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철의 경영과 인생]<15>실패했다고 포기하지 말라

  • 입력 2003년 1월 5일 18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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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존재양식에 어긋나는 일은 (연금술처럼)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지만, 자연법칙과 관계없는 일은 ‘하면 된다’는 정신으로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 산업기술의 역사다.

따라서 기업은 과학자와 상의, 자연법칙에 위배되는지 여부를 확인한 후 ‘하면 된다’는 정신으로 아무리 어려운 기술도 스스로 개발해야 한다. 다음 케이스를 보자.

캐나다 뉴펀들랜드 섬 동남쪽 대륙붕 그랜드뱅크 지역에서 1979년 유전이 발견되었다.

이곳은 30m 높이에 이르는 파도와 시속 130km의 바람, 100만t에 달하는 빙산이 무수히 떠다니는 지역이다. 1912년 타이태닉호도 이 근처에서 침몰했고, 지금도 이 지역은 선박 침몰이 가장 빈번한 곳이다.

그러나 미국과 캐나다의 합작법인 하이버니아사는 매장량 30억배럴, 110억달러의 가치로 평가되는 이 유전을 개발하기 위한 상상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참패를 딛고 이룩한 성공

하이버니아사의 첫 상상력은 1981년 해양레인저(Ocean Ranger)라는 이름으로 나타났다. 무게 2만 5000t의 해양레인저는 바다에 떠있는 축구장 두 개 크기의 설비로서 84명의 승무원들이 일할 수 있었다.

해양레인저의 기술개념(상상력)은 밸러스트라고 불리는 8개의 물탱크에 집약되어 있다.

거친 파도가 일거나 바람이 불면 내려앉는 쪽 탱크의 물이 컴퓨터 제어에 의해 올라가는 쪽 탱크로 옮겨지면서 균형이 유지되는 기술개념이었다. 설치된 후 15개월 동안 해양레인저는 그랜드뱅크의 파도와 바람과 빙산을 잘 견디어냈다.

그러나 1982년 2월 시속130km의 바람과 무서운 파도가 해양레인저를 사정없이 공격했다. 구조선이 도착했으나 이미 해양레인저가 전복된 지 20분 후였고 승무원 84명 모두 섭씨 0도에 가까운 바닷물 속에서 사망했다.

해양레인저의 참사를 겪은 하이버니아사는 다시는 전복될 염려가 없는 새로운 개념의 유전 설비를 구상(상상)하기 시작했다.

기초부분이 해저에 고착되고, 설비자체의 육중한 무게로 안정을 유지하는 ‘중력기반(重力基盤)형 구조(GBS)’를 상상해낸 것이다.

그랜드뱅크의 평균 수심이 70m이고, 해면 위 30m 높이에 숙소와 작업장으로 쓰일 110m 높이의 플랫폼을 지으면 전체 설비는 무게 120만t, 높이 220m의 거대한 구조물이 된다(참고로 보잉747기에 연료, 승객, 화물을 만재하면 무게가 400t).

이 구조물을 몇 개 부분으로 나누어 제조, 조립한 후 여러 척의 바지선으로 그랜드뱅크 현장까지 예인해, 그곳에 고착시킨다는 것이 하이버니아사의 상상력이었다.

엔지니어들은 빙산과 충돌할 때 빙산을 분쇄할 수 있도록 16개의 톱니로 둘러싼 방호벽도 만들었다.

방호벽은 외벽과 내벽으로 되어 있고 이 두 벽 사이에는 55만t의 철광석을 채워 빙산과 충돌 시 충격을 흡수토록 하였다. 철광석은 충격 흡수 이외에 그 무게를 이용하여 GBS를 해저에 안정시키는 역할도 한다.

#기술수준차이가 부가가치 차이

GBS가 완성되자 하이버니아사는 해저 3.6km 깊이에 있는 유정을 80개 이상 시추하였고, 완성 6개월 만에 첫 유조선이 원유를 싣고 출발했다.

하이버니아사가 GBS를 건설하기 위해 발휘한 상상력은 모두가 (연금술처럼) 자연법칙에 위배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실패를 딛고 기어이 성공한 것이다.

GBS의 플랫폼 위에 놓인 주거시설은 우리나라 모 건설회사가 하이버니아사에서 하청받아 제조했다니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기술의 수준 차이는 부가가치 차이로 나타난다. 우리 기업도 부가가치를 높이려면 (주거시설의 수준을 넘어서는) 기술적으로 좀 더 어려운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조선소를 건설하기도 전에 선박의 수주를 받아낸 정신도 (12월 30일자 참조) 훌륭하지만 이것은 시장개척을 위한 일이었다. GBS 같은 첨단기술도 ‘하면 된다’는 정신으로 개발해야 한다.

윤석철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yoonsc@plaz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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