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와 프랑스, 독일의 국경이 만나는 지역에 인접한 스위스 서부 도시 바젤. 동화 속의 마을을 고스란히 현실로 옮겨놓은 것 같은 이곳은 매년 이맘때가 되면 인종과 시계의 전시장으로 변한다. 올해로 서른아홉 돌을 맞은 세계 최대 규모의 시계·보석 박람회 ‘바젤월드(3월 24∼31일)’에 참석하기 위해 몰려든 44개국, 1900여 개의 시계·보석 메이커와 10만여 명의 방문객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찾아온 취재진만 3000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바젤월드에 참가해 유명 시계 메이커들이 마련한 화려한 부스를 둘러보고 귀동냥으로만 접해 본 럭셔리 시계들을 직접 만져보고 손목에 차는 경험을 하다 보면, ‘시계는 그저 시간을 확인하는 도구일 뿐’이라는 생각을 가진 이들조차 어느새 마음을 고쳐먹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 경기회복세에 활력 넘쳐
지난 2년여간 글로벌 금융위기 등으로 명품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면서 고전해 왔던 스위스의 명품 시계 메이커들은 경기회복세와 중국 한국 중동 인도 등 신흥 명품 소비국 바이어들의 취향을 적극 반영한 제품들을 대거 선보였다. 경기 회복세 덕분에 2010년 스위스 시계 산업은 전년 대비 22.1% 성장했고, 올해 1, 2월에도 전년 동기 대비 18.1% 성장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2011 바젤월드는 럭셔리 워치와 주얼리 시장의 회복세를 확인하고 가속화하는 행사라는 의미도 갖게 됐다.
기존 바젤월드에서는 전문가용 초정밀 시계가 대세를 이뤘다면 올해 바젤월드의 특징은 고전미를 중시하는 제품이 다수였다는 점이다. 자개 소재의 판에 시침, 분침, 초침 등 3개의 핸즈, 그리고 날짜판과 스틸 또는 골드 외관의 고전적 디자인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업계에선 이런 추세를 명품 소비국으로 급속히 부상한 중국 등 아시아 국가를 겨냥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시계의 대형화 추세에도 제동이 걸렸다. 서양인에 비해 손목이 가늘고 너무 큰 시계를 꺼리는 중국 등 아시아인의 취향을 반영했다는 후문이다.
럭셔리 워치 메이커들은 올해 루이뷔통이 바젤월드에 처음으로 제품을 내놓았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2002년 시계 산업에 진출한 루이뷔통이 그동안 갈고닦은 내공을 바탕으로 명품 시계 브랜드의 각축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는 해석이다. 올해 바젤월드에는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그룹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이 참석해 태그호이어, 위블로 등 자사 보유 브랜드 매장도 일일이 방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LVMH그룹은 최근 무브먼트 제작 회사인 제니스를 인수한 데 이어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불가리까지 인수하면서 럭셔리 워치 및 주얼리 분야의 영토 확장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 시간을 멈추는 시계
‘붙잡을 길 없는 시간을 시계로 잠시 잡아둔다’는 낭만적인 아이디어에서 영감을 얻은 시계도 있다. 에르메스는 원하는 순간에 시간이 가는 것을 잠시 멈췄다가 다시 원래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능을 갖춘 ‘아소 타임 서스펜디드’를 선보였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하는 붙잡고 싶은 순간, 그 찰나의 시간을 잠시 멈추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이 시계는 작동을 잠시 멈췄다가 나중에 원하는 때 원래의 시간으로 돌아가는 기능을 갖췄다. 불가리는 15분마다 현재 시간을 소리로 알려주는 ‘그랑 소네’를 내놓기도 했다.
소재의 활용 범위도 넓어졌다. 롤렉스는 시계 테두리를 세라믹으로 덮은 ‘데이토나’를 선보였고, 세라믹을 시계 소재로 적극 활용해온 라도는 두께를 4.9mm(여성용)∼5.0mm(남성용)로 줄인 ‘트루 신’으로 기술력을 자랑했다. 오메가는 ‘레이디매틱’ 모델에 사용되는 밸런스 스프링을 실리콘으로 만들어 자력에 의한 작동 간섭을 줄였다고 밝혔다. 새로운 색상의 추구도 바젤월드에서 발견되는 흐름이다. 디젤은 체온에 따라 색상이 변하는 시곗줄을 부착한 제품을 선보였다. 이 제품은 원래 녹색인 시곗줄이 체온 때문에 20초가량 지나면 노란색으로 바뀌는 것이 특징이다.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디자인=김원중 기자 paran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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