우고 친서민정책에 힘쓰기 때문이다. 그가 현 정부에만 특별히 매서웠던 것도 아니고, 이미 감세나 금산분리에 대한 소신은 바꾼 눈치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시절에도 “정부가 재벌개혁과 구조조정을 과감히 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던 그였다. 노무현 정부 때는 대입정책을 놓고 맞서면서 시장논리를 무시한 부동산정책을 비난하는 등 좌우파를 넘나들었다.

그 덕분에 정운찬은 개혁적 경제학자라는 명성을 얻었다. 스승인 조순 씨의 좌우명이 지행합일(知行合一)이니만치 애제자인 그의 삶도 그럴 것이라는 믿음도 갖게 했다. 총리 청문회에서, 그리고 청문회가 끝난 뒤에도 끊임없이 드러나는 그의 석연치 않은 행적과 변명이 우리에게 실망과 배신감, 냉소를 안겨주는 것도 이 때문이다.

‘꽃가마 꿈’ 버려야 신뢰 얻는다

돈 문제보다 걸리는 건 거짓말과 말 바꾸기이고, 이보다 심각한 건 그 속에 담긴 인식이다. “저희 애가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했단 말입니까”하고 목청을 높였다가 하루 만에 “설명을 잘못했다”고 말을 뒤집은 일이 단적인 예다. 미국 국적을 포기하겠다는 아들에게 “미국 비자를 다시 받기 힘들고 유학 가면 학비 감면 혜택이 있으니 다시 생각하자”고 말린 사람이 바로 자신이면서 설명을 잘못할 리 없다.

서울대 총장을 지냈지만 아들은 유학 가기를 기대하는 건 부정(父情)의 발로라고 치자. 그러나 유학비 덜 들이자고 국적 포기도 마다않는 국가관은 공직자로서 문제가 있다. 2007년 한창 대선후보 물망에 오르내릴 때 “한국이 강소(强小) 또는 강중(强中)국가로 가려면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이 축적돼야 한다”던 정운찬 자신이 바로 그 신뢰를 무너뜨린 것이다.

서머스 역시 청문회에 서야 하는 각료로 임명됐다면 곤욕을 치렀을 것이 분명하다. 총장 퇴임 뒤 2년간 ‘D.E. 쇼 앤 컴퍼니’라는 굴지의 헤지펀드 운용사에서 자문료 520만 달러, 월스트리트에서 강연료 270만 달러 등을 챙긴 과거가 있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금융위기의 불씨를 키우고, 금융위기의 주범들에게 돈을 받은 서머스가 금융규제를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머스는 그 뛰어난 능력으로 탁월하게 정책을 조율해 자칫 대공황으로 번질 뻔한 위기를 막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운찬이 명예를 회복하는 길도 능력을 보여주는 것밖에 없다. 관건은 세종시 문제 해결이다. 이미 대통령 측과 교감이 있었기에 총리로 내정될 수 있었고, 총리직을 잘만 하면 못다한 대통령 꿈도 이룰 수 있다고 계산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정운찬에게 ‘대통령 같은 총리’를 기대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젠 어떤 사심도 버리고 국민과 나라만 바라보며 더 좋은 세종시 건설에 자기 자신을 걸어야 한다. 사교육 문제는 다른 사람이 맡아도 되지만 이 일은 정운찬이 적임이다. 그리하여 능력이란 도덕성 혹은 구설수와 아무 상관없음을 보여준다면, 다음 대선 때 그야말로 꽃가마를 탈지도 모를 일이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