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마이 홈!]<1>‘바보상자’ 멀리하자

  • 입력 2004년 5월 6일 19시 28분


코멘트
TV를 안보는 신환주, 오혜숙씨 부부가 자녀의 교육을 위해 스크랩한 신문 기사를 고1인 딸 수진이와 함께 보며 시사 문제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다. -김동주기자
TV를 안보는 신환주, 오혜숙씨 부부가 자녀의 교육을 위해 스크랩한 신문 기사를 고1인 딸 수진이와 함께 보며 시사 문제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다. -김동주기자
《가정이 밝아지면 사회도 밝아지고, 가정이 맑아지면 사회도 맑아진다. 대화가 살아 있고 사랑이 푼푼한 가정에는 남편의 밀실 술자리, 아내의 외도, 아이의 ‘왕따’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하지만 가족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생활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삶의 방식을 바꿔 집에서 재미와 행복을 찾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진작 바꿀 걸…”하고 느낀다. 가정의 달인 5월을 맞아 가정을 살리기 위해 ‘오 마이 홈!’이란 제목의 시리즈를 연재한다.》

서울 양천구 목동에 사는 신환주(49·건축 감리사) 오혜숙씨(44·독서지도사) 부부는 6년 전부터 집에서 TV를 거의 켜지 않는다.

부부는 저녁을 먹고 나면 현재 고1인 딸, 중3인 아들과 온갖 얘기를 나눈다. 아이들에게 ‘말 못할 고민’이 쌓일 틈이 없다. 특히 신씨는 매일 1∼2시간씩 아이들의 숙제와 예습 복습도 도와주고 있다. 부부는 또 신문을 스크랩해 아이들에게 보여주며 시사문제에 대해 토론하는 시간을 갖는다.

▶연재물 리스트로 바로가기

오씨는 “TV를 끄면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많은 시간이 생기며 아이들은 책을 사랑하게 된다”고 소개했다.

한국에서는 TV를 안보면 ‘별종’으로 취급받기 십상이다. 그러나 외국인의 눈에는 하루라도 TV를 안보면 안달복달하는 한국인이 이상하게 보인다.

지난해 봄 한국인 남편과 결혼해 한국에서 사는 캐나다인 펠릭스 마조리(28·경기 안양시 평촌동)는 “여러 한국 가정에서 저녁식사가 끝나자마자 TV를 켜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TV를 보는 모습이 정말 신기했다”고 말했다.

그는 캐나다에서는 대부분의 가정이 저녁식사 후 디저트를 먹으면서 얘기를 나누고, 이후 아이들은 숙제를 하거나 책을 읽고 부모들은 음악을 듣거나 독서를 한다고 소개했다.

TV 끄기의 장점은 체험하지 않으면 어림셈도 못한다. 특히 육아에 도움이 된다.

미국소아과학회(AAP)는 “어린이는 하루 2시간 이상 TV를 보지 않도록 해야 하고 특히 2세 이하의 젖먹이는 뇌 형성에 치명적 장애가 생기기 때문에 TV 근처에서 키우면 안 된다”고 경고했다.

TV를 아예 안보거나 꼭 필요한 프로그램만 보기 시작하면 왜 TV가 ‘바보상자’인지를 절감한다.

“TV를 끄면 늘 바쁘다고 주장하던 남자는 사실은 자신이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당연히 집안일에 관심을 갖게 되고 책을 더 읽습니다. 여성은 편지를 쓰게 됩니다. 집안 풍경이 달라지고 화초의 향기가 살아나죠. 아이들은 부모를 존경하고 사랑하게 됩니다.”(숙명여대 아동복지학과 서영숙 교수)

“TV 없이 자란 아이는 호기심이 많아지고 집중력이 높아지죠. 맞벌이부부여서 여섯 살배기 민수에게 다른 집처럼 신경을 써주지도 못했는데 민수는 글도 숫자도 빨리 익혔어요. 유치원 선생님이 ‘민수가 다른 아이에게 책을 읽어준다’며 칭찬하는 것을 들으며 뿌듯했죠.”(ING 코리아 위미경씨)

그러나 많은 사람이 TV를 안보면 얘깃거리를 따라가지 못해 직장이나 학교 등에서 ‘왕따’가 되지 않을까 걱정한다.

미국 이스턴워싱턴대 바버라 브룩 박사가 미국에서 TV를 안보는 38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TV를 안본다고 세상의 흐름에 뒤처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70%가 시사 테스트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것.

이 조사결과는 TV 끄기의 다양한 장점을 잘 보여준다.

▽가족이 함께 보내는 시간=37%가 하루 1∼2시간 늘었고, 31%는 30∼60분, 17%는 2시간 이상 늘었다.

▽TV를 안보는 시간에 하는 일=1위는 독서. 2위는 어른은 대화, 아이는 놀이. 그 뒤를 취미생활, 게임, 가사, 정원 가꾸기, 음악 감상, 청소, 잠, 성관계, 스포츠 등이 이었다.

▽책이 가까워진다=아이들의 41%는 하루 1시간 이상 책을 읽는다. 부모의 45%는 30분 이상 아이에게 책을 읽어준다.

▽가정에서 구입하는 도서=25%가 한 달 21권, 19%는 11∼20권의 책을 구입한다고 대답.

▽아이의 성적이 올라간다=부모의 83%가 TV를 없앤 것이 아이의 공부에 도움이 됐다고 응답했다. 아이의 51%가 전 과목 A를 받거나 비슷한 성적을 냈다.

▽TV를 안보면 컴퓨터에 빠지나=그렇지 않다. 조사 대상자의 98%가 집에 컴퓨터가 있었지만 대부분 1주일에 1∼3시간 이용하는 것으로 응답했다. 어른은 10%가 컴퓨터를 과도하게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고 대답했고 자녀가 컴퓨터를 과도하게 이용한다는 응답은 7%였다.

▽존경하는 사람이 바뀐다=연예인을 존경하던 아이의 존경대상 1위가 부모가 된다. 뒤는 선생님, 운동 교사, 해리 포터, 예수, 마틴 루서 킹 목사 등의 순이었다.

이성주기자 stein33@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