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염희진]휴가의 두 얼굴

  • 동아일보

염희진 산업부 기자
염희진 산업부 기자
직장인 A 씨는 얼마 전 연차휴가 5일에 주말 4일을 더해 총 9일간 휴가를 다녀왔다. A 씨가 다니는 회사는 올해부터 4일간의 여름휴가와 15일간의 연차휴가를 모두 쓰도록 방침을 정했다. 이제 A 씨에겐 돌아오는 여름휴가를 제외하고 연차휴가 10일이 남았다. 주말까지 이어 쉬면 18일을 더 쉴 수 있는 셈이다.

A 씨의 행복한 고민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미혼인 그는 함께 휴가를 보낼 만한 사람이 마땅치 않다. 매번 국내외로 여행을 떠나기에는 금전적인 여유가 없다. A 씨는 “휴가를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하는 게 스트레스가 될 줄 몰랐다”고 말했다.

일부 기업으로 확산되고 있는 다양한 휴가제도는 2004년 주5일 근무제 도입에 이어 ‘제2의 근로시간 혁명’으로 불리고 있다. 어느 때나 마음대로 휴가를 쓸 수 있는 ‘분산휴가’를 비롯해 2∼3주간의 ‘리프레시휴가’, 일정 근속연수를 채우면 장기휴가를 주는 ‘안식휴가’ 등은 더이상 먼 나라 얘기가 아니다.

기업 차원에서도 다양한 휴가제도가 휴가보상 비용을 절감하고 인재 유치나 직원 복지를 위한 방법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 식품회사 사장은 일주일 휴가를 다녀오겠다는 직원에게 3주간 휴가를 쓰도록 역제안을 했다고 하고, 2주 의무휴가제를 시행하고 있는 금융회사는 휴가를 미처 다 쓰지 못한 직원으로부터 사유서를 받는다. 예전 같으면 상상하지 못할 일이다.

꿈으로만 꾸던 휴가가 현실로 주어졌지만 의외로 만족도는 제각각이다. 워킹맘에게는 한 달간의 안식휴가가 자녀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된다. 반면 40, 50대 남성 직장인에게 장기간의 휴가는 은퇴 후 삶을 준비하라는 사전 경고장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다.

3년 근속 시 한 달간 안식휴가를 주는 한 외국계 기업에서 이 제도의 효과는 극과 극이었다. 자녀가 있는 직원에게는 애사심을 높이고 이직률을 낮추는 효과를 거둔 반면에 20대 미혼 직원의 한 달 휴가는 회사에 독이 됐다. 유학을 떠나거나 이직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여가학자인 김정운 교수는 “생산적인 여가 문화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압축적으로 여가 시간만 늘어나는 것은 부정적인 면이 많다”고 주장한다. 휴가도 놀아본 사람이 더 잘 놀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주2일 휴무제를 도입한 후 사행성 산업이 200% 이상 증가했다는 통계가 있다. 휴가 연장을 제도화하기에 앞서 대체 인력을 확보하는 사전 장치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한쪽에서 어떻게 놀지 고민할 때 다른 한쪽에서는 언제 쉴 수 있을지 걱정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여가소외현상을 우려한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직장인의 연차휴가 평균 사용률은 절반에 못 미치는 46%를 기록했다. 다가오는 휴가철, 휴가를 대하는 직장인의 마음이 다 같을 수 없는 이유다.

염희진 산업부 기자 salthj@donga.com
#휴가#연차#여행#2주 의무휴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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