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살린 사람들 1]앤서니 윌리엄스 시장

  • 입력 2002년 4월 7일 17시 46분


《동아일보는 6·13 지방선거를 두달여 앞두고 8일부터 ‘세계의 단체장-도시를 살린 사람들’이란 기획시리즈를 주 1회 싣는다. 나라를 막론하고 단체장들에게 거는 기대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성패가, 경제적으로는 번영과 인간다운 삶의 지속 여부가 그들의 어깨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최고경영자(CEO)의 경영 마인드로, 때로는 시민운동가의 순수함과 열정으로 도시를 바꾸고 주민의 삶을 바꾼 이들의 얘기가 우리의 ‘6·13 선택’에도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은 두 얼굴의 도시다. 백악관, 의회, 대법원 및 연방 정부의 각 부처가 자리한 미국의 대표적 도시로서의 화려함 뒤에는 정작 시민들의 자치와 주거환경은 여느 도시보다 열악한 그늘이 공존한다. 미국과 세계를 움직이는 파워 엘리트들이 인근 버지니아주와 메릴랜드주로 썰물처럼 퇴근한 뒤 도시에 남는 진짜 시민 ‘워싱토니안(Washingtonian)’들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만성적인 재정적자와 경기침체, 치안 부재, 낙후된 교육 등으로 고통받았다.

그러나 1999년 1월 앤서니 윌리엄스 시장(사진) 취임 이후 워싱턴은 깨끗하고 안전한 거리와 향상된 교육 여건 및 활발한 지역경제를 갖춘 ‘살 만한 도시’로 눈부시게 탈바꿈하고 있다.

시 정부의 과감한 구조조정과 잇단 개혁정책을 통해 워싱턴을 명실상부한 미국의 수도로 변모시키고 있는 이 흑인 시장의 리더십에 의회와 언론, 시민은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지난달 19일 오후 윌리엄스 시장은 조그만 책상에 손님맞이용 소파가 전부인 검소한 집무실에서 나비 넥타이를 맨 드레스셔츠 차림으로 피스타치오를 까 먹으며 인터뷰에 응했다.

-취임 3년 만에 많은 업적을 이룬 비결은….

“다양한 커뮤니티 모두에 개방적 태도로 대했다. 한국계 상인들을 포함한 모든 시민들에게 귀를 기울였다. 워싱턴 시내 소규모 사업체의 3분의 2는 한국인을 포함한 아시아계가 장악하고 있다. 시내 각각의 지역과 선거구, 인종 그룹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매년 대규모 타운 미팅을 열어 여론을 수렴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시를 발전시키는 과정에선 서로 다른 이해집단이 충돌하고 개혁에 대한 저항도 있기 마련인데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할 때 여론을 어떻게 반영하는가.

“커뮤니티들로부터 단순히 의견을 청취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마주앉아 치안, 경제 투자, 극빈자 구제계획 등에 대한 해결책을 논의한다. 나는 한인단체연맹 한미잡화상연합 한미경영인협회 등 워싱턴의 한국 커뮤니티 대표들과도 수 차례 만나 그들의 우려와 건의를 정책에 반영했다.”

-74년에 지방자치를 인가받은 워싱턴은 지방자치의 역사가 일천한 편이다. 워싱턴의 위상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워싱턴은 지구상에서 가장 힘이 센 도시이지만 지방자치라는 측면에서 보면 비정상적으로 힘이 약한 도시이기도 하다. 시민들은 연간 30억달러의 소득세를 내면서도 연방 의회에 워싱턴을 대표하는 의원이 없어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워싱턴에도 연방 의원을 배정해 달라고 매년 힘겹게 싸우고 있다. 워싱턴 시민들이 ‘대표 없는 과세는 없다(No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on)’는 자동차 번호판을 달고 다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수도 워싱턴의 21세기 비전은 무엇인가.

