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이 크리스마스 선물이 되지 못한 이유[김성모 기자의 신비월드]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2월 25일 1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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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신(新) 비즈니스 가이드(28) 

‘신비월드’는 세계 각국에서 세상을 이롭게 이끄는 혁신적인 기업과 새로운 정보기술(IT) 소식들을 소개합니다. ‘파괴적 혁신’을 꾀하는 스타트업부터 글로벌 주요 기업까지, 빠르게 변해가는 ‘신(新) 글로벌 비즈니스’를 알차게 전달하겠습니다.
2011년 2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우드사이드에 있는 벤처투자가 존 도어의 자택에서 버락 오바마 당시 미 대통령이 주최하는 만찬이 열렸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설립자, 에릭 슈밋 전 구글 최고경영자(CEO) 등 여러 실리콘밸리 스타가 모였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6주 시한부설’에 휘말린 스티브 잡스 애플 전 CEO에 온통 쏠렸다.

백악관의 요청대로 회사 대표들은 미리 준비한 질문을 오바마에게 던졌다. 그런데, 잡스의 연설 때는 달랐다. 대통령이 먼저 말을 끊었다. 오바마는 잡스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애플의 공장과 일자리들이 ‘집(미국)’으로 돌아올 수는 없습니까?”

잡스가 살아있었다면, 11년 전 미국으로 공장을 옮기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있을까.
● 최대 성수기 앞두고 아이폰 품귀현상
중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강력하게 통제한 여파로 애플이 크리스마스 등 연말 대목을 놓치게 생겼다. 중국 정저우 지역의 코로나19 통제에 반발한 폭스콘 공장 직원들이 대규모로 이탈해 아이폰 생산에 차질이 빚어졌기 때문이다. 정저우 공장은 아이폰14 시리즈의 80%를 생산하는 아이폰 핵심 생산 기지다. 특히, 고급 모델인 아이폰14 프로, 프로 맥스의 85%가 이곳에서 완성된다.

애플 아이폰 조립업체인 대만의 폭스콘(홍하이 정밀공업)은 중국 정저우 지역이 코로나19 통제를 완화하고 있다고 15일(현지 시간) 밝혔지만, 아이폰 신제품의 생산 둔화가 내년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스위스 투자은행 UBS는 올해 4분기 아이폰 판매량을 기존 8300만 대에서 5% 감소한 7900만 대로 낮춰 잡았다. 또, 공급 부족이 내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고 2023년 1분기 판매량을 5800만 대로 하향 조정했다.

신형 아이폰을 주문한 고객들은 애가 탄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지난달 28일 아이폰14 프로와 프로 맥스를 주문한 고객이 길면 37일을 기다릴 수 있다고 예상했다. 미 블룸버그통신은 “지난달 22일 아이폰14 프로를 주문한 미국 고객은 크리스마스 이후인 12월 30일이 돼서야 제품을 받을 수 있다”고 전했다. 현재 아이폰14 프로 모델은 전 세계 아이폰14 시리즈 판매량의 85~90%를 차지하고 있다.

아이폰 생산이 이달 중순부터 개선되고 있지만, 미국 등에서는 아직 20일 이상 기다려야 할 정도로 신제품 공급이 원활하지 못하다.

일러스트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 ‘아이폰 시티’에 갇힌 사람들
중국 정부는 이달 초까지 3년째 ‘제로 코로나’ 정책을 유지해왔다. 사람들의 도시 간 이동을 통제하는 것은 물론이고, 아파트 출입구까지 봉쇄했다. 14억 중국인에게 거의 매일 의무적으로 유전자증폭(PCR) 검사를 받도록 했다. 또, 확진자뿐만 아니라 밀접 접촉자까지 무차별적으로 시설에 격리했다. 취약한 의료 시설과 ‘물백신’으로 불리는 중국산 백신 접종, 고령의 낮은 접종률 등이 위험 요소로 꼽히면서 중국 정부가 사람 간 접촉을 강력하게 막는 방향으로 정책을 써온 것이다. 일본계 투자은행 노무라증권에 따르면 지난달까지 중국 37개 도시에서 3억4000만 명의 외출이 통제됐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1일 “중국은 20년 동안 항공모함을 만들고 달에 우주선을 보냈으며, 두 번의 올림픽을 개최했다. 그런데 중국 인구 10만 명당 중환자실 병상수는 4.3개에 불과하다”며 중국의 열악한 의료 시설을 비꼬았다.

‘아이폰 시티’로 불리는 중국 남부 허난성 성도(省都)인 정저우시도 예외는 아니었다. 정저우시는 코로나19 감염자가 속출하자 10월 중순 주민 1300만 명에게 이동 금지 명령을 내렸다. 정저우시의 한 마을은 주민들의 이동을 단속하기 위해 10~13세 어린이들까지 자원봉사자로 모집했다. 붉은 스카프를 두르고 확성기를 손에 쥔 어린이들은 사람들의 마스크 착용을 감시하고, 주민들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요청했다.

