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총리 ‘강제병합 100년’ 담화]문화재 ‘반환’ 아닌 ‘인도’ 표현… 뒷감당 걱정?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8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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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발 의식해 한발 뺀 표현

정부는 10일 간 나오토(菅直人) 일본 총리가 담화에서 조선왕실의궤 등 도서의 반환 의사를 밝힌 것과 관련해 과거사 문제 해결에 대한 성의를 보였다고 평가하면서도 일본이 이번 반환으로 불법 반출된 문화재 반환 문제를 일단락 지으려는 것은 아닌지 예의 주시하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이날 “일본의 반환 의사 표시는 반가운 일이지만 일본 정부가 의궤 등 도서 반환으로 약탈 문화재의 반환 문제가 해결됐다는 태도를 취할 가능성이 있다”며 “우리 정부는 의궤 등 도서 반환만으론 만족할 수 없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그동안 일본에 “(의궤를) 자발적으로 돌려준다면 좋은 일이지만 의궤만 돌려줘서는 안 된다”고 수차례 강조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그동안 문화재 반환 문제를 양국 회담의 구체적인 의제로 제기한 적이 없으며, 이번 의궤 반환을 위한 사전 실무 협의도 없었다. 다만 정부는 이번 담화에 앞서 담화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실질적인 행동이 포함될 필요가 있다는 뜻을 일본에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문화재 반환 문제를 의제로 제기하지 못한 이면에는 우리 문화재가 언제 어떤 경위를 거쳐 얼마만큼 불법 반출됐는지를 정부가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딜레마가 있다. 정부는 이런 상황에서 의궤 등 특정 문화재를 지목할 경우 일본이 그 문화재만 돌려주고 반환 협의를 끝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에 직면할 것을 우려했다.

담화에서 일본은 식민통치 기간에 조선총독부를 경유해 일본으로 반출돼 현재 일본 정부가 보관하고 있는 문화재를 반환 기준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반환 범위를 도서에 한정함으로써 도서 이외에 불법 반출된 문화재에 대한 언급을 피했다.

정부는 궁내청 외에 일본 정부가 소유한 우리 문화재의 불법 반출 경위와 문화재 목록을 정확히 제시해야 문화재 반환을 한일 정부 간 구체적 의제로 제기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에서는 간 총리 담화가 문화재 반환의 선례가 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간 총리의 약속은 일본 내 보수우익의 반대가 만만치 않아 실행에 옮겨지기까지는 험난한 여정이 예상된다. 여야 정치권은 물론이고 일부 각료도 총리의 담화 내용에 이견을 보이는 실정이다. 이들은 총리 담화가 사과 표현에 머물지 않고 문화재 반환이라는 ‘행동’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전후 문제에 대한 또 다른 보상의 불씨를 남겼다고 본다.

대표적인 보수 정치인으로 꼽히는 자민당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는 이날 총리 담화가 발표된 직후 “향후 문화재 반환이 여러 가지 개인 보상 문제로 불똥이 튈 수 있어 화근을 남겼다”고 주장했다. 각료 가운데는 겐바 고이치로(玄葉光一郞) 민주당 정조회장 겸 행정쇄신담당상이 “여당인 민주당 내에 여러 견해가 있다. 이른 단계에서 당 측과 좀 더 상세한 협의가 있어야 했다”며 불만을 표시했다.

담화에서 문화재의 반환(返還)이 아니라 인도(渡し)라는 애매한 표현을 택한 것도 이 같은 반발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일본 정부는 문화재 반환 문제는 1965년 한일 문화재협정으로 일단락됐다는 입장을 취해온 만큼 이번에 돌려주는 문화재는 한국 측의 기대에 부응해 그냥 인도한다는 것이다. 간 총리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법률적인 문제는 이미 해결됐다는 관점에서 인도라는 표현을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또 담화에는 ‘조선왕조의궤 등 귀중도서들’로 돼 있지만 보수우익들의 반발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을 경우 돌려받는 문화재의 가짓수가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도쿄=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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