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일본 오키나와섬 인근 해상에서 벌인 중국과 러시아 폭격기의 연합훈련에 대해 일본 방위성 당국자는 요미우리신문에 이렇게 밝혔다. 당시 일본 본토 섬 중 하나인 시코쿠 남쪽까지 북동진한 중-러 폭격기가 기수를 돌리지 않고 직진으로 계속 비행했다면 도쿄 상공에 다다랐을 거라는 분석에 따른 것. 지난달 7일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일본 총리의 대만 유사시 개입 발언으로 촉발된 중일 갈등이 외교, 문화 영역에 이어 군사 부문으로 확산된 가운데 중국군의 칼끝이 대만, 오키나와를 벗어나 수도 도쿄를 겨냥했다는 얘기다.
또 13일 중국은 난징대학살 기념일에 맞춰 일본군의 목을 베는 내용의 섬뜩한 포스터를 공개하며 군사적 긴장을 다시 한번 고조시켰다. 스타이펑(石泰峰) 중국공산당 중앙조직부장은 이날 추도사에서 “군국주의를 되살리는 (일본의) 시도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역사는 이를 이미 증명했고, 앞으로도 계속 증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 중-러 폭격기, 도쿄 방향으로 북동진
13일 요미우리신문은 일본 방위성 통합막료감부(한국의 합동참모본부 격) 자료를 분석해 9일 오키나와 인근에서 연합훈련에 나섰던 중국과 러시아 폭격기들이 도쿄 방향으로 비행했다고 전했다. 이들 폭격기가 오키나와와 미야코지마를 지나 북동진한 경로를 직선으로 이어 보면 일본 수도인 도쿄와 해상자위대 및 미 해군 기지가 있는 요코스카에 닿는다는 게 일본 측 설명이다.
중국 폭격기가 오키나와와 미야코지마 사이를 통과한 건 처음은 아니지만, 이번처럼 도쿄 방향으로 비행한 건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특히 중-러 군용기가 함께 이 경로로 북동진한 건 처음이라고 요미우리는 전했다.
특히 일본 매체들은 이날 도쿄 쪽으로 향한 중국 폭격기가 핵미사일 탑재가 가능한 H-6K라는 점에도 주목했다. H-6K는 핵탄두를 포함한 공대지, 공대함 미사일 6발을 장착할 수 있고 사거리가 1500km 이상이다. 이날 중-러 폭격기가 돌아간 시코쿠 남쪽 해역과 도쿄 사이의 거리는 600~1000km 정도다.
이 같은 중-러의 무력 시위에 맞서 미국과 일본도 연합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요미우리는 미군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와 일본 해상자위대 아키즈키 구축함이 8∼11일 혼슈 중부 남쪽 태평양 해역에서 연합훈련을 진행했다고 전했다.
● 중국군, 日 겨냥해 “더러운 머리 잘라내야”
중국 인민해방군 동부전구가 13일 난징대학살 추모일에 일본을 겨냥해 공개한 포스터. X 캡쳐 1937년 중일전쟁 당시 일본군이 중국인 30만 명을 학살한 난징대학살 추모일인 13일 중국군 동부전구(戰區)는 ‘대도제(大刀祭·큰 칼 제사)’란 제목의 포스터를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개했다. 포스터에는 일본군 모자를 쓴 해골 머리를 큰 칼로 베는 모습이 담겼다. ‘刀(칼 도)’ 글자와 칼끝에 빨간 피가 흐르는 모습도 포함됐다. 동부전구는 대만해협을 담당하는 중국군 부대다.
동부전구는 포스터와 함께 올린 글에 “군국주의 유령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며 “더럽고 추악한 머리를 단호히 잘라 군국주의의 재등장을 절대 허용해선 안 된다”고 썼다. 또 ‘동왜(東倭)가 재앙을 일으킨 지 1000년이 됐다’는 시구를 병기했다. ‘동왜’는 동쪽의 오랑캐란 뜻으로, 일본을 비하하는 표현이다.
이날 장쑤성 난징시의 난징대학살 희생 동포 기념관에선 당정 인사, 군인, 시민 등 수천 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가 추도식이 열렸다. 스 조직부장은 이날 추도사에서 “군국주의를 부활시키고 전후 질서를 훼손하려는 어떤 시도도 실패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추도사에 담긴 ‘중국과 일본은 서로 위협이 되지 않는 파트너’란 표현은 이번에 빠졌다고 블룸버그통신이 이날 전했다.
한편 중일 간 군사긴장이 커지는 가운데, 일본 정부가 2026년도 방위 예산 규모를 역대 최대인 9조 엔(약 85조 원) 책정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견제를 위해 장사정 미사일과 무인기(드론) 확충 등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베이징=김철중 특파원 tnf@donga.com 도쿄=황인찬 특파원 hic@donga.com 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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