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마이 홈!]<3>우리집 가족문화 만들자

  • 입력 2004년 5월 20일 17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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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호씨 가족이 서울 양재천 둔치를 함께 달리며 진한 가족애를 확인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장호씨, 딸 경아, 이씨의 아내 김선화씨, 아들 준우.-권주훈기자
이장호씨 가족이 서울 양재천 둔치를 함께 달리며 진한 가족애를 확인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장호씨, 딸 경아, 이씨의 아내 김선화씨, 아들 준우.-권주훈기자
삼성서울병원 미생물검사실의 수석 임상병리사 이장호씨(48)의 가족은 마라톤 가족이다.

이씨는 2000년 초 간염을 극복하기 위해 처음으로 구간 마라톤에 참가했고 부인과 자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목이 터져라 응원하다 함께 신발을 동여맸다.

그해 온 가족은 ‘합동 훈련’을 거쳐 세 번의 마라톤에 함께 참가했다. 이듬해에는 부부가 ‘100km 울트라마라톤’을 완주했고 자녀는 선수들에게 물을 주고 청소를 하는 등 자원봉사 활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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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는 “우리 가족에게는 독특한 마라톤 문화가 있다”며 “가족이 함께 달리면서 건강뿐 아니라 자신감과 활기, 서로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얻었다”고 말한다.

가정의 중요함을 알리는 단체인 ‘하이패밀리’의 송길원 대표는 “요즘 온 식구가 운동이나 취미생활 등을 함께하는 가정이 많다”면서 “나름의 가족문화를 갖고 있는 가정에 부부갈등이나 ‘왕따’ 자녀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송 대표는 △깃발, 가훈 등 가족의 상징 만들기 △결혼반지 이어주기 △자녀가 자신의 생일 때 부모에게 상 차려주기 등 효와 가족사랑의 확인 △테마여행, 서점 함께 가기 등 문화체험 등을 통해 가족문화를 만들 수 있다고 소개했다.

가정문제 전문가들은 기업의 CI(Corporation Identification·기업 이미지 통합)처럼 FI(Family Identification·가족 특유의 문화)를 구축하는 것이 가족의 행복과 사회의 안정을 위해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무미건조하거나 삭막한 가정을 풍요롭고 재미있게 만드는 것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 직접 만드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연세대 의학행동연구소 민성길 소장은 “건전한 가족문화를 만드는 데 아버지의 역할이 특히 중요하다”며 “아버지가 가족 문화의 지킴이와 방패막이 역할을 함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버지가 가족에 대한 무관심에서 벗어나 가족의 수준과 환경에 적합한 공통 관심사를 개발하고 친척들의 과도한 간섭, TV 시청 등의 가족문화 장애물을 없애는 데 앞장서야 한다는 것.

자칭 ‘현장 아버지 전문가’인 권오진씨(44)는 규리(초등6), 기범(초등2) 두 아이와 친구처럼 지내는 가족문화를 갖고 있다.

권씨는 2001년 어린이날 서울 양재초등 학부모모임의 결정에 따라 강원 양양군 갯마을해수욕장에 갔다가 감동을 받고 아버지와 자녀의 여행을 알선하는 이벤트사인 ‘아빠와 추억만들기’(www.swdad.com)를 만들었다.

그는 지금까지 100여회에 걸쳐 자신의 가족을 포함해 2400여명과 함께 경비행기타기, 승마, 카누, 무인도에서 살아남기, 맨손으로 연어 잡기 등의 추억을 쌓았다. 이런 과정에서 그의 눈높이는 자녀에 맞춰져 집에서도 자녀와 친구처럼 지낸다. 아들과 몸을 부대끼며 놀면서 놀이를 개발했고 딸과 얘기하다 발명품을 만들었다.

민성길 소장은 “그렇다고 아버지가 억지로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출 필요는 없으며 ‘좋은 아버지’가 돼 자녀 교육에 관심을 기울이면 좋은 가족문화를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최고의 목 질환 전문가로 평가받는 최종욱 두리이비인후과 원장(54·전 고려대 안산병원장)은 ‘훌륭한 자식농사법’으로 소문난 의사다.

그는 주말이면 부인, 딸 셋, 아들과 한강 둔치에서 연날리기를 하거나 서울의 인사동 거리, 고궁, 암자 등을 찾는다. 그는 회화, 서예, 부채수집 등의 취미를 자녀와 함께 즐기며 삶의 품격을 가르쳤다.

또 늘 “가난함을 미워하거나 두려워하지 말라”며 가난하게 살 자세를 가르치고 실제로 아이들과 함께 시장을 둘러보며 삶의 현장을 가르쳤다.

그의 한 제자는 “최 선생님의 집은 넓고 화려하지 않지만 소박한 가구에 불교 소품, 부채, 그림이 어우러져 품격 있는 ‘한국의 가풍’이 느껴진다”며 “또 장성한 네 자녀는 한국문화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하다”고 말했다.

민 소장은 “많은 가장이 ‘돈벌어주는 기계냐’고 볼멘소리를 하지만 결국 자신의 책임”이라며 “지금까지 가족문화에 등한했던 사람은 오늘 1분만이라도 가족문화를 만드는 데 쓰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성주기자 stein33@donga.com

▼가족문화 이렇게 만드세요▼

▨ 마음을 함께

▽깃발, 문장(紋章) 등을 만든다=서양에서는 아이들의 운동경기에서 가족 깃발을 갖고 응원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가족이 함께 상징 아바타를 만들면 아이들이 좋아한다.

▽효 또는 자녀사랑 이벤트=생일날 자신을 낳아주신 부모에게 상을 차려드리거나, 부모가 결혼반지 소품 등을 자녀에게 물려주면 효는 저절로 생긴다.

▽가족 잠언집, 일기 만들기=가족이 돌아가며 자신의 감정을 쓰는 일기장을 마련하면 가족간 이해와 대화에 도움이 된다. 인터넷에 가족 블로그나 홈페이지를 만드는 것도 방법.

▽가훈을 만든다=대대로 내려오는 가훈이 아니라 아이와 아내의 생각이 담긴 가훈을 만든다.

▨ 즐거움을 함께

▽아이들과 서점에 간다=가족문화에 관심이 있다면 가장 먼저 시도해 볼 만하다. 아이들이 스스로 책을 고르도록 하고 훈수를 두면 안 된다.

▽오래 가는 취미를 함께한다=로버트 레드퍼드 감독의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은 낚시가 가족애와 자녀 교육에 얼마나 중요한지 가르쳐 준다. 바둑 체스 등도 가족이 함께하기에 좋다.

▽테마여행을 떠난다=주제를 정해 ‘작전’을 짜고 여행을 간다. 가족 중 둘만 떠나는 여행은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으므로 짝을 바꿔가며 시도해 봄직하다.

▽문화 체험=그림을 함께 그리든지 전시회 연주회 등에 정기적으로 참여한다.

▽가족 운동=달리기, 자전거타기, 등산 등은 쉽게 할 수 있다.

▽봉사활동을 함께=돼지저금통에 저축한 돈으로 선물을 사 봉사활동을 한다. 자녀가 컸다면 생일날 함께 헌혈을 하는 것은 어떨까.이성주기자 stein3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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