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196>卷四. 흙먼지말아 일으키며

  • 입력 2004년 7월 5일 18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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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바람(7)

“제나라 왕 전도(田都)가 쫓겨 왔다고? 누구에게서, 왜?”

장량이 올린 글은 깜빡 잊고 패왕이 놀라 물었다. 근시(近侍)가 대답했다.

“잘은 모르오나 제나라 전 승상 전영(田榮)이 임치(臨淄)를 치고 전도를 내쫓았다고 합니다. 나머지는 제나라 왕이 들거든 직접 하문하여 보시옵소서.” 이에 패왕은 전도를 불러들이게 했다. 한나절도 못돼 빠른 말로 먼 길을 달려온 전도가 패왕 앞에 후줄그레한 모습으로 엎드렸다.

“전영이 왕을 내쫓았다고 하는데 사실이오?”

“그렇습니다. 전영이 임치성 밖에서 기다리다가 저희 군사들을 불시에 들이쳤습니다.”

“그렇지만 왕도 적지 않은 군사를 거느리고 있지 않았소? 더구나 그 대부분은 함곡관 안으로 들어가 싸움을 거듭한 군사들이 아니었소?”

“워낙 뜻밖의 일이라…. 뿐만 아니라 누가 감히 대왕께서 정한 일을 거역하랴, 싶어 마음을 놓은 게 화근이었습니다.”

전도가 무안해하면서도 슬며시 패왕의 심기를 건드렸다. 패왕이 벌써 적잖이 뒤틀린 목소리로 물었다.

“전영, 이 쥐 같은 놈이…. 그래 왕은 내 이름을 앞세워 보았소?”

“그야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대왕의 명이라 하였으나 전영은 되레 비웃기만 했습니다.”

“무어라? 전영이 나를 비웃었다?”

드디어 패왕이 범처럼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미욱한 주제에 황소 같은 힘만 믿고 천하를 제멋대로 쥐락펴락 하려드는 고집불통이라 하였습니다. 언제든 산동에서 만나기만 하면 단단히 버릇을 가르쳐 주겠다고도 했습니다.”

“여봐라. 무엇들 하느냐? 어서 장졸들을 모아들여라. 갑옷투구를 내오고 오추마에 안장을 얹어라. 내 전영을 목 베어 천하에 우리 서초(西楚)의 위엄을 떨쳐 보이겠다!”

패왕이 그렇게 소리치며 몸을 일으켰다. 그때 곁에 잇던 범증이 나서서 말렸다.

“제나라는 예부터 동쪽의 강국으로, 진나라 시황제조차도 맨 마지막에 가서야 속임수로 겨우 멸망시킬 수 있었습니다. 한쪽 말만 믿고 함부로 제나라를 적으로 돌려서는 아니 됩니다. 먼저 사람을 풀어 내막을 차분히 알아본 뒤에 군사를 내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자 패왕도 퍼뜩 앞뒤 없는 분노에서 깨어났다. 억지로 숨결을 고른 뒤에 못마땅한 눈길로 전도를 노려보며 말했다.

“아부(亞父)의 말씀이 옳소. 일에는 반드시 까닭이 있기 마련이니 먼저 그것부터 알아봐야겠소. 거기다가 전도 장군은 제나라를 받고서도 끝내 지켜내지 못했으니 더는 왕위에 머물 수가 없소. 당분간은 한 객장(客將)으로 내 군막에 머물면서 하회를 기다리시오!”

그리고 범증의 말을 따라 제나라에 가만히 사람을 풀어 일의 경과를 알아보게 했다.

한편 전영은 패왕이 보낸 제나라 왕 전도를 쳐부순 기세로 교동왕(膠東王) 전불(田불)을 덮쳐갔다. 그때 역시 패왕이 정해준 봉지(封地)인 교동으로 가고 있던 전불은 도중에 먼저 이른 전영의 사자를 만나자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홀로 궁리하다가 마음을 정하지 못해 신하들을 모아놓고 물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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