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211…몽달귀신(13)

  • 입력 2003년 1월 6일 17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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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보다 심한 아픔이 밀려와 인혜는 선 채로 몸을 뒤틀며 큐우, 파아, 큐우, 파아, 하고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엄마 생일은 아무래도 상관없어, 지금까지 열아홉번이나 축하를 받았으니까. 하지만 너는, 너가 태어나는 날은 모두의 축복을 받고 싶다. 모두가 기뻐해 주었으면 좋겠다. 슬픔 속에서, 고통 속에서, 불행 속에서 너를 낳고 싶지 않아. 하느님! 비나이다, 비나이다, 소원아가씨가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해 주세요, 비나이다, 비나이다…, 아픔 때문에 말이 토막났지만 걸음을 늦출 수는 없었다. 인혜는 커다란 배를 껴안고 비틀비틀 우물가를 지났다. 하느님, 비나이다, 비나이다, 이 아이가 무사히 태어날 수 있도록. 아이고, 내가 미쳤나! 다들 소원아가씨 찾아다니느라고 정신이 없는데, 저 아이 생각만 하다니. 하지만, 그래도, 빌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이 아이를 위해 빌어 줄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까. 하느님, 비나이다, 비나이다, 이 아이가 아무쪼록 무사히 태어날 수 있도록 해 주세요, 하느님.

비나이다, 비나이다, 소원아가씨가 무사히 집에 돌아올 수 있기를, 비나이다, 비나이다….

문을 나서자 거리 전체가 기묘한 침묵에 싸여 있었다. 부러진 나뭇가지와 바람에 날려 떨어진 기왓장과 문짝이 길거리에 흩어져 있다. 그것들 때문에 울퉁불퉁한 집과 나무들의 그림자를 조심조심 밟으면서 인혜는 배다리쪽으로 걸어갔다.

여느 때는 하늘이 비칠 정도로 맑은 밀양강이 흙탕물로 뿌옇다. 이 흙탕물 속에 소원아가씨가…, 인혜는 강물에서 눈길을 돌려 용두목 쪽을 보았다. 여름이면 이 동네 아이들은 벌거숭이 알몸으로 버드나무 꼭대기에 올라가 용두목으로 뛰어드는데, 빠져죽은 아이도 많다고 한다. 깊은 데다 물풀이 많아서, 시신이 절대 떠오르지 않는다고도…. 강을 따라 구부러진 길에는 버드나무 가지가 겹겹이 쓰러져 있고, 어느 집 문인지 사립문짝이 가지 위에 걸쳐져 있다.

언니, 인혜 언니.

느닷없이 소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영남루 쪽을 올려다보았지만 숨바꼭질하는 어린 아이들과 햇볕을 쪼이고 있는 노인의 모습밖에 보이지 않는다. 다 숨었니! 아직이야! 다 숨었니! 아직!

언니.

조르는 듯도 하고 답답해하는 듯도 한, 소원의 코맹맹이 목소리였다.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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