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어가는 한류 되살리자” 日 36개 기업 흥행몰이 나섰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3일 03시 00분


■ ‘겨울연가’로 시작된 한국 열풍 10년 현주소

일본 미야기(宮城) 현 센다이(仙臺) 시 외곽에 사는 센시 마사코(扇子正子·80·여) 씨. 그는 15년 전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삶의 의욕을 잃었다. 집 밖을 나가지 않고 기력도 눈에 띄게 떨어졌다. 그런 센시 씨에게 2003년 4월 ‘제2의 인생’을 위한 전기가 찾아왔다. NHK방송에서 한국 드라마 겨울연가(冬のソナタ)를 보면서 새로운 활력을 찾았다. 딸 센시 미카(扇子美佳·53) 씨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고관절염으로 고생했으나 박용하 콘서트에 가기 위해 스스로 방을 나왔다. 박용하와 악수한 엄마는 어린애처럼 좋아했다”고 말했다.

올해 들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침략의 과거사를 부정하고 제2차 세계대전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를 두둔하면서 한일 관계가 급속히 냉각됐다. 하지만 센시 씨는 항상 일주일에 두 번 차를 타고 센다이 시내에서 한국말을 배운다. 한국 가수의 공연이 있으면 도쿄(東京)까지 달려온다. 지난해 여름부터 한일 관계는 급속도로 냉각됐고 양국 갈등은 갈수록 심연으로 빠져들고 있지만 그에게 이런 한일 간 외교 갈등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한류(韓流) 붐을 일으키기 시작한 지 10년이 됐다. 그동안 일본 내 한류는 어떻게 변했을까. 일본을 강타한 겨울연가는 한국에 대한 인상을 바꿔 놨다. 2004년 12월 일본 내각부가 전국 성인 3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한국에 친밀감을 느낀다’고 한 사람은 56.7%로 1978년 조사를 시작한 이래 가장 높았다.

드라마에서부터 불기 시작한 한류 바람은 가요와 게임, 음식 등으로 퍼져갔다. 2005년 4월 탤런트 겸 가수 류시원이 일본에서 발매한 싱글 ‘사쿠라(櫻)’가 발매 당일 음악차트인 오리콘 데일리 싱글차트 1위에 올랐다. 이후 소녀시대, 카라 등 한국 가수들이 대거 일본 시장에 진출하며 케이팝 붐을 이끌었다. 2005년 2227만 달러(약 250억 원)였던 대일 가요 수출액은 2011년 2억401만 달러로 수직 상승했다.

탄탄대로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한류가 무섭게 기세를 올리던 2005년 7월 ‘만화 혐한류(嫌韓流)’가 나왔다. 한류 붐에 역으로 편승해 자극적인 표현으로 한국을 비판했다. 발매 1년 만에 67만 부가 팔려 베스트셀러로 올라섰다.

2일 일본 내 한류 1번지인 도쿄 신오쿠보의 한 한인 매장. 일본인 팬들이 한류 스타들의 음반과 브로마이드를 살펴보고 있다. 도쿄=배극인 특파원 bae2150@donga.com
2일 일본 내 한류 1번지인 도쿄 신오쿠보의 한 한인 매장. 일본인 팬들이 한류 스타들의 음반과 브로마이드를 살펴보고 있다. 도쿄=배극인 특파원 bae2150@donga.com
사마네(島根) 현의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식 명칭)의 날’ 제정(2005년 2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2006년 8월) 등으로 한일 관계가 급랭했을 때마다 우익들은 한국 때리기에 목소리를 높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드라마, 음반, 게임 등 문화콘텐츠 수출액은 꾸준히 늘었다. 김영덕 한국콘텐츠진흥원 일본사무소장은 “정치나 외교의 영향에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일본에 한류문화가 뿌리내렸다”고 해석했다.

하지만 지난해 8월 이명박 전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한 이후 기류 변화도 감지된다. 극우 인사들이 드러내놓고 ‘혐한’을 외치고 있다. 도쿄시내 신오쿠보 한인타운에서는 올해만 11차례 반한 시위가 열렸다. “한국인을 모두 죽여라” “한국 여성을 강간하라” 등 구호도 살벌하다. 보수 성향의 아베 정권이 들어서면서 일반인의 우경화 현상도 뚜렷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과거처럼 맘 편히 한류를 즐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주부인 다케우치 사쿠라(竹內櫻·43) 씨는 “과거에는 한국 드라마를 봐도 남편이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요즘은 신경질적으로 반응해 눈치가 보인다”고 불평했다. 미야자키 유코(宮崎由子·55·여) 씨는 “아주 친한 친구 아니면 한류 이야기는 피한다”고 말했다.

한국 제품의 판매도 주춤하다. 일본에 진출한 한국 식품업체들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이 10∼30% 줄었다. 김진영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도쿄지사장은 “일본 소매상들이 한국 상품 판촉전도 마음대로 못 한다”며 “판촉전을 하면 우익이 전화 테러를 하기 때문에 대형 소매점들이 한국 상품을 꺼내 놓을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한류 재비상(再飛上)을 위한 시도도 눈에 띈다. 한국관광공사는 ‘한일 프렌드십 페스티벌 2013’을 6, 7일 도쿄돔시티에서 연다. 한류스타를 초청하고 한식, 패션, 한글교육 등 홍보부스를 만들어 한국 체험 기회를 제공할 예정이다. 같은 기간에 신오쿠보에서는 주일 한국대사관 주도로 ‘한국 식품명인 제품 홍보전시회’를 열고 일본인에게 한국 식품을 시식하게 해준다.

강중석 한국관광공사 도쿄지사장은 “한류 바람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다양한 문화행사에 온 힘을 쏟고 있다”고 말했다.

도쿄=박형준·배극인 특파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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