정저우시에 있는 폭스콘 공장은 외부와 차단하는 ‘폐쇄 루프’ 방식을 도입했다. 직원들을 공장 내부에 숙식시키며 작업을 이어 나간 것. 30만 명의 직원들이 기숙사와 생산라인 사이만 오가며 사실상 사생활을 모두 통제당했는데, 먹거리가 문제가 됐다. 회사가 직원 식당을 폐쇄하면서 나눠준 음식들이 직원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음식은 형편없는 수준을 넘어서서 자주 바닥이 났고, 기숙사에 라면이나 빵, 우유만 전달되는 날도 있었다.

폭스콘 정저우 공장에서 10년간 아이폰을 조립한 샤오(30)는 “밥과 잘게 썬 감자, 콩나물 튀김 같은 음식이 나왔는데, 포장과 접시에서 이상한 냄새가 났다”며 “아프거나 방에 격리돼 공장에 가지 않은 사람들은 그마저도 못 받기도 했다”고 전했다. 코로나19 검사도 직원들의 불만 중 하나였다. 검사 속도를 높이고 비용을 낮추기 위해 회사는 20명을 검사한 각각의 면봉을 하나의 시약에 넣었다. 이후 검사 결과가 양성으로 나오면 20명 전부를 추가 검사를 위해 격리했다. 일부 사람들은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되지도 않았는데, 여러 번 격리되기도 했다. 방에는 처리하지 못한 쓰레기가 계속 쌓였다.

정저우시의 한 마을은 주민들의 이동을 단속하기 위해 10~13세 어린이들을 자원봉사자로 모집했다. 붉은 스카프를 두르고 확성기를 손에 쥔 어린이들은 사람들의 마스크 착용을 감시하고, 주민들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요청했다. 트위터 캡처
정저우시의 한 마을은 주민들의 이동을 단속하기 위해 10~13세 어린이들을 자원봉사자로 모집했다. 붉은 스카프를 두르고 확성기를 손에 쥔 어린이들은 사람들의 마스크 착용을 감시하고, 주민들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요청했다. 트위터 캡처
● 애플 ‘플랜B’ 본격화
참다못한 직원들의 탈주 행렬이 시작됐다. 10월 말, 수백 명의 폭스콘 노동자들이 짐과 이불 등을 들고 고속도로를 따라 걷거나 밀밭을 가로질러 가는 모습이 소셜미디어에 등장했다. 어떤 직원들은 공장 벽을 뛰어넘었다. 무려 10시간을 걸어 집에 도착한 사람도 있었다. 혼란은 시위로 번졌다. 수당을 올려 달라며 직원들이 들고 일어났다.

탈주와 시위로 아이폰 조립 라인 근로자가 절반 이하로 줄자, 회사는 직원 달래기에 나섰다. 미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폭스콘은 처음 노동자들에게 하루에 14달러(약 1만8300원)를 추가로 제공하겠다고 밝혔는데, 며칠 뒤 이 금액은 55달러(약 7만1700원)로 거의 4배가 됐다. 정저우시는 공산당원과 공무원, 퇴역 군인 네트워크를 활용해 아이폰을 조립할 사람을 수소문했다. 애플을 돕기 위해 나선 중국의 참전 용사들은 사람들에게 “폭스콘의 월급이 꽤 괜찮다”고 홍보했다.

태평양 건너에서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애플은 아시아 다른 나라로 아이폰 생산의 무게 중심을 옮기기 시작했다. 애플이 2년 안에 인도에서 아이폰 생산 여력을 3배로 확대하겠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맥북과 아이패드의 생산시설 일부도 이전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애플은 미·중 갈등이 시작된 2018년 폭스콘을 통해 인도, 베트남 등 중국 이외의 지역에서 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는데, 대부분 구형 아이폰이었다. 팬데믹을 겪고, 올해 들어서야 아이폰14 같은 신제품 생산 일부의 인도에 맡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최근 중국 정부의 강력한 코로나19 통제 정책으로 애플 공급망 분산에 불이 붙은 것이다.

미 CNBC에 따르면 애플은 최근 폭스콘·페가트론·위스트론 등 3개 협력사에 인도 생산능력과 인력을 늘리도록 지시했으며, 폭스콘은 인도 자회사에 5억 달러(약 6500억 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대만 기업인이지만 중국과 친분이 두터운 궈타이밍 폭스콘 창업자는 “엄격한 방역이 세계 공급망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지위를 위협할 수 있다”며 중국 고위 관료에게 편지를 보냈다. 중국은 8일 ‘상시적 전수 PCR 검사’를 폐지하는 등 코로나19 통제를 완화했지만, 돌아선 애플의 마음을 잡지는 못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진짜 늦었다.

