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의 앙숙’ 사우디와 이란은 정말 화해한 것일까[이세형 기자의 더 가까이 중동]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12일 11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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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국제정세와 경제위기 극복하기 위해 일단 ‘차가운 평화’ 도모하기로
이슬람교 종파와 정치체제 둘러싼 갈등 뿌리 깊어
서로를 향한 도발 가능성도 여전…다시 관계 악화될 가능성 배제 못해

중국 베이징에서 이란-사우디 국교정상화 회담이 열려 무사드 빈 모하메드 알-아이반 사우디 국가안보보좌관(왼쪽)과 알리 샴카니 이란 최고 국가안보위원회 위원장(오른쪽)이 악수하고 있다. 가운데는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뉴시스
중국 베이징에서 이란-사우디 국교정상화 회담이 열려 무사드 빈 모하메드 알-아이반 사우디 국가안보보좌관(왼쪽)과 알리 샴카니 이란 최고 국가안보위원회 위원장(오른쪽)이 악수하고 있다. 가운데는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뉴시스
‘세계의 화약고’ 중동이 시끄럽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때문이다. 다행히, 전쟁 혹은 충돌은 아니다. 두 나라의 화해 소식으로 중동이 들썩이고 있다.

중동의 대표적인 강국으로 다양한 부문에서 충돌해 온 사우디와 이란은 10일(현지 시간) 7년 만에 외교 관계를 복원하기로 했다. 주요 외신들과 사우디와 이란 매체들에 따르면 두 나라는 6~10일 중국 베이징에서 중국 정부의 중재 아래 대화를 나눴고 2016년 1월 단절됐던 외교 관계를 복원하기로 했다. 또 두 달 안에 대사관을 다시 열기로 했다.

사우디와 이란은 2016년 1월 사우디가 자국 내 시아파 고위 지도자들을 대거 체포하고, 일부에 대해선 사형을 집행하자 이란 내 보수 시아파 세력이 주이란 사우디 대사관과 총영사관을 공격하며 ‘단교 사태’를 맞이했다. 그 뒤 두 나라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서로를 비난해 왔다. 서로를 겨냥한 안보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중동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두 나라가 외교 관계를 회복하기로 했다는 소식에 국제사회는 ‘환영 메시지’를 내고 있다. 하지만 사우디와 이란이 정말 갈등을 접고 정상적인 이웃 국가로 자리매김할지에 대해선 적잖은 의문이 남는다. 두 나라 간의 갈등이 구조적으로 워낙 깊고, 쉽게 해결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 수니파와 시아파, 왕정과 신정공화정…지리적으로는 가깝지만 먼 두 나라


사우디와 이란은 중동에서 ‘앙숙’, ‘라이벌’, ‘불편한 이웃’으로 통한다. 걸프만(이란에서는 페르시아만, 사우디 등 아랍권에서는 아라비아만으로 호칭)이란 좁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는 두 나라는 여러 측면에서 앙숙이 되기 좋은 조건을 지녔다.

일단 종교에서부터 사우디는 이슬람교 수니파(무슬림의 85~90%가 수니파), 이란은 시아파의 종주국이다. 이른바 수니파와 시아파 간 심각한 갈등이 벌어질 때 두 나라는 일정 부분 자동적으로 개입될 수밖에 없다. 또 사우디는 아랍의 중심국이지만 이란은 페르시아의 후예로 인종, 언어, 문화가 다르다.

사우디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과 가까웠던 반면 이란은 북한과 더불어 대표적인 반미국가로 꼽힌다. 지금도 이란은 러시아와 중국 등 반미 성향 국가들과 더 가깝다.

가장 큰 차이는 정치체제에서 나타난다. 사우디는 국왕을 중심으로 한 왕정, 이란은 시아파 최고지도자(알라의 증거라는 의미를 지닌 아야톨라로 호칭)와 대통령이 중심이 되는 신정공화정 체제다. 중요한 건 이란도 원래는 왕정 국가였다는 점이다. 하지만 1979년 시아파 지도자인 루홀라 호메이니가 중심이 돼 팔레비 왕정을 무너뜨렸다.

