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의약품 줄테니 광물-의료데이터 달라” 아프리카 압박

  • 동아일보

“민감한 개인정보 못내줘” 반발속, 민주콩고 등 20여개 국가는 수용
美서도 “거래주의 의료 원조” 비판
민주콩고서만 에볼라로 42명 숨져… 브라질-伊서도 감염 의심사례 보고

에볼라 확산 비상, 민주콩고 찾은 WHO 사무총장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이 지난달 31일 에볼라가 급속히 확산 중인 서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의 부니아를 찾아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아프리카 주요국에 의료 원조를 제공하는 대가로 현지 의료 데이터, 광물 자원에 대한 광범위한 접근권을 요구하고 있다. 부니아=AP 뉴시스
에볼라 확산 비상, 민주콩고 찾은 WHO 사무총장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이 지난달 31일 에볼라가 급속히 확산 중인 서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의 부니아를 찾아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아프리카 주요국에 의료 원조를 제공하는 대가로 현지 의료 데이터, 광물 자원에 대한 광범위한 접근권을 요구하고 있다. 부니아=AP 뉴시스
미국이 아프리카 국가들에 의약품 등 보건 원조를 재개하는 조건으로 해당국의 핵심 광물 접근권과 의료 데이터 등을 요구해 일부 국가들이 반발하고 있다. 특히 의료 데이터는 민감한 개인정보임에도 미국 제약사들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요구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보건의료 여건이 열악한 저개발 국가의 생명을 살리는 의약품 원조 사업을 이용해 경제적 이익을 취하려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 행태가 국제사회에서 큰 논란을 빚고 있다.

● 美 ‘거래주의’ 의료 원조에 아프리카 국가들 반발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달 31일 트럼프 행정부가 아프리카 국가들을 상대로 에이즈와 결핵 등 감염병 퇴치를 위한 원조를 제공하는 대가로 새로운 양자 협정 체결을 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협정에는 미국 기업에 대한 광물자원 접근권 보장, 의료 데이터 제공, 자국 예산 투입 확대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현재까지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고 협정을 체결한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국가는 20여 개국이다. 이 중 현재 변종 에볼라 바이러스 유행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콩고민주공화국(민주콩고)은 미국과 광물 협정을 체결한 뒤 9억 달러(약 1조3500억 원) 규모의 보건 원조 협정을 맺었다. 나이지리아는 자국 기독교 공동체 보호를 약속하는 조건으로 20억 달러(약 3조 원) 규모의 원조를 받기로 했다.

반면 잠비아, 가나, 짐바브웨는 미국의 방침에 반발하고 있다. 특히 잠비아는 미국 기업에 대한 구리 광산 접근권과 민간 보건 데이터 제출을 요구한 미국 정부의 제안을 거부했다. 미국이 제안한 원조 규모는 20억 달러(약 3조 원) 수준. 물람보 하임베 잠비아 외교장관은 “잠비아는 미국이 자국민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처럼 자국민의 이익을 지킬 의무가 있다”고 했다. 짐바브웨도 자국민과 관련된 민감한 건강정보에 대한 광범위한 접근 요구를 이유로 미국의 3억2500만 달러(약 4900억 원) 규모 지원안을 거부했다. 가나도 개인정보 보호 문제를 제기하며 협상을 철회했다.

미국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민주당 소속 상원의원 3명은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에게 서한을 보내 “미국 기업의 구리 광산 접근권을 얻기 위해 잠비아 내 100만 명이 넘는 에이즈 환자의 치료 지원을 중단하는 건 해당 지원 사업에 대한 오랜 초당적 지지에서 벗어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병원체 및 발병 데이터’ 요구는 사실상 미국의 글로벌 제약사들을 위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지난해 세계보건기구(WHO)를 탈퇴한 트럼프 행정부는 전염병으로부터 미국인을 보호하기 위해 현지 데이터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미국이 아프리카 국가들의 의료 데이터를 확보해 미국 제약사들에 독점적인 경쟁 우위를 제공하려는 의도로 보고 있다.

최근 미국은 변종 에볼라 바이러스에 확진됐거나 확진자와 접촉한 미국민을 자국으로 바로 데려오지 않고 케냐의 미군 시설로 옮길 계획을 세웠다가 반발을 사기도 했다. 케냐 현지 법원은 자국민에 대한 전염 우려 등을 이유로 이 같은 미국의 계획에 제동을 걸었다.

● 민주콩고-우간다 에볼라 의심 사례 1100건 달해

트럼프 행정부의 아프리카 의료 지원 감축과 현지 방역 당국의 대응 미비 등이 겹쳐 변종 에볼라 바이러스는 확산세를 이어 가고 있다.

아프리카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민주콩고와 우간다에서 에볼라 감염 의심 사례가 1100여 건에 달하는 걸로 조사됐다. 이 밖에 브라질과 이탈리아에서도 감염 의심 사례가 보고됐다. 지난달 31일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에볼라 진원지인 민주콩고에서만 282명이 에볼라 확진 판정을 받았고, 이 중 42명이 숨졌다.

앨런 곤살레스 국경없는의사회(MSF) 부대표는 이날 성명에서 “에볼라 발병이 공식 선언된 지 2주가 지난 현재 상황은 매우 심각하다”며 “에볼라 발병 사례 가운데 이렇게 짧은 기간에 이처럼 많은 환자가 보고된 적이 없다”고 밝혔다. 현장 방역이 전염병 확산세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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