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박태우]‘北인권’ 우리만 눈감을건가

  • 입력 2004년 12월 20일 18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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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유럽연합(EU)이 북한의 인권문제를 유엔에 상정했다. 당시 외교통상부의 한 관계자에게 물었다. “왜 이런 중요한 역사의 현장에 우리 정부가 의도적으로 불참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북한을 자극해선 안 된다고 다소 궁색하게 답했다.

얼마 전 미국 의회가 ‘북한인권법’을 통과시켰을 때에도 우리 정부는 아무런 공식 논평을 내지 않았다. 단지 집권당의 일부 의원들이 앞으로의 남북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까 우려된다는, 미국 입장에선 이해할 수 없는 메시지만 미국에 전했을 뿐이다.

최근 일본도 탈북자 보호를 위한 ‘북한인권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일본은 탈북자들에게 영주체류 자격을 부여하고 일본어 및 직업교육을 실시하며 탈북자를 지원하는 민간단체에 재정을 지원하고 정보를 제공한다는 내용이다. 일본의 제1야당인 민주당도 ‘북한인권침해구제법안’을 내년 정기국회에 상정할 방침인데, 미국의 북한인권법을 참고로 일본형 법안을 완성했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일본의 이번 움직임에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김대중 전 대통령은 소위 남북화해, 인권, 평화를 상징하는 정치지도자로서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현 정부는 김 전 대통령의 이념을 토대 삼아 각종 정책을 마련해 실천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는 북한 내에서 300만 명 정도가 아사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북한의 세습왕조에 반대하거나 탈북을 시도한 정치범들은 정치범수용소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리고 있다고 많은 탈북자들이 증언한다. 인권을 최고 가치로 삼고 민주주의 발전을 추구하는 대한민국이 북한의 시대착오적 인권탄압 행위에 대해 북한의 비위를 거스른다는 이유로 또 침묵한다면 이 또한 역사의 진실을 왜곡하고 역사의 정의를 무시하는 행위가 될 것이다.

대북정책의 추진 과정에도 전략과 전술이 있을 것이기에, 국민에게 공개하고 동의를 얻어 추진할 부분과 안보 등의 이유로 비공개로 추진할 정책이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정책을 추진하든, 그 기조가 국민의 공감에 토대를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의 인권 문제는 북한의 체제 문제를 뛰어넘는 인류 역사의 보편적인 진실과 정의의 문제일 뿐 아니라 우리의 국시(國是)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 정부가 그동안 공식 또는 비공식적으로 북한에 그 많은 지원을 하고도 탄압과 통제에 시달리는 북한 동포들에 대해 인도적인 목소리를 전달할 수 없다면, 전략 전술의 차원을 뛰어넘어 잘못된 대북정책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햇볕정책’이 ‘평화번영정책’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이처럼 기본원칙의 문제마저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대북정책이라면 양식 있는 국제사회의 지식인들에게 얼마나 큰 웃음거리인가. 후대의 역사가들이 무어라고 할지 참으로 난감하다.

그동안 우리의 사회운동 세대들은 이 나라의 국익과 안보, 그리고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고난의 투쟁을 해 왔다. 그러나 만에 하나, 인권법을 보는 시각이 시대에 뒤떨어진 편협한 좌편향적 사고에서 나온 것이라면, 이것이야 말로 국익을 위해 정말 경계해야 할 일이다.

박태우 대만국립정치대 방문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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