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118>卷三. 覇王의 길

  • 입력 2004년 4월 5일 18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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覇上의 眞人⑧

“적입니다. 적병이 오고 있습니다!”

그 소리에 모두가 노관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정말로 북쪽에서 자욱이 먼지가 일며 한 떼의 인마가 달려오고 있었다. 패상 성안에 남아 있던 군사들이 뛰쳐나온 듯 그리 많지는 않아 보였다. 하지만 쫓기던 진군이 되돌아서서 가세한 때문인지 다가올수록 부풀어나면서 그 기세도 거세졌다. 그때 다시 번쾌가 큰 칼을 둘러메고 나서며 소리쳤다.

“이번에는 제게 맡겨주십시오. 제가 앞장 선 적장의 목을 베어 그 기세를 꺾어 놓겠습니다!”

온종일 이렇다할 싸움 없이 중군(中軍)만 지켜온 번쾌의 청이라 이번에는 패공도 말릴 수가 없었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허락하자 번쾌가 말을 박차 달려 나가며 소리쳤다.

“누구든 적의 선봉을 짓뭉개 공을 세우고 싶은 자는 나를 따르라!”

그러자 역시 중군 주변을 맴돌던 수십 기(騎)가 번쾌를 따라 달려 나가고 다시 보갑(步甲) 백여명이 그들 뒤를 따라 내달았다.

서로 마주보고 말을 달린 터라 번쾌는 오래잖아 진군의 선봉과 마주치게 되었다. 번쾌가 큰 쇠북 두드리는 듯한 목소리로 외쳤다.

“나는 대초(大楚)의 오대부(五大夫) 번쾌다. 적장은 누구냐? 이름을 밝혀라.”

“세상이 어지러우니 별 게 다 날뛰는구나. 나는 도위(都尉) 이광(李匡)이다. 간 큰 도적놈은 어서 목이나 바쳐라!”

앞서 달려오던 진나라 장수는 그러면서 들고 있던 창을 내질러 번쾌의 가슴팍을 노렸다. 번쾌가 가벼운 코웃음과 함께 몸을 비틀어 피하더니 오른손의 큰칼로 세차게 적장을 후려쳤다. 피하지 못한 적장이 구슬픈 외마디 소리와 함께 피를 뿜으며 말에서 떨어졌다.

진나라 도위라면 결코 조무래기 장수가 아니다. 그런 도위를 한칼에 벤 번쾌가 내쳐 적진으로 뛰어들어 큰칼을 휘두르는데, 마치 옛적 저잣거리에서 개 잡는 몽둥이 후려 대듯하였다. 잇따라 열 명의 적병이 번쾌의 칼을 맞고 말 위에서 떨어졌다.

뒤이어 번쾌를 따라온 수십 기가 뛰어들어 함부로 찌르고 베어 댔다. 피를 함빡 뒤집어쓰고 사람을 죽여 대는 번쾌와 그 수십 기에 진군의 선두는 얼이 빠졌다. 변변히 맞서보지도 않고 창칼을 내던지며 말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빌었다. 기록에 따르면 그때 항복한 군사가 마흔 여섯이었다.

그때 다시 갑옷 걸친 보졸(步卒)들이 달려와 번쾌와 기병들의 뒤를 받쳐 주었다. 머릿수는 백여명밖에 되지 않았으나 그 기세는 하나가 백을 당할 만했다. 저희 편 대장이 죽고 선두 기병(騎兵)들이 모조리 항복하자 진군 선두의 나머지도 싸울 뜻을 잃고 말았다. 얼마간 맞서는 시늉을 하다가 모두 병장기를 내던지고 항복했는데 그 수가 2900명이나 되었다.

그러자 남전에서 거기까지 도망쳐 온 진군도 맥이 빠졌는지 태반이 항복했다. 항복을 마다하는 자들도 패상 성안으로 들어갈 엄두를 못 내고 그대로 달아나 버렸다. 이에 초나라 군사들은 패공이 말한 대로 그날 밤을 패상 성 안에서 쉬게 되었다.

“이제는 백성들을 다독일 때이다. 몇 만 대군이 왔느니 아무개 대장군이 왔느니 하는 말은 말고, 그저 동쪽에서 한 진인(眞人)이 백성들을 구하고자 패상에 이르렀다고만 하여라.”

이튿날 장량은 함양을 염탐하는 군사들을 풀며 그렇게 당부했다.

글 이문열 그림 박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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