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식 칼럼]김상곤 교육감이 달라져야 할 이유

  • 입력 2009년 10월 9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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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은 전국 16개 시도 교육감 가운데 이질적인 존재다. 김 교육감의 이념 성향은 민주당보다 왼쪽이다. 경기도에서 교육 분야만큼은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같은 좌파 정당이 장악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진보 진영의 몫이 크지 않은 우리 사회에서 아주 특이한 사례를 우리는 경험하고 있다.

무상급식 집착은 우선순위 혼동

교수 출신인 김 교육감은 올해 4월 ‘반(反)MB교육’을 내걸고 당선됐다. 지역의 교육대통령을 해보겠다며 출사표를 낸 사람이 자신의 장점을 앞세우지 못하고, 현 정부와 무조건 반대로 가는 교육을 하겠다고 나선 것은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그는 취임 100일을 맞아 가진 기자회견에서 ‘그동안 대학교육에는 관심이 많았지만 초중등 교육에 대해서는 깊이 있는 대안을 마련할 수 있는 수준까지는 도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지역 초중고 교육의 지휘자인 교육감이 ‘사실은 초중등교육을 잘 모른다’고 뒤늦게 털어놓은 것이다. 전혀 준비 안 된 사람이 교육감에 덜컥 당선될 수 있는 선거 방식이라면 문제가 있다.

그는 전체 유권자의 5%가 그를 지지한 결과로 교육감 자리에 올랐다. 교육감선거의 낮은 투표율 탓이다. 대표성 논란이 있었지만 투표는 투표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가 교육감이 된 이상 성공하길 바란다. 교육계 내부에서 교육감은 권한이 막강한 반면에 이미지는 좋지 않다. 공공기관 가운데 부패가 가장 심한 곳으로 교육청이 자주 거론된다. 정말 유능한 사람이 들어와 내부를 확 바꾸고 만족할 만한 교육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좋은 일 아니겠는가. 다른 교육감들이 바짝 긴장할 것이고 우리 교육에 자극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행보는 실망스럽다. 그는 초등학생 전원에게 무료로 급식을 제공하겠다고 나섰다. 지금은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만 돈을 받지 않는다. 전원 무상급식을 할 경우 소요되는 1년 예산은 3000억 원이 넘는다. 경기도교육청의 내년 총예산은 8조2000억 원으로 교직원 월급 등 경직성 경비를 제외하면 1조 원 정도만 교육 사업에 쓸 수 있다. 무상급식 예산을 크게 늘리면 그만큼 다른 사업비가 축소되는 구조다. 노후 학교시설 교체비용, 도서구입비 등이 줄어들 것이다. 김 교육감은 교육의 질보다 공짜로 밥을 먹이는 쪽을 택했다. 다음 선거를 위한 포석이란 말을 들을 만하다.

경기도는 지난해 10월 실시된 전국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16개 시도 중 최하위권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이 14위, 중학교 3학년이 13위였다. 이 정도라면 급식보다는 교육의 질을 높이는 일이 급하다고 봐야 한다.

김 교육감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시국선언 전교조 교사의 징계를 미루고 있다. 전교조에 유리한 단체협약도 해지하지 않고 연장했다. 그는 전교조의 열성적 지지에 힘입어 당선됐다. 그러나 같은 편에 연연하는 것은 진보 진영을 위해서도 좋지 않다. 더구나 교육감은 교사를 감독하는 직책이다. 국민은 진보 진영 하면 끼리끼리 봐주는 사람들이라는 인상을 더 굳힐 것이다.

‘전교조 감싸기’ 진보 쪽에 해로울 뿐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정운찬 국무총리에게 사교육 대책을 주문했다. 교육전문가인 정 총리 역시 ‘정부 개입’을 시사해 교육정책이 실용 쪽으로 이동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 정부가 서민정책을 선점하면서 민주당 같은 좌파의 입지가 좁아졌다. 김 교육감이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으론 진보 진영에 해가 될 뿐이다.

일부 진보 단체는 김 교육감의 무상급식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나오자 ‘아이들 밥 좀 먹이자는데 뭐가 잘못인가’라고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진보의 수준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는가. 김 교육감이 할 일은 한 끼의 급식보다는 가난한 학생들에게 진짜 실력을 키워주는 일이다. 진보 진영은 오히려 김 교육감에게 ‘똑바로 하라’고 야단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모처럼의 기회를 살릴 수 있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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