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땅 우리魂 영토분쟁 현장을 가다]<23>주변국의 사례下

입력 2004-09-23 19:16수정 2009-10-09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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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3월 중국 민간단체 회원 7명이 센카쿠 열도에 상륙했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자 중국 베이징에서 중국인들이 일장기를 불태우며 항의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작은 섬들과 암초, 산호초들로 구성된 남중국해의 난사(南沙)군도(스프래틀리 군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이곳에 20세기 들어 막대한 석유가 묻혀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주변국들이 앞 다퉈 깃발을 꽂기 시작했다. 지금은 6개국이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동중국해 센카쿠(尖閣)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도 사정이 비슷하다. 중국과 일본이 자기 영토라며 각자 해저자원을 탐사하고 양국 시민단체들은 경쟁적으로 ‘상륙작전’을 편다.》

▼일본 vs 중국…센카쿠(尖閣)열도 vs 댜오위다오(釣魚島)▼

‘댜오위다오는 일본 것. 일본 해커 Willl 남김.’ 7월 25일 중국 민간단체 ‘댜오위다오 보호연합회’의 홈페이지에 이런 글이 뜨면서 홈페이지가 마비됐다. 중국 네티즌들도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자’는 격문을 쏟아냈다. 동중국해의 영유권 분쟁이 인터넷에서 불붙은 것이다.

영유권 분쟁의 전위대는 민간단체. 1996년 7월 일본의 우익단체 ‘일본청년사’ 회원 7명이 이 섬에 등대를 설치하자 중국에서 대대적인 규탄시위가 벌어졌다. 1978년과 1988년에 이어 세 번째. 올해 3월엔 중국 민간단체 회원 7명이 이 섬에 상륙했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돼 강제 추방됐다.


정부 차원의 신경전도 뜨겁다. 1992년 중국은 이 섬을 자국 영토에 포함시키는 영해법을 발표해 일본의 거센 반발을 불렀다.

올해 3월에는 일본 중의원 안전보장위원회가 ‘센카쿠열도는 일본 영토’라는 내용의 결의문을 채택했다. 이에 중국은 양국의 고위 당국자가 참석할 예정이었던 몇 개의 행사를 취소하면서 “일본의 결의는 불법무효”라고 선언했다.

● 흑해유전 규모의 석유매장 가능성

센카쿠열도는 5개의 섬과 3개의 암초로 돼 있다. 일본 오키나와에서 약 400km, 대만에서 약 190km 떨어진 곳. 물 위로 솟은 면적은 6.3km² 정도에 불과하다. 1969년 유엔 아시아·극동경제위원회가 동중국해에 대량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이 섬이 국제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 추정 매장량은 흑해유전에 맞먹는 72억t.

이후 일본과 중국은 각각 이 섬이 포함된 배타적경제수역(EEZ)을 주장하면서 자원탐사활동을 벌여 왔다. 올해 5월 중국 배가 이 섬 인근에서 해양 조사를 벌이는 장면이 목격됐다. 일본은 “중국이 우리 EEZ 내에서 해양조사 활동을 하려면 사전 통보키로 한 합의를 어겼다”고 비난했으나 중국은 “우리 영해이므로 일본에 통보할 필요가 없다”고 반박했다.

일본도 지난달 중국의 경고를 무시하고 동중국해 가스전을 탐사하기 위해 자원조사선을 출항시켰다. 중국 해군함정들이 진로를 방해하면서 충돌 일보 직전까지 간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정부는 조만간 이곳에 1000t급의 신형 순시선을 투입할 태세다.

● ‘대만 부속도서’ 여부가 분쟁의 초점

중국은 이곳을 일본보다 먼저 발견했다며 연고권을 주장한다. 1372년 중국이 이곳을 조사했다는 기록이 있고, 1785년 일본에서 발간된 지도에도 이곳이 중국 땅으로 표시돼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일본이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뒤 시모노세키조약(1895년 4월)으로 할양받은 ‘대만과 그 부속도서’에 이곳이 포함돼 있다고 본다. 즉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국의 결정에 따라 대만을 돌려줬듯이 센카쿠열도도 중국에 돌려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일본은 1887년과 1892년의 조사 결과 이곳이 누구의 소유권도 미치지 않는 무인도임을 확인하고 1895년 1월 일본 땅이라는 표석을 세웠다고 주장한다. 그 시점이 시모노세키조약 체결 이전이므로 중국에 돌려줘야 할 대만의 부속도서가 아니라는 얘기다.

