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본 대지진 1년]<5> 후쿠시마 원전, 지금은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3월 7일 03시 00분


방사성물질 계속 유출… “원전사고는 진행형”

도쿄전력은 1월 19일 후쿠시마 제2원전 2호기의 격납용기에 공업용 내시경을 넣어보고 깜짝 놀랐다. 강렬한 방사선으로 생긴 하얀 반점이 화면 가득히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바닥에서 4.5m까지는 차 있을 것으로 예상했던 냉각수는 4m에서도 확인되지 않았다. 각종 데이터를 근거로 밖에서 추정한 것과 실제 내부 모습은 너무 달랐던 것이다.

일본 정부가 원전사고 9개월 만인 지난해 12월 “원자로의 온도가 100도를 밑돌아 안정적인 상태”라며 ‘냉온정지’를 선언한 것을 무색하게 하는 일이었다. 냉온정지 선언은 원자로 상황을 파악조차 하지 못한 채 내린 성급한 조치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비판은 해외 원전 전문가들에게서도 이어졌다.

“일본의 원전규제 당국은 국제사회의 신뢰를 잃었다.” “이제 원전사고만 났다 하면 일본을 먼저 의심하게 됐다.”

지난달 24일 도쿄에서 열린 일본 정부 산하 ‘원전사고 조사·검증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해외 전문가들은 일본 정부와 관료의 불투명한 정보 공개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쏟아냈다. 회의에 참석한 장순흥 KAIST 교수(한국원자력학회장)는 7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정보 은폐 사실이 뒤늦게 속속 드러나면서 일본 정부는 국내적으로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신뢰를 잃었다”고 평가했다.

3월 초 현재 후쿠시마 원전 용지 내부를 제외하면 반경 20km 이내 경계지역이라고 해도 방사능 수치는 시간당 10μSv(마이크로시버트) 이하로 비교적 안정적이다. 하지만 “1년이 지났어도 해외에서 ‘도쿄’를 위험한 도시로 간주하는 것은 사고 당시 솔직하지 못했던 일본 정부가 자초한 상황”이라는 게 장 교수의 지적이다.

일본 정부는 앞으로 40년 후인 2052년에 원자로를 해체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안정화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방사성물질의 유출을 막기 위해 1호기에 포장 막을 씌우는 등 일부 진전이 있었다. 하지만 사고 원전에서는 지금도 시간당 1000만 베크렐의 방사성물질이 나오고 있다. 또 원전 냉각을 위해 주입한 물이 배관 틈으로 새어나와 원자로마다 1만∼2만 t의 고농도 오염수가 차는 바람에 작업에 차질을 주고 있다.

압력용기 바닥을 뚫고 격납용기 하부에 가라앉은 용융 연료봉이 땅속까지 스며들었다면 원전 폐로는 계획보다 더 오래 걸릴 수 있다. 이럴 경우 원전 주변 지역은 향후 수십 년 동안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역으로 버려질 수밖에 없다.

동아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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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직후 정부와 관료들의 무능과 무책임을 폭로하는 조사 결과도 최근 계속 나오고 있다. 순수 민간인으로 구성된 독립검증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도쿄전력과 감독관청인 원자력안전보안원은 지진 발생 당일인 지난해 3월 11일 이미 멜트다운 소지가 크다고 판단했지만 정부는 이를 은폐했다. 또 일본 정부는 긴급 시 방사능 확산을 예측하는 시스템인 SPEEDI가 사고 직후 방사능 확산 상황을 정확하게 예측하고 있었음에도 확실하지 않은 자료라며 한 달이나 지나 발표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국제원전사고 등급 가운데 최악인 7등급을 받았을 때 일본에서는 “가스미가세키(일본 정부 및 관료)의 신뢰등급이야말로 레벨 7”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시스템의 일본’이라는 신화를 산산조각 내버린 원전사고 이후 1년이 지났어도 불신의 먹구름은 여전히 일본사회 곳곳을 뒤덮고 있다.

도쿄=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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