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미트로 포노마렌코 주한우크라이나 대사가 13일 서울 용산구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관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북한군은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방어가 아닌 공격 전술만 배웠다. 북한은 이렇게 쌓은 현장 전투지식을 귀국한 뒤 어떻게든 활용할 것이다.”
드미트로 포노마렌코 주한우크라이나 대사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3주년(24일)을 앞둔 13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북한군 파병의 영향력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쿠르스크 지역에 파병된 병력 1만2000명 중 약 3분의 1이 죽거나 다치는 등 큰 피해를 보았지만, 이를 계기로 쌓은 지식과 러시아로부터 받은 대가가 인도·태평양 전역에 직접적인 안보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것.
전쟁 3주년을 앞두고 우크라이나 평화 구상 논의가 급물살을 타는 가운데, 포노마렌코 대사는 전후 재건 사업과 관련해선 “한국의 재건과 경제개발 역량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라며 한국이 다양한 층위에서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 기업을 향해서도 “우크라이나가 유럽연합(EU)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만큼, 한국 기업들이 유럽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생산 기지가 될 수 있다”라고 언급했다.
다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일(현지 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연쇄 통화한 직후 진행된 이날 인터뷰에서 그는 평화 구상 논의의 조건과 관련해선 “전선(戰線)을 현 상태로 동결하자는 주장은 미래 세대로 갈등을 떠 넘기자는 것이다. 영토 협상은 절대 없다”고 했다.
드미트로 포노마렌코 주한우크라이나 대사가 13일 서울 용산구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관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한국 정부와 민간 기업들이 전후 재건 사업에 참여할 가능성을 어떻게 평가하나.
“인프라 재건과 경제 개발과 관련해 한국의 경험과 역량은 전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며, 우크라이나에서 다층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우리는 한국 정부와 지난해 23억 달러 규모의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협정을 체결했다. 또 우크라이나 정부는 재건 사업에서 가장 수익성 높은 투자 조건을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 현재 에너지 부문 복구, 주거용 건물 재건, 기반 시설 복구, 대인 지뢰 제거, IT 등 다섯 가지 분야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특히 우리의 방위 장비 30%가 우크라이나에서 생산되고 있기 때문에, IT 부문은 전후에도 매우 큰 투자 영역이 될 수 있다. 또 우크라이나가 유럽연합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만큼, 한국 기업에는 유럽 시장 진출을 위한 생산 기지가 될 수 있다. 지금 협상이 시작돼야 전후에 주요 프로젝트들을 지체 없이 실행할 수 있는 만큼, 한국 기업들의 참여 의사를 확인하고 싶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한국에 기대하는 추가적인 역할은
“한국이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으로서 ‘어린이들을 집으로(bring kids back)’ 등 우리가 추진하는 국제적 이니셔티브에도 참여해 주길 바란다. 물론 인도적 지원도 중요하다. 최근 만난 한국의 국회의원들이 올해 공적 개발 원조(ODA) 예산이 많이 삭감됐다고 전했지만, 우리는 우크라이나 지원 관련 최소한 현상 유지는 해주길 요청했다.”
―북한군 파병의 영향은 어떻게 평가하나.
“쿠르스크 지역에 파병된 병력 총 1만2000명 중 사상자가 4000명인 것으로 보고받았다. 고작 2, 3달 만에 발생한 것으로는 매우 큰 숫자다. 병사들은 총알받이로 사용됐지만 장교들은 전장의 작전을 현장에서 학습하는 계기가 됐다. 또한 이들은 방어가 아닌 공격 전술만 배웠다는 점도 중요하다. 이들은 북한으로 돌아가면 현장에서 쌓은 전투 전술, 드론 전쟁 전략, 전장 생존 기술을 어떤 방식으로든 활용할 것이다. 이것은 한반도뿐 아니라 일본과 같은 가장 가까운 이웃과 아시아, 인도·태평양에도 직접적인 안보 위협이 될 수 있다.”
―현재까지 우크라이나에 대한 한국의 입장과 지지를 전체적으로 어떻게 평가하나.
“대한민국 국민과 정부가 어려운 시기에 우크라이나를 지원해 온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특히 대인 지뢰 제거와 군인 재활 지원 등에 감사하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대한민국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 접근 방식을 재검토해 주길 바란다. 살상 무기 지원이 어렵다면 한국산 방공 시스템, 레이더, 그리고 대(對)드론 시스템을 검토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은 북한의 참전으로 인해 이제 한국의 전략적 이익에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원거리에서 북한의 군사적 잠재력을 줄이는 데 투자하는 것은 향후 한반도에서 직접 충돌의 가능성도 줄일 수 있다.”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오른쪽)이 13일(현지 시간) 벨기에 브뤼셀 나토 본부에서 열린 나토 국방장관회의 이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루스템 우메로프 우크라이나 국방장관과 악수하고 있다. 브뤼셀=AP 뉴시스―휴전 협상을 위한 우크라이나의 조건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우크라이나 전쟁에는 미국을 비롯한 다른 강대국들이 물론 관여하고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없는 우크라이나 전쟁 협상은 불가하다는 것이 첫 번째 조건이다. 또한 유엔 헌장에 근거해 국제적으로 인정된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영토 보전에 대한 존중을 포함해야 한다. 우크라이나의 등 뒤에서 일어나는 모든 회담은 실질적 결과로 이어지기는커녕, 더 긴 전쟁으로 이어질 것이다. 어떤 협상이든 반드시 안전 보장이 선행돼야 한다.”
―‘영토 보전’은 협상 불가능한 조건인가.
“우리는 땅을 놓고 거래하지 않을 것이다. 더 논의할 대상이 아니다. 현재 우리가 가진 인력, 군사 장비 등의 능력으로 영토를 되찾는 건 매우 힘든 일이며, 당장 눈앞의 과제는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영토라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전선을 현재 상태로 동결하고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장기간 유예하는 아이디어가 논의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을 통해 나온 메시지일 뿐, 협상 테이블에 공식 제시된 안건은 아니다. 현 전선을 동결한다는 것은 미래 세대에게 문제를 미룬다는 뜻이다. 아마도 몇 년은 소위 ‘평화’ 속에서 살 수 있겠지만 언제든 다시 갈등이 폭발할 수 있다. 이를 막으려면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이 보장돼야 한다. 그래야 나토 회원국들의 상호방위 조약으로 푸틴이 더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우리에겐 (사실상 효력을 잃은) 부다페스트 양해각서의 경험이 있다. 나토 정회원 가입 외에는 어떤 대안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지금 당장 회원 자격을 달라는 게 아니라 가입 초청을 요청하는 것이다. 안전이 보장돼야만 우크라이나는 대규모 군대를 유지하고 방공망 강화에 국가 예산을 쏟아붓는 대신 복구와 재건에 투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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