사우디로서는 이란이 종파, 문화, 외교안보 전략에서 자신들과 다르다는 것도 부담스럽지만, 부패하고 무능했던 왕정을 무너뜨린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게 가장 두렵다. 특히 이란이 자신들의 ‘혁명 경험’을 시아파 인구가 많고, 정세가 불안한 이라크, 레바논, 시리아, 예멘 같은 사우디 인근 나라의 현지 시아파 무장 정치단체, 언론사, 종교지도자 등을 지원하며 전파해 왔다는 것에 대한 경계심이 크다.

1981년 5월 사우디가 주도해 같은 정치(왕정), 경제(석유와 천연가스 중심), 종파(수니파) 체제를 지닌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쿠웨이트, 바레인, 오만과 정치‧경제 연합체인 걸프협력회의(GCC)를 구성한 것도 이란에 공동으로 대응하려는 목적이 가장 컸다. 또 2017년 6월 카타르에 대해 사우디, UAE, 바레인이 외교관 추방, 영토와 영공 폐쇄, 무역 중단 등을 결정하는 ‘단교 조치’를 취한 핵심 이유 중 하나도 카타르가 이란과 가깝게 지냈기 때문이다. 카타르는 걸프만의 세계 최대 해상 천연가스전을 이란과 공유하기 때문에 이란과 가깝게 지낼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다.

사우디와 이란은 현재 내전이 벌어지고 있는 예멘에서 사실상의 대리전도 치르고 있다. 사우디는 예멘 정부군을, 이란은 시아파 계열인 후티 반군을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 사우디, 석유시설 밀집한 동부 지역에 대한 이란의 도발이 두려워


사우디 자체도 이란의 혁명 사상 전파 지역 중 하나다.

이란은 사우디에서 시아파 인구 비율이 높고, 이란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동부 지역을 집중 공략 대상으로 여겨왔다. 소수파로서 차별받는 사우디 시아파들을 자극하는 건 이란으로서는 앙숙인 사우디를 흔드는 좋은 전략이다. 사우디 정부는 자국 내 시아파들의 대규모 시위 등이 벌어질 때마다 배후가 이란 정부라고 주장해 왔다.

사우디의 동부 지역은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의 본사, 연구 및 생산 시설이 밀집해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또 사우디의 담수화 시설과 전력 생산 시설도 동부에 대거 자리 잡고 있다. 사우디로서는 자국 경제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지역이다.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는 “사우디와 이란 간의 대규모 군사 충돌이 벌어지면 이란의 미사일이 대거 사우디 동부를 강타할 수 있고, 이 경우 사우디의 피해는 엄청날 수밖에 없다”며 “특히 담수화와 전력 시설이 공격받을 경우 국가 운영과 국민 생활이 마비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사우디는 2019년 9월 동부 지역이 이란으로부터 공격 받는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경험했다. 후티 반군이 이란으로부터 지원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미사일과 무인기(드론)로 아람코의 아브까이끄의 원유 탈황·정제 시설을 공격해 사우디의 일일 원유 생산량이 정상 수준의 절반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당시 사우디 안팎에선 비교적 소규모 공격이었는데도 석유 생산에 큰 차질이 벌어졌다는 것에 주목했다. 또 현지에선 “여름이었던 상황을 감안할 때 담수화(물)와 전력(전기와 냉방) 시설까지 공격당했다면 공포감이 더욱 컸을 것”이란 분석도 나왔다.

