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당신들은 해고됐습니다”

  • 입력 2009년 9월 28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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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일을 앞두고 실패를 먼저 떠올리는 건 방정맞은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결단이 5년 후에 패착으로 판명됐다고 가정하고 미리 실패를 분석해보면 더 큰 파국을 막을 수 있다. 사후검시(post mortem)보다 사전점검(pre-mortem)은 그래서 좋다.

전국공무원노조 민주공무원노조 법원공무원노조 등 3개 노조가 통합해 민주노총에 가입하고 5년이 지난 후. 통합공무원노조와 민노총이 동반 몰락할 수도 있지만 거꾸로 나라가 몰락할 가능성도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와 영국이 산증거다.

공공노조가 잡아먹은 사회

이탈리아와 맞먹는 경제 규모의 캘리포니아를 재정파탄에 빠뜨린 숨은 주범이 공공노조다. 다른 주에선 공무원 노조원이 5명 중 2명도 안되지만 캘리포니아에선 5명 중 3명이 노조원이다. 비(非)정파적 잡지로 꼽히는 미국의 ‘이성’이 “지난 20년간 캘리포니아를 실질적으로 지배해온 공공노조가 재정적자를 키웠다”고 했을 정도다.

초심은 공공서비스 향상이었을지 몰라도 대부분의 공무원노조가 원하는 건 덜 일하고 더 받기다. 막강 공무원노조가 정치인과 납세자를 인질 삼아 집단이익을 취한 덕에 그들이 누리는 임금과 혜택은 민간부문보다 46% 많다. 캘리포니아 주가 공직자들의 연금펀드에 보태주는 돈도 2001년 3억2100만 달러에서 작년 73억 달러로 폭증했다. 당연히 주민들에게 돌아갈 주정부 예산은 쪼들릴 수밖에 없다.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증세 여부 등을 물은 5월 주민투표에서 주민들은 ‘공직자 임금제한법’을 제외한 나머지 법안에 모조리 반대표를 던지는 것으로 ‘공공의 적’에 복수했다.

내년 5월 총선을 앞둔 영국에선 심각한 재정위기가 벌써 선거 쟁점으로 떠올랐다. 1970년대 ‘영국병’에 걸렸을 때만 해도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7%였는데 지금은 무려 12%다.

그때나 현재나 문제는 공공노조다. 영국 역시 공공부문의 노조가입률이 민간의 3배나 된다. 노조로부터 운영자금을 받는 노동당이 1997년 집권한 이래 일자리 3개 중 2개가 공공부문에서 나왔다. 강성노조 덕에 지난 5년간 임금이 30% 올라서 정부지출의 4분의 1을 잡아먹는다. 공무원 평균 수입이 민간인을 앞질렀는데도 생산성은 되레 떨어져 유럽연합(EU)에서 제일 크고 비효율적인 정부로 꼽힌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이들이 은퇴 후 죽을 때까지 먹고살 연금을 대주기 위해 영국인은 수입의 30%를 바쳐야 한다고 했다.

글로벌 위기 이후 불거진 건 가진 자와 안 가진 자의 갈등만이 아니었다. ‘큰 정부’가 ‘보이는 손’을 마구 휘두르면서, 제 이익만 무섭게 챙겨온 관(官)과 그럴 힘이 없는 민(民)의 격차가 확연히 드러났다. 부자와 대기업들은 세금이라도 많이 내고 일자리라도 만든다. 그러나 세금으로 제 배 불리는 공공부문은 민간부문에서 생겨날 일자리까지 잡아먹는 불가사리다.

세금내는 국민이 두렵지 않은가

세계적으로 노조가 쇠락하는 가운데서도 공공노조만 기세등등한 이유를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마이클 워치터 교수는 “글로벌 경쟁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기업은 일자리 하나, 상품 한 가지를 놓고도 중국 또는 선진국과 경쟁한다. 무조건 보호만 주장하는 노조는 글로벌 경쟁시대엔 설 땅이 없을 수밖에 없다. 노조가 활개 칠 수 있는 유일한 틈새시장이 공공부문인 것이다. 어금니가 빠지는가 싶던 우리의 민노총도 드디어 통합공무원노조를 업고 원기를 회복하는 모양이다. 어떤 경우에도 깨지지 않는 이들 철밥통을 바라보는 보통사람들의 부러움과 원망, 분노는 지금 하늘을 찌르고 있다.

김정일 선군체제와 머리를 맞대고 있는 우리는 외국과 사정이 또 다르다. 좋은 근로조건이나 노동자가 대접받는 사회를 요구하는 다른 나라의 일반적 강경 좌파노조같이 봐줄 수 없는 상황이다. 전공노는 반(反)정부단체처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이라크파병 등에 반대했고, 실체도 모호한 민중민주주의를 추구한다. 민노총은 연방제 통일을 지지하며 불법적 폭력적 정치투쟁을 일삼는 좌파세력이다. 이런 민노총의 ‘핵우산’ 아래 들어간 통합공무원노조의 파괴력은 단순히 국가 재정을 파탄시키는 데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외국인투자를 막는 주요인으로 강성노조가 북핵과 동격으로 지적될 만큼 민노총은 체제 위협적이다.

정부의 한 핵심 관계자는 최근 사석에서 “우리가 진짜 싸워야 할 대상은 민주당이 아니라 민노총”이라고 했다. 전공노 게시판엔 “당신들은 해고되었습니다”라는 ‘대한민국 국민’이 쓴 글이 올라가 있다. “잘됐다. 이번 기회에 다 바꾸자”는 제목 밑에 “불황기에 11만 일자리 창출인가”라는 글도 붙어 있다. 나라가 무너지는 것보다는 통합공무원노조와 민노총이 무너지는 게 그래도 낫다. 두 노조가 안 엮이고 개과천선하면 파국은 막을 수 있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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