일본은 또 오랫동안 이곳을 실효적으로 지배한 사실을 내세운다. 이곳에 기상사무소를 세우고 자위대 정찰을 실시하는 등 주권활동을 벌여 왔다는 것이다.


▼남중국해 6개국… 난사군도(스프래틀리 군도) 분쟁▼

1999년 7월 난사군도에서 중국 어선이 필리핀 군함과 충돌한 사건과 관련해 양자회담을 갖고 있는 중국 탕자쉬안 외교부장(왼쪽)과 필리핀의 도밍고 시아존 외무장관. -AFP 자료사진

4월 19일 100명의 관광객을 실은 베트남 군함 1척이 호치민시 인근의 항구를 출발했다. 7박8일 일정의 난사군도 크루즈였다. 베트남은 “투어의 목적이 난사군도에 대한 주권을 베트남이 보유하고 있음을 선포하려는 데 있다”고 서슴없이 밝혔다.

중국 외교부는 “관광단 파견에 대한 불만을 여러 차례 전달했으나 베트남이 묵살했다”고 비난했다. 대만과 필리핀도 “이번 행위는 긴장을 고조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트남 국영항공은 난사군도 관광 촉진을 위해 내년에 정기항로까지 개설할 태세다.

이에 따라 2002년 11월 동남아국가연합(ASEAN) 10개 회원국과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긴장을 고조시키는 일을 자제하기로 한 ‘남중국해 당사국 행동 선언문’이 나온 이후 한동안 잠잠하던 영유권 분쟁이 재연되고 있다.

그전에도 이곳에선 분쟁국간의 충돌이 잦았다. 1988년 중국과 베트남의 해상 무력 충돌로 베트남 선박 3척이 침몰하고 70여명의 사상자가 났다. 1995년 미스치프 암초를 중국군이 점령하자 필리핀군은 중국군을 몰아내고 중국 영토 표지를 파괴했다.


● 6개국의 영유권 주장과 유혈충돌

1998년에는 필리핀군이 이 일대에서 중국 어부 22명을 체포했고, 1999년에는 필리핀 전함이 중국 어선을 격침시켰다. 또 2000년 대만이 남중국해 기지에 대공미사일을 배치하자 중국 해군은 약 500km 떨어진 해역에서 미사일 함정을 동원한 해상훈련을 실시했다.

난사군도는 약 41만km²의 해역에 퍼져 있는 100∼200개의 작은 섬과 산호초로 이뤄져 있다. 중국 대만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브루나이가 이곳의 전부 혹은 일부에 대해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으며 현재 약 50개의 섬을 분쟁국들이 점유하고 있다. 중국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은 점유지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다.

이곳의 영유권 분쟁은 1960년대 주변 해역에 엄청난 양의 석유가 매장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불거졌다. 1989년의 조사에선 쿠웨이트의 매장량(130억t)보다도 많은 총 177억t의 석유가 매장돼 있는 것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 쿠웨이트보다도 많은 석유매장량

이곳은 걸프만-말라카해협-동중국해로 이어지는 해로의 중간지점이어서 전략적 중요성도 크다. 관련국들은 자원탐사와 유전개발을 경쟁적으로 진행하는 한편 자국이 점유하고 있는 섬에 군사시설 관측소 대피소 등을 설치해가며 영유권 굳히기에 나서고 있다. 베트남과 필리핀에서 각각 약 500km, 중국에서 약 1300km 떨어져 있는 난사군도 분쟁의 주된 당사자는 이들 3개국이다. 중국은 역사적인 근거를, 필리핀은 지리적 근접성을 들어 영유권을 주장한다. 베트남은 역사적 요인과 지리적 요인 모두 내세우고 있다.

중국은 난사군도 전체가 자국 영토라는 입장이다. 명(明)대인 1403년부터 1433년까지 이곳을 항해했다는 기록이 상세한 지도와 함께 있다는 것. 베트남 또한 프랑스가 1930년대 이곳을 식민지인 베트남령으로 귀속시킨 것을 근거로 전체에 대한 영유권을 고집하고 있다. 한편 필리핀은 1956년과 1971년에 이 일대를 탐사한 결과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않은 사실을 확인했다며 1972년 일부 섬을 자국 영토에 편입시켰다.


특별취재팀

임채청부국장 ccl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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