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110…삼칠일 (9)

  • 입력 2002년 8월 28일 18시 35분


번역 김난주 그림 이즈쓰 히로유키

번역 김난주 그림 이즈쓰 히로유키

오 리 물을 길어다가 십 리 방아 찧어다가

아홉 솥에 불을 때고 열두 방에 자리 걷고

외나무 다리 어렵대야 시아버지같이 어려우랴

나뭇잎이 푸르대야 시어머니보다 더 푸르랴

뜨거운 고깃국 속에서 미역이 빙빙 돌기 시작하고, 소고기의 갈색 거품이 부글부글 떠올라 희향은 국자로 거품을 떠내고 한 차례 더 끓여 소금을 솔솔 뿌리며 맛을 보았다. 맛있다, 역시 소고기는 닭고기보다 깊은 맛이 난다. 미역국이 들어 있는 양은 냄비에 뚜껑을 덮어 아궁이 옆으로 옮겨놓고, 가마솥 뚜껑을 열자 하얀 김이 모락모락 희향의 얼굴을 감쌌다. 밥이 거의 다 되었으니 불을 줄여야 한다. 긴 막대기로 아궁이 속 솔가지를 양 옆으로 헤쳐 불을 뭉근하게 줄이고, 아직 따끈따끈한 계란을 하나 둘 셋 넷 다섯 개 깨서 흰자위와 노른자를 잘 섞어놓고, 잘게 썬 파와 참기름과 소금을 계란 위에 얹고 사발 째 밥 위에 올려놓은 후 뚜껑을 닫았다. 5분이면 계란찜도 완성이다, 너무 익으면 맛이 없으니까 조심해야 한다.

자, 그 다음은 은어다. 희향은 풍로에 망을 얹어놓고 살아 있는 은어를 대야에서 꺼내 대나무 꼬치에 하나 둘 셋 넷 다섯 마리의 입을 엮었다. 바람 구멍을 후후 불자 은어는 입을 빠끔빠끔 꼬리를 팔딱팔딱 거렸지만, 금방 투명하던 눈이 허옇게 익고, 비늘도 익어 부풀어올랐다.

시아버지 호랑새요 시어머니 꾸중새요

동세 하나 뾰중새요 남편 하나 미련새요

자식 하난 우는 새요 나 하나만 썩는 샐세

귀먹어서 삼년이요 눈 어두워 삼년이요

말 못해서 삼년이요 석 삼년을 살고 나니

희향은 가마솥 뚜껑을 열고 계란찜을 꺼냈다. 다 됐다, 잘 익었다, 계란하고 참기름의 고소한 냄새가 난다. 전부 다 됐다, 이제 담기만 하면 된다. 희향은 상 위에 공기를 늘어놓고 주걱으로 밥을 펐다. 남편은 흰 밥, 우철이도 흰 밥, 소원이는 보리가 절반, 어머니도 보리가 절반, 나는 꽁보리밥이라도 괜찮다. 누룽지가 들러붙은 바닥에 쌀뜨물을 붓고 뚜껑을 덮으면, 우철이와 소원이가 좋아하는 눌은밥도 완성이다.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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