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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국제

이란 핵무기만큼 중요한 시아벨트 전략[이세형 기자의 더 가까이 중동]

입력 2020-12-02 11:28업데이트 2020-12-02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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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유명 핵 과학자인 모센 파흐리자데가 지난달 27일(현지 시간) 테헤란에서 원격 조종 기관총에 맞아 사망하면서 이란과 이스라엘의 적대 관계가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중동에선 국가, 종교, 영토를 둘러싼 갈등, 나아가 전쟁과 테러가 자주 발생합니다. 이란과 이스라엘은 중동에서도 대표적으로 적대적 관계를 가지고 있는 나라인데요. 이스라엘의 정보기관으로 해외공작을 담당하는 ‘모사드’가 이란의 핵무기 개발에 관여해 온 파흐리자데를 살해하지 않았겠느냐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모센 파흐리자데

모사드는 과거에도 이란의 핵무기 개발에 관여한 과학자들을 살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당시에도 명확한 증거는 없지만 이란 안팎에선 사실상 모사드의 개입을 인정하는 분위기였고, 이스라엘도 강하게 부인은 안했습니다.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나라가 핵무기를 개발하니까 해당 업무를 담당하는 핵심 관계자를 살해하는 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나아가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터키 같은 다른 중동 주요 국가들도 이란의 핵무기 개발에 대한 우려를 가지고 있는데요. 하지만 중동 정세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이란이 주변 나라들에게 끼치는 위협을 핵무기(나아가 미사일)에만 초점을 맞춰서 생각하는 건 다소 단편적인 접근입니다.

사실 이란의 핵무기는 아직 완성 상태가 아닙니다. 오히려 현재 주변국들이 이란으로부터 받는 가장 실질적인 위협은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등 이른바 ‘시아벨트(시아 초승달 지대로도 불림)’에서의 정치·군사 영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란은 1980년~1988년 이라크와의 전쟁을 겪은 뒤, 자국 땅에서 전쟁이 발생하는 것을 최대한 방지하기 위한 전략 수립에 나섰는데요. 이중 핵심이 시아벨트에서의 영향력 확장 전략입니다.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같이 인근에 위치해 있으면서 정치·사회적으로 혼란을 겪고, 이슬람교 시아파(이란이 종주국, 수니파의 종주국은 사우디) 인구가 많은 나라의 정치와 안보에 개입하는 것입니다. 현지에 있는 시아파 정치인, 무장단체, 언론들을 지원하고 경우에 따라선 자국 군대를 파견하는 것이죠. 이를 통해 그 나라의 정치와 안보 전략을 이란에 유리하고, 우호적으로 바꾸려 했습니다.

그리고 나름 성공을 거뒀습니다. 레바논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정치세력이며 동시에 무장단체이기도 한 ‘헤즈볼라’가 좋은 예입니다. 헤즈볼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 마다 꼭 언급되는 게 ‘친이란 시아파 무장정파’란 표현입니다. 헤즈볼라의 자금, 무기, 전투요원 훈련 등을 이란이 지원한다는 건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사실입니다.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세력인 이슬람국가(IS)가 활개 칠 때도 이란은 현지의 시아파 무장단체들을 지원했고, 자국 군인들도 파병했습니다. 사실상 중앙정부와 정부군이 제 역할을 못하는 이라크와 시리아에선 이란의 이런 적극적인 개입이 IS 퇴치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이란 혁명 수비대

중요한 건, 이란과 경쟁 혹은 적대 관계에 있는 이스라엘과 사우디가 시아벨트로 불리는 나라들과 국경을 맞대고 있거나 인접해 있다는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이란과의 관계가 급격히 악화될 때 이 나라에 위치한 이란 군대나 친이란 무장단체들이 언제든지 무력 도발을 진행할 수 있다는 뜻이죠. 헤즈볼라의 경우 2006년 이스라엘 병사를 납치한 뒤 이스라엘군의 보복 공격이 있자 여기에 다시 로켓포 등을 발사하며 맞섰는데요.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전투력을 자랑하는 이스라엘 정규군과 무려 34일간 전쟁을 치렀습니다.

또 이란은 이스라엘과 가깝고, 적대적인 관계인 시리아에도 자국 군대의 기지를 만들었습니다. 당연히 이스라엘은 이란군이 시리아에서 주요 무기나 대규모 병력을 배치하거나 특별한 움직임을 보일 때 폭격하는 등 강한 대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지난달 29일 이라크와 맞닿은 시리아 국경지대 알까임에서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이란에서 ‘정부 위의 정부’로 불리는 혁명수비대의 해외작전과 특수전을 담당하는 정예부대)의 고위 장성 무슬림 샤흐단과 경호원 3명을 무인기(드론)로 살해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습니다. 이란의 시아벨트 전략에 대한 이스라엘의 반감을 다시 한번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란 혁명 수비대

많은 국내·외 언론이 보도했듯,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집권하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절 최악으로 치달았던 미-이란 관계에도 변화가 생길 것이란 전망이 많습니다. 특히 바이든 당선인을 비롯해 토니 블링컨 국무부 장관 지명자과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같은 외교안보라인의 핵심 인사들이 오바마 행정부 시절 중동 정책, 특히 이란과의 핵합의에 관여했기 때문에 일단은 이란과의 대화에 적극적일 것으로 보입니다.

이 과정에서 중동 외교가 관계자들과 전문가들은 바이든 행정부가 이란과의 대화를 시작할 경우 시아벨트에서 이란이 펼치고 있는 영향력 확장 전략을 어떻게 다룰지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입니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에는 이란과 협상을 하면서 이 문제를 미국이 심각하게 다루지 않았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당연히 이스라엘, 사우디, UAE의 불만은 컸고요. 반이란 성향이 강했던 트럼프 행정부에 이란이 시아벨트 전략을 심각하게 다뤘습니다. 이스라엘, 사우디, UAE 등도 적극적으로 시아벨트의 심각성을 강조했고요. 실제로 미국은 올해 1월3일 시아벨트 전략을 기획·지휘하는 핵심 인물 중 하나인 가셈 솔레이마니 당시 쿠드스군 사령관을 이라크 바그다드 국제공항에서 드론을 이용해 살해했습니다(당시 관련 정보를 모사드가 제공했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2020년 1월3일 미국의 드론 공격으로 바그다드 국제공항에서 사망한 솔레이마니(가운데)

그런 만큼,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과 대이란 외교를 살펴볼 때는 이란의 핵무기 못지않게 시아벨트 전략에 대한 메시지나 대응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이든 행정부가 이란의 시아벨트 전략에 대한 적극적인 문제제기에 나설 경우 미-이란 협상은 난항을 겪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완성되지 않은 핵무기 달리 시아벨트 전략은 상당 부분 완성됐고 성과도 나오고 있으니까요. 또 시아벨트 전략을 반미 성향이 강한 이란 혁명수비대가 주관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란으로선 경제난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같은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미국과의 협상, 나아가 제재 완화가 꼭 필요합니다. 바이든 행정부 시대에 미-이란 관계에 관심이 더욱 모아질 수밖에 없는 부분입니다.

이세형 기자·전 카이로특파원 turt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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