“활기차고 건실한 도심과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사무실, 의료, 테크놀로지 등을 모두 갖춘 도시를 만드는 것이다. 앞으로 30년 뒤에는 포토맥 강변이 매우 인상적으로 개발될 것이다. 또 워싱턴의 주요 가로는 세계 수준의 도시에 걸맞게 발전할 것이고, 현재 보잘것없는 거리들도 번성하게 될 것이다. 치안 교육 주택 투자 등의 분야도 생동하는 민주 도시의 일부로서 크게 개선될 것이다. 우리는 워싱턴이 다음 세기에 모든 도시들 가운데 리더가 될 수 있도록 변화시켜 나가고 있다.”

-워싱턴이 수도로서 다른 도시들보다 특별한 지위를 누려야 한다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워싱턴은 다른 도시들과 동등하게 대우받는 것으로 만족한다. 그래도 우리는 훌륭하고, 번영하는 도시가 될 것이다. 문제는 수도라서 혜택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이익을 받는 측면이 있다는 점이다.”

-통상 중앙정부는 지방정부를 통제, 장악하려 하고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의 간섭을 배척하면서 더 많은 재정지원 등을 바라는 경향이 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바람직한 관계는 어떤 것인가.

“연방정부는 지방정부의 일에 관여해선 안 된다는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설정돼 있다. 건국 초 13개 주가 모여 연방정부를 만든 미국에서 연방정부의 권한은 지방정부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제한적이다. 연방정부는 헌법에 명시된 것 이상으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할 수 없다. 연방정부가 지방정부에 관여하는 경우는 예컨대 지방정부에서 인종차별을 한다든가, 연방정부의 지원을 받으면서도 국방에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든가 할 때 등이다. 한편 지방정부는 연방에 편입된 이상 마음대로 탈퇴할 수 없으며 연방의 일원으로서 의무를 다해야 한다.”

-지방색이 강한 한국에서 지방자치단체장은 현지 사정을 잘 아는 그 지역 출신이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다른 지역 출신 후보가 지자제 선거에서 이기기는 어려운 현실이다. 윌리엄스 시장은 캘리포니아주 출신으로 93년 워싱턴에 왔는데 98년 11월 선거에서 어려움은 없었는지.

“지방색에 개의치 않는 유권자도 있고 소수지만 출신 지역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워싱턴 인구의 약 60%는 거주한 지 20년이 안 되는 사람들이다. 나만 워싱턴 거주 기간이 짧은 것은 아니었다.”

-워싱턴은 2012년 올림픽을 유치하려고 있다. 그런 점에서 88년 올림픽을 유치했던 한국의 경험은 많은 도움이 될 텐데 한국과의 교류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내년에 서울을 방문하려고 추진 중이다. 한국은 미국의 중요한 무역, 전략 파트너이므로 한국의 역사 문화 등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워싱턴은 지난해 9·11테러와 탄저균 사태로 큰 타격을 입었다. 이제 벚꽃이 피는 시절을 맞아 관광객이 모여들 텐데 과연 안전엔 별 문제가 없는지….

“9·11테러 이후 시의 기능은 정상으로 회복됐다. 모든 사람에게 이곳에 와서 좋은 시간을 보내라고 당부하고 싶다.”

-항상 보타이를 즐겨 매는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가.

“보타이가 남다른 옷차림이라는 생각에서 14년 전부터 매기 시작했다. 멋 부리기 위한 것은 아니고…. 보통 넥타이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맨다.”

-스트레스 때문에 최근 몇 십년 만에 피아노 레슨을 다시 받기 시작한 것으로 아는데 평소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는가.

“운동을 하려고 노력하고, 피아노도 친다. 또 집안일도 하고, 요리책을 읽고 직접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보기도 한다.”

-시장이 되겠다고 생각한 것은 언제인가.

“98년 1월 주위 사람들의 권유를 받았을 때다. 그러나 부친이 2월에 돌아가시는 바람에 4, 5개월간은 그 생각을 하지 못하다가 그 해 6월에 다시 출마를 생각하게 됐다. 시장이 되면 시에 공헌할 것이 많고, 설령 떨어진다고 해도 잃을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사실 나는 학창시절부터 선거에선 한번도 진 적이 없기 때문에 만약 진다면 패배가 어떤 것인지를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패배를 두려워하면 아무 것도 못한다. 나는 워싱턴시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 올해 선거에 재출마, 4년간 더 연임하고 싶다. 그 다음엔 민간기업으로 갈 것이다. 시장을 그만둔 뒤에는 워싱턴에서 계속 살며 활동적인 시민이 되겠지만 시 의회에 출마한다든가, 후임 시장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시장직에 만족하는지….

