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율 1.19쇼크]<10회·끝>출산지원 이렇게 하자

  • 입력 2005년 7월 8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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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인구 증가의 ‘비밀’을 누구나 알고 싶어하는데 한마디로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어느 한 정책을 통해 출산율이 회복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난센스다.”(위베르 브랭·프랑스 국립가족단체연합회장)

“생물은 번식이 개체의 생존을 심각하게 위협한다고 예견할 때 스스로 번식을 거부한다.”(최재천·崔在天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의 저서 ‘당신의 인생을 이모작하라’에서)

젊은 부부가 출산을 기피하는 것은 출산이 미래의 불확실성을 높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출산지원정책만으로 출산율이 회복되리라 믿는 사람은 없다. 출산율 회복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불안하고 요동치는 사회의 기본 틀이 바뀌어야 가능한 일이다. 본보는 이 같은 전제를 인식하면서 자문위원들을 대상으로 △여성의 노동과 양육 양립 정책 △보육 관련 정책 △개별적 재정지원 정책 등 출산, 양육과 직접 연관된 3개 분야의 중요도를 평가해 봤다. 그 결과 ‘노동과 양육 양립 정책’의 중요도가 4.1점(5점 만점)으로 가장 높았다. 자문위원들은 ‘개별적 재정지원 정책’(3.4점)을 가장 낮게 평가했다. 세부 항목 중에서는 ‘출산휴가 급여를 기업주가 부담하는 대신 사회보험화’하는 데 대한 지지도가 가장 높았다.

○ 출산친화적 직장환경 만들려면

최근 본보와 한국IBM이 실시한 ‘존경받는 30대 한국기업’ 조사에서 대상을 받은 유한킴벌리 직원들의 ‘합계출산율’(전 직원의 자녀 수를 전체 직원의 수로 나눈 값)은 1.89명이다.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는 자녀의 수)이 1.19명인 현실에 비해 매우 높다.

유한킴벌리는 4조 2교대(생산직), 출퇴근시차제(관리직) 등 ‘가정친화적 근무제도’를 운영한다. 출산휴가 때 수당을 법정기준보다 20만 원 더 주고 육아휴직에 따른 불이익이 없다. 직원 이직률은 0.3%에 불과하다.

이은욱(李殷煜) 전무는 “출산, 양육 지원제도 도입을 기업이 당장은 부담으로 받아들이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이득”이라고 말했다.

자문위원들은 ‘노동과 양육의 양립 정책’이 기업의 여성 고용 회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려면 출산휴가, 육아휴직의 급여 지급, 대체인력 고용에서 기업의 부담이 줄도록 정부나 기금의 지원이 필요하다.

한국의 육아휴직 기간(1년)이 짧은 것은 아니다. 눈치가 보여 쓰기 어렵거나 40만 원에 불과한 낮은 급여가 문제다. 자문위원들은 △육아휴직 급여의 현실화 △만 1세 이하 자녀에 대해서만 육아휴직을 쓰도록 한 규정의 수정 △남성의 육아휴직 의무화 등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 손자 보육에도 정당한 보상을

아시아나항공은 기혼 여성 비율이 49%나 된다. 이 회사에서는 사내 여론조사 결과 직원들이 직장보육시설 설치보다 보육료 지원을 선호해 매달 7만 원의 보육료를 지급하고 있다,

자문위원들은 국내 보육환경이 워낙 열악하므로 영유아를 돌보는 공보육 시설을 늘려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지만 시설의 무조건적 증설에는 우려를 표시했다.

조영태(曺永台) 서울대 교수는 “올해 보건대학원의 한 박사학위 논문에서 시도별 보육시설 수가 출산 행위와 무관한 것으로 나타났다. 민간보육과 공보육 시설을 따로 조사했는데 결과가 같았다”고 설명했다.

이는 0∼3세 영유아의 부모가 보육시설보다 부모, 친지를 통한 보육방식을 선호하기 때문. 조 교수는 “지금 같은 방식의 보육시설 확충은 출산율을 높이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으며 시설 확충보다 가족이 함께 보육을 담당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이 더 효과적”이라고 지적했다.

설문 대상에는 포함되지 않았으나 자문위원들이 적극적으로 제안한 정책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자를 보육할 때 노동시장에서 일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비용을 지원해 주는 방안. 또 조부모가 보육을 위해 이사할 때 취득세 등 세제 감면을 해 주는 방안도 고려해 볼 만하다고 제안했다.

○ 세제혜택보다 현금지원을

자문위원들은 양육지원금 등 현금지원과 세제혜택 중 현금지원이 더 효과적이라고 응답했다. 박하정(朴夏政) 보건복지부 인구가정심의관은 “한국은 조세 선진국과 달리 면세자가 많아 세제혜택은 중산층에만 혜택이 돌아가는 소득 재분배의 왜곡으로 귀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재정지원은 그 효과에 대해 가장 의견이 엇갈리는 분야였다. 단 공통된 의견은 한국에서 출산을 기피하는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 교육비 경감을 위한 대책이 어떤 방식으로든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 불임부부의 임신 관련 검사, 의료비도 시급한 지원 대책이 필요한 분야로 지적됐다.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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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4분의1은 老부부 단둘이 산다▼

늙은 아내는 밥만 차려줄 뿐 남편과 식사를 같이 하지 않은 지 오래다. 단둘이 사는 집에서 부부는 이미 출가한 자식들 이야기를 제외하면 서로 할 말이 없다. 겉으로는 문제없어 보이지만 이들이 여행을 같이 가지 않은 지도 오래됐다.

유경(劉暻) 어르신사랑모임 대표가 전해준 어느 노부부의 일상이다. 유 대표는 “어르신들을 상담해 보면 둘만 사는 ‘빈 둥지’ 시기가 길어지면서 이를 감당 못하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저출산은 단지 ‘국력’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이를 적게 낳는 추세는 평균수명 연장과 맞물려 부부가 함께 사는 기간이 길어지는 생애주기의 변화를 가져왔다.

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부부가 결혼해 사망하기까지의 기간(여성 기준)은 1979년 이전 평균 51.2년에서 2000년 이후 54.7년으로 늘었다.

특히 자녀 수가 줄어 자녀를 낳아 결혼시키기까지의 기간이 단축된 탓에 노인 부부만 남는 ‘빈 둥지’ 시기는 1979년 이전 15.19년에서 2000년 이후 18.21년으로 늘어났다.

조사를 진행한 김승권(金勝權) 연구위원은 “가족생활에서 부부관계의 중요성이 더욱 증대되는데도 준비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성인 스스로 달라진 생애주기에 맞춰 노년을 설계할 필요가 있다.

저출산이 ‘문제’가 되는 또 다른 이유는 사회 고령화 때문이다. 미래에 노인 인구를 부양할 사람이 없어서다. 그러나 출산율 회복을 고령화사회 해결책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은 위험하다.

유 대표는 “노인 인구를 ‘짐’으로 간주할 경우 앞으로 세대간 전쟁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며 “노인이 계속 일해 스스로 생활을 책임지고 제2의 인생을 살도록 사회 전체가 준비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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