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가 잘되기를 기원하는 어머니의 사랑이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 불법과 부정을 보여줬고, 비뚤어진 모정은 아끼는 자녀마저 공범으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법원종합청사 서관 519호 법정.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9부 재판장 김수정 부장판사(48·사법연수원 26기)가 판결문을 낭독하는 동안 최순실 씨(61·구속 기소)의 표정은 점점 굳어졌다. 이전 재판처럼 뿔테 안경에 짙은 회색 윗옷을 입고 법정에 선 최 씨는 입을 굳게 다문 채 앙칼진 표정으로 재판부와 정면의 검사석을 번갈아 바라봤다.
김 부장판사는 “피고인은 자녀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원칙을 어기고 정의를 저버리도록 만들었다”며 “피고인의 부탁을 들어준 사람은 범죄자가 되었고, 원칙을 적용하려 했던 사람들은 피해자가 되었다”고 최 씨를 꾸짖었다. 또 “범행이 상당히 중함에도 공소사실 중 상당 부분을 부인하면서 ‘만연했던 관행’을 내세우며 잘못을 희석시키려고 급급했다”고 비판했다. 김 부장판사는 고등학교 3학년과 중학교 3학년인 두 딸의 어머니다.
재판부는 최 씨의 혐의 대부분을 유죄로 인정해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주된 죄목이 업무 방해(이화여대 학사비리)와 공무집행 방해(청담고 학사비리)인데 유사한 다른 사건에 비해 중형을 선고한 것이다. 최 씨는 선고가 끝난 뒤 방청석을 흘낏 쳐다보고는 조용히 법정을 나섰다. 이날은 최 씨의 61번째 생일이었다.
또 재판부는 ‘체육특기생은 학점 배려를 하는 게 관행’이라는 이화여대 교수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유라 씨가 2015년 1학기에 수강한 과목 교수 중 4명이 체육과학부 교수였지만, 정 씨가 8개 교과목 중 7개 과목에서 ‘에프(F)’ 학점을 받은 점에 비춰보면 이화여대에 체육특기자 배려 관행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 부장판사는 정 씨의 부정입학과 학사특혜를 도운 최경희 전 이화여대 총장(55·구속 기소)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하면서 “피고인의 범행으로 최고의 여자대학으로 근대화와 여성 인권의 모태였던 이화여대가 ‘권학(權學)유착’으로 얼룩졌다고 의심받게 됐다”고 비판했다. 법정에 들어설 때부터 눈언저리가 붉었던 최 전 총장은 선고 내내 고개를 들지 못했다.
이날 재판에서 정 씨가 이화여대 학사비리에 개입한 사실이 일부 인정됐다. 정 씨가 인터넷 강의 허위 수강 등 학사비리에 직접 가담하지는 않았지만 어머니 최 씨와 최 전 총장, 하정희 순천향대 조교수 등과 공모가 있었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정 씨가 이화여대 부정입학에 가담했는지는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로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최 씨는 이 사건을 포함해 박근혜 전 대통령(65·구속 기소)과 함께 공범으로 기소된 △ 삼성 뇌물 사건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출연금 강제 모금 사건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 강요 사건 등 모두 4가지 사건 공판에서 선고받는 형을 합해 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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