● 중국, ‘투자’ 앞세워 두 나라 중재 했나


그렇다면 갈등 속에서도 두 나라가 극적으로 외교 관계 회복이란 결정을 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두 나라 모두 전세계적인 경기침체, 우크라이나 전쟁, 미‧중‧러 갈등 심화 같은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주변국과의 심각한 갈등을 계속 가져가는 게 부담스러웠을 것이란 분석이 많다.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대우교수는 “이란은 미국이 주도 중인 경제제재로 인한 어려움을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고, 사우디는 네옴시티 등의 개발을 위해 투자 유치와 안보 챙기기가 동시에 필요하다”며 “이런 현실 때문에 두 나라가 일단 ‘차가운 평화’를 도모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특히 중국이 두 나라 간 대화를 베이징에서 중재했다는 점을 놓고 ‘중국이 사우디와 이란에게 모두 경제적 지원과 협력을 약속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중국의 경우 두 나라의 경제적 니즈를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배경을 갖추고 있다.

이란은 미국과 서유럽의 경제제재를 이겨내려면 서방의 제재를 따르지 않으며 경제대국인 중국만큼 든든한 파트너도 없다. 사우디도 네옴시티 개발 등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추진하고 ‘국가 핵심 프로젝트’들을 원활히 진행하려면 대규모 투자 여력과 개발 노하우가 있는 중국이 매력적인 협력 대상이다.

당연히 미국은 중국이 중재를 주도한 이번 합의가 못 마땅하다는 입장을 드러내고 있다. 사우디와 이란 간 이번 합의에 대해 긴장 완화 노력을 지지한다면서도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식의 입장을 밝히고 있는 것.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조정관은 전화 브리핑을 통해 “(이번 합의에 대해) 지켜봐야 한다. 이란 정권은 자기 말을 지키는 정권이 아니다”고 말했다.

● 상대국에 대한 도발 불씨 여전해


두 나라가 현재 민감하게 대립하고 있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도 언제든지 터질 수 있는 ‘관계 악화’의 불씨로 여겨진다.

무엇보다 사우디가 가장 민감하게 여기는 이란의 미사일과 핵개발, 주변국에 대한 영향력 행사 전략이 대폭 수정될 가능성이 높지 않다. 특히 이란의 시아파 무장정치 단체들을 활용한 주변국에 대한 무력도발이나 정치 개입은 이미 오래전부터 뚜렷한 성과를 내고 있는 이란의 안보 자산이다. 그런 만큼 이란으로서는 포기하기 어렵다.

사우디 킹파이잘 이슬람연구센터의 조셉 케시시안 수석연구위원은 “사우디와 이란은 2년간 이번 협상을 진행했고, 이란의 헤즈볼라(레바논의 친이란 무장 정치단체)와 후티 반군 등에 대한 지원 문제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합의점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목표 달성이 쉽지 않은 문제이기 때문에 향후 두 달(양국에 대사관이 다시 문을 열기 전까지) 간 가장 예의주시해서 살펴봐야 할 사항”이라고 말했다.

2020년 9월부터 사우디의 사실상 동의아래 ‘형제국’인 UAE와 바레인 등이 이른바 ‘아브라함 협정’을 통해 이란의 주적인 이스라엘과 외교 관계를 정상화 했고, 점점 경제와 안보 협력 수준을 높이고 있다는 것도 변수다.

이란은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의 공작으로 여러 차례 자국 핵과 미사일 관련 개발 시설이 대거 공격 당한 경험이 있다. 반대로 이란은 레바논의 헤즈볼라,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무장 정치단체인 하마스를 통해 이스라엘에 대한 도발도 하고 있다.

이런 ‘이란-이스라엘 갈등’ 속에서 UAE와 바레인 등이 묵인하거나 간접적으로 협력하는 방식으로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할 경우 사우디의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다. UAE와 바레인은 이란의 위협에 대응하는 목적으로 이스라엘과 관계 정상화를 결정했다. 그만큼, 이스라엘의 이란에 대한 강경한 조치에도 상대적으로 유연할 수 있는 것.

중동 외교가 관계자는 “사우디와 이란 관계는 과거에도 안정적이다가 종파 갈등, 주변국에 대한 개입 등으로 급격히 악화된 경우가 많다”며 “이번 합의가 지속가능할지 여부는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세형 기자·전 카이로 특파원 turt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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