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159>卷三. 覇王의 길

  • 입력 2004년 5월 23일 17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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鴻門의 잔치(17)

번쾌는 들고 있던 방패를 땅바닥에 엎어놓고 그 위에 돼지 다리를 받아놓은 뒤 허리에서 칼을 뽑아들었다. 방패를 도마 삼아 큰 돼지다리를 장검으로 뭉턱뭉턱 잘라 먹는 번쾌의 모습은 호탕함을 넘어 웅장한 느낌까지 주었다. 거기 반한 항우가 다시 감탄하며 물었다.

“대단한 장사로다! 더 마실 수 있겠는가?”

그 말에 칼질을 멈춘 번쾌가 입안에 든 고기를 서둘러 씹어 삼킨 뒤에 소매로 입가를 씻으며 말했다.

“신은 죽음도 겁내지 않고 이 자리에 나왔는데, 어찌 술 한 잔 더하기를 마다하겠습니까? 다만 그전에 대왕께 아뢸 말씀이 있사오니 어리석고 미련하다 물리치지 마시고 한번 들어 주시옵소서.”

그러잖아도 마음에 드는 번쾌가 그 주인인 패공보다 한 술 더 떠 대왕이란 칭호까지 바치자 항우가 너털웃음까지 보이며 말했다.

“장사의 말이라면 내 들어보겠다. 말하라.”

“무릇 진나라는 호랑이나 이리같이 흉악한 마음으로 온 백성을 다 죽이지 못할까 걱정되는 것처럼 사람을 죽여대고, 만들어놓은 형벌을 다 사용하지 못할까 두려운 듯 사람들에게 함부로 형벌을 내렸습니다. 이에 천하가 모두 진나라에 등을 돌리고, 제후들이 사방에서 군사를 일으켰던 것입니다.

일찍이 우리 초나라의 회왕(懷王)께서는 먼저 진나라를 쳐 없애고 함양으로 들어가는 사람을 관중의 왕으로 삼겠다고 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패공께서는 먼저 진나라를 무찌르고 함양으로 들어 오셨으되 터럭만한 물건도 함부로 차지함이 없었으며, 궁실을 굳게 잠그고는 패상(覇上)으로 군사를 물리시어 오직 대왕께서 오시기만을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또 일부러 장졸을 보내어 함곡관을 지키게 한 것도 다른 도적들이 함부로 드나듦을 막고, 뜻 아니 한 변고에 대처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 패공은 이와 같이 나라를 위해 힘을 다하고 공로 또한 높은데, 대왕께서는 어찌하여 왕후(王侯)로 봉하여 상을 내리려 하지는 않으시고, 오히려 소인배의 헐뜯는 말만 믿어 공이 있는 사람을 함부로 죽이려고 하십니까? 이는 망해 없어진 진나라를 흉내 내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요, 포악함을 또 다른 포악함으로 바꾸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대왕을 위해서라도 그와 같은 일은 하지 않으시는 것이 옳을 듯합니다.”

그와 같은 번쾌의 말을 듣자 항우도 비로소 그 술자리를 감도는 미묘한 기류를 알아차렸다. 항장과 항백의 칼춤이 뜻한 바를 깨닫게 됨과 아울러 전날 밤 범증의 간곡한 권유가 떠오르며, 패공 유방의 실체를 다시 한번 심각하게 가늠해보게 되었다.

(저 뼈 없는 버러지[무골충] 같은 위인에게 이같이 충성과 용맹을 겸한 장사라니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어쩌면 저 자는 뼈도 없는 버러지가 아니라, 마음먹은 대로 커지고 작아지며 굽힐 때와 젖힐 때를 아는 술책가일 수도 있다. 저들 주종(主從)이 아우르면 나와 아부(亞父=범증)를 대적해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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