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들이 투자 판단을 위해 꼭 필요한 정보 중에 흔히 잊기 쉬운 것이 있다. 바로 다른 주주들에 대한 정보다. 특히 회사의 경영권을 갖지는 않았지만 그에 못지않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주주가 누구이며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지를 아는 것은 일반 투자자들에게는 주식을 계속 보유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데 대단히 중요하다.
증권거래법에 ‘대량주식보유 보고제도’가 있다. ‘5% 규칙’이라고 불리는 이 제도는 흔히 조기경보 체제라고 해서, 일반적으로는 회사의 경영권 보호를 위한 것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이 제도의 보다 중요한 기능은 일반 투자자들에 대한 주주 정보의 제공이다. 이 제도는 대량 주식을 보유한 주주가 주식을 보유하게 된 경위와 변동 상황은 물론 왜 주식을 보유하며 앞으로는 어떻게 할 것인지 공시하게 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모든 나라가 이 제도를 운영한다. 미국은 우리와 같은 5%, 영국은 3%, 이탈리아는 2% 규칙을 갖고 있다.
최근 외국인 투자자의 비중 증가와 함께 이 제도의 개선이 논의된다. 대표적인 이슈는 주식의 취득 목적과 주주의 최종적인 배후를 공개하게 하자는 것이다. 보유 목적의 공시는 주식의 비정상 수익률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리처드 루백 교수에 의하면 단순한 투자 목적이라고 공시한 경우와 경영권을 취득하기 위해 추가로 주식을 취득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공시한 경우 비정상 수익률은 각각 3.24%, 7.74%였다고 한다. 즉 제대로 공시하지 않으면 다른 투자자들의 손해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최근 대형 외국계 펀드와 이른바 슈퍼 개미들이 허위공시를 해 다른 투자자들의 원성을 산 일도 있다. ‘마음이 바뀌었다’고 하면 그만인가. 그러나 이에 대해 아직 마땅한 규제 수단이 없어 감독당국도 고심하고 있는 듯하다. 보유 목적의 허위공시를 처벌할 근거를 마련하고 보유 목적을 갑자기 바꿀 경우 일정 기간 의결권을 제한하는 등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미국은 궁극적인 배후자의 신원을 공시하게 한다. 또 취득 목적을 8가지 항목에 걸쳐 상세히 기재하도록 해 말을 바꿀 수가 없다. 하지만 우리는 자칫 외국인들의 투자를 위축시키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이 제도를 보다 강력하게 정비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 그런 걱정이 타당한지 따져볼 때가 됐다.
기업의 경영자들은 주주들의 경영 투명성 요구를 수용해야 한다. 그러나 주주들도 상응하는 ‘의무’가 있다. 주주는 회사의 손님이 아니라 함께 가야 할 동반자다. 무리하고 이기적인 언행을 일삼는 주주가 있다면, 또 법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투명성을 거부하는 주주가 있다면, 경영자는 사외이사들의 지원을 받아 ‘노’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김화진 미국 변호사·KDI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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