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 쿠제치 주한 이란대사가 5일 오전 서울 용산구 주한 이란이슬람공화국대사관에서 열린 이스라엘과 미국의 대이란 군사적 공격과 관련해 공식 입장을 밝히고 있다. 2026.03.05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지난달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선제 공격 이후 일주일 가까이 양측이 공방을 주고받는 가운데 5일 사이드 쿠제치 주한 이란대사는 “이란에 대한 침략이 중단되기 전에는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전쟁 장기화를 예상하며 미국이 지상군 투입을 감행한다면 대규모 인명피해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쿠제치 대사는 서울 용산구 동빙고동 주한 이란대사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란은 언제나 대화와 협상의 길을 중요하게 여기나, 전쟁의 길을 선택한 침략자들에게는 당당히 맞설 것”이라며 “이란은 국제법을 위반한 심각한 침략 행위에 대한 정당방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과 이스라엘이 지난달 28일 남부 미나브의 여자초등학교를 공격해 최소 175명이 숨진 사건이 “명백한 전쟁범죄에 해당한다”고 규탄하며 1분간 묵념했다.
5일 서울 용산구 주한 이란대사관에서 관계자들이 지난달 28일 이후 현지 피해 상황이 담긴 사진을 유리벽에 붙이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을 받아 폐허가 된 학교와 병원, 장례식이 열리는 현장,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 지도자 사후 열린 추도 집회 등을 담은 사진이 전시됐다. 사진공동취재단미국과 이스라엘이 공격 명분으로 제시한 ‘이란 핵무기 개발’에 대해서는 “정치적 구실에 불과한 허위 정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란은 핵무기 제조와 보유‧사용을 금지한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의 파트와(종교적 명령)에 따라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쿠제치 대사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을 통해서도 이란의 핵 활동이 군사적 지향점을 갖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쿠제치 대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침략적 행보를 보이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정권을 아낌없는 지원하고 있다”며 “중동 유일의 핵무기 보유국인 이스라엘이 IAEA 감시를 허용하지 않고 있지만 국제사회가 이를 묵인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을 비롯한 전 세계의 비핵화를 지지한다는 기존 이란 정부 입장도 강조했다.
그는 4일(현지 시간) 쿠르드족 무장단체의 이란 진입과 관련해 미국이 배후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또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지 않았고,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 등 걸프국의 에너지시설에 공격을 가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에너지시설 공격이 이스라엘 모사드와 미국 중앙정보국(CIA) 요원의 소행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사이드 쿠제치 주한 이란대사가 5일 오전 서울 용산구 주한 이란대사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입장하고 있다. 같은 시간 라파엘 하르파즈 주한 이스라엘대사도 종로구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공동취재단주한미군의 중동 배치 가능성에 대해서는 “미국은 공격 후 48시간 이내 이란 정권의 붕괴를 예상했으나, 원하는대로 상황이 흘러가지 않자 한국 정부와 대화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는 “미국이 중동 아랍국 군사기지를 이용해 이란을 공격하고, 의회에 국방 예산 증액을 요청하는 상황을 볼 때 전쟁이 길어질 수 있고 이란은 준비가 되어 있다”고 했다.
휴전 협상 개시를 위한 조건으로는 “이란에 대한 침략이 중단되어야 한다”며 “현재 이란은 불법적이고 전격적인 공격을 받고 있어 그어떤 협상 테이블에도 앉을 수 없다”고 했다. 핵협상과 관련해서는 “기술적 신뢰 구축 조치를 위한 협력에 항상 열려 있으면서도, 우라늄 농축을 포함한 우리의 합법적 권리를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북한이 미국과 이스라엘 규탄 성명을 낸 것과 관련해 “북한의 이란의 우방국”이라며 “규탄의 목소리를 내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한다”고 밝혔다. 한국과 관련해서는 “한국 외교부의 입장 표명이 충분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며 “한국이 현재의 분쟁을 멈추기 위한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 외교부는 2일 “현 중동 상황 전개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가지고 예의 주시 중이며, 국제사회의 보편적 가치와 원칙에 따라 해결되기를 바란다”는 박일 외교부 대변인 명의의 성명을 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