“아주 만족한다. 진절머리가 날 만큼 골칫거리가 많지만 그만한 보람이 있다. 그러나 가족과 떨어져 있고, 일거수 일투족이 모두 노출되고, 좋은 것은 내버려둔 채 나쁜 것만 보도하는 언론 등은 머리가 아프다. 신문을 읽을 시간조차 없지만 그래도 보람을 느낀다.”

▼워싱턴은 어떤 도시▼

미국 민주정치의 상징이자 국제적인 외교 경제의 중심지인 워싱턴은 1800년 미국의 수도가 됐다.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1776년 당시의 수도는 필라델피아였으나 그후 의회에서 천도(遷都)론이 제기됨에 따라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 시절 영토 남북단의 중간지점인 포토맥 강변이 새 수도로 결정됐다.

철저한 계획도시인 워싱턴은 버지니아주와 메릴랜드주가 내놓은 컬럼비아 특별구(District of Columbia)라는 국유지에 프랑스인 피에르 랑팡의 설계로 건설됐다. 정식 명칭이 워싱턴DC인 것은 이 때문. 수도 워싱턴은 어느 주에도 속하지 않는 특별구역으로 미 서북부에 있는 워싱턴 주(워싱턴 주도 시애틀)와는 다른 곳이다.

연방 수도가 자치권을 행사하면 다른 지방자치단체에 비해 의회와 행정부를 상대로 로비를 벌이기가 쉽다는 우려 때문에 74년까지 자치를 인정받지 못한 채 대통령이 임명하는 3인 위원에 의해 시정(市政)이 이루어졌다.

워싱턴은 지금도 연방 하원에 투표권이 없는 대표 한명만 파견하고 있을 뿐이다.

시의 인구는 2000년 기준 57만2059명. 인구 비율은 흑인 61.4%, 백인 35.2%, 히스패닉 7.4%, 아시아계 3.1% 등. 수도에 걸맞지 않게 높았던 범죄율은 90년대 후반 이래 상당한 감소추세를 보이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의 본부와 세계 각국의 공관이 밀집해 있다.

인터뷰〓한기흥 워싱턴특파원 eligius@donga.com

▼“봉사하는 市” 내세워 시장 당선▼

51년 7월 20일 로스앤젤레스 생. 10대 미혼모였던 생모에게 버림을 받고 보육원을 거쳐 우체국 직원이었던 루이스 윌리엄스 집에 입양됐다.

3세가 되도록 말을 못해 지진아로 의심받기도 했으나 가톨릭 신자였던 양부모들은 어릴 때부터 예체능 교육을 시키며 애정을 쏟았다.

고교 졸업 후 샌타클래라대에 진학, 중퇴 후 공군 복무를 거쳐 20대 중반까지 트럭 운전사와 농장 일꾼 등을 전전했다. 75년 다시 공부를 시작해 예일대에 입학, 정치학부를 최우등생으로 졸업했다. 이어 하버드대에서 법학박사와 케네디스쿨의 공공정책 석사 학위를 땄다.

코네티컷주의 부(副)재정감사관, 농무부 회계책임자 등을 거쳐 95년 워싱턴시의 회계책임자로 임명된 뒤 불필요한 조직과 사업을 정비하고 나이 많은 공무원을 퇴출시키는 등 구조조정을 통해 시 예산을 적자에서 흑자로 되돌렸다.

98년 11월 선거에서 ‘시민을 위해 봉사하는 새로운 시 정부 건설’을 기치로 시장에 당선됐으며 워싱턴을 ‘살만한 곳’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비사교적인 성격으로 정치인보다는 관료형에 가깝다. 비판론자들은 그가 ‘가진 자’들에게만 관심을 쏟고 저소득층은 외면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재호기자 leejae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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