지난달 23일 중국 허난성 정저우 폭스콘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흰색 방호복 차림의 보안요원, 공안(경찰)들과 대치하고 있다며 중국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영상 속 장면. 공장 기숙사에서 몰려나온 이들은 상여금 등 임금 지급과 작업 환경 개선 등을 요구했다. 중국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영상들은 삭제됐다. 웨이보 캡처
지난달 23일 중국 허난성 정저우 폭스콘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흰색 방호복 차림의 보안요원, 공안(경찰)들과 대치하고 있다며 중국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영상 속 장면. 공장 기숙사에서 몰려나온 이들은 상여금 등 임금 지급과 작업 환경 개선 등을 요구했다. 중국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영상들은 삭제됐다. 웨이보 캡처
● ‘플랜A’ 만든 팀 쿡 CEO
애플에 있어 중국은 제품을 생산하는 장소 그 이상이다. 제조와 소비의 구심점이다. 잡스가 세상을 떠나고 사람들이 회사를 걱정할 때 애플은 보란 듯 어마어마하게 성장했다. 여기에 중국의 힘이 컸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팀 쿡이 10년 전 최고경영자(CEO)에 오른 이후 애플의 시가총액은 2조 달러(약 2690조 원) 이상 증가했다. 잡스 없이도 해냈다.

잡스는 애플 사업 초창기 매킨토시 컴퓨터 공장을 미국에 지었다. 애플 초기 제품과 같은 순백의 공장이었다. (잡스는 흰 장갑을 끼고 먼지를 확인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1998년 쿡 현 CEO가 애플에 합류하면서 중국에 공급망을 갖추기 시작했다. PC 제조사 컴팩에서 공급망을 관리하던 쿡이 애플에서 자신의 강점을 발휘한 것.

쿡은 밝은 성격이지만, 꼼꼼하고 세밀하게 일하는 타입이라는 평이 많다. 때로는 엄하다. 월터 아이작슨이 쓴 스티브 잡스 전기에 그의 경영 스타일을 보여주는 일화가 등장한다.
쿡은 애플의 사장이 되기 전, 중국의 한 부품 공급업체에서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표정이 심각해진 쿡은 직원들에게 “이건 정말 안 좋은 일입니다. 누군가 중국에서 이 문제를 직접 조율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회의가 끝나고 30분이 지난 뒤, 쿡은 한 중국 담당 임원에게 다가갔다. 그러고 나서 조용히 물었다. “왜 아직도 여기에 계십니까?” 임원은 자리에서 일어서자마자 샌프란시스코 공항으로 차를 몰았다. 그러고 나서 가장 빠른 중국행 표를 샀다.
이코노미스트는 “쿡은 쾌활함으로 잡스의 마음을 진정시켰고, 무시무시한 성실함(오전 4시에 기상함)으로 아시아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공급망을 구축했다”고 2019년 전했다.

쿡이 중국에서 안정적으로 공급망을 구축할 수 있었던 데에는 궈타이밍의 공도 컸다. 그는 수년 동안 중국을 방문하면서 ‘꽌시(연줄 문화)’를 만들었는데, 이때 만들어놓은 네트워크로 2010년 아이폰 대량 제조 인프라를 빠르게 구축했다.

중국의 지방 정부(정저우시)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일자리와 기술 때문이다. 폭스콘이 현재 중국에 직간접적으로 창출한 일자리만 100만 개가 넘는다.

중국 정부는 애플의 중국 입성 자체를 가치 있는 투자로 봤다. 시푸 허난대 경제학 교수는 “폭스콘은 허난성 수십만 명의 사람들을 훈련하는 데 도움을 줬다. 그들은 그 기술을 사용해 다른 곳에서 일할 수 있다”고 했다. 기술을 배워 놓으면 굶어 죽진 않는다고 하는데, 중국 관료들도 똑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팀 쿡 CEO의 연설 모습. AP 뉴시스
팀 쿡 CEO의 연설 모습. AP 뉴시스
● 정저우 스피드
정저우시는 폭스콘 공장과 기숙사 건설에 15억 달러(1조9300억 원)가 넘는 보조금을 약속했고, 공장 인근에 100억 달러(12조8800억 원)를 들여 인근 공항을 대규모로 확장해줬다. 이뿐만이 아니다. 폭스콘 공장의 에너지 비용을 할인해주고, 직원들의 교통비와 보험료까지 깎아줬다.

더 놀라운 것은 인프라 구축 ‘속도’였다. 정저우에서 농사를 짓는 장 하이린은 “2010년 초, 동네에 헬기가 옥수수밭 위를 돌더니 3일 후 불도저 100대가 왔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2010년 8월 정저우에 폭스콘 공장이 건설됐고 정부의 영업 허가도 떨어졌다. 정저우시는 심지어 빠르게 완성품을 나를 수 있도록 공장 바로 앞에 세관 시설까지 만들어줬다. 또, 정저우의 지방 공무원들은 마을마다 전화를 걸어 폭스콘 노동자를 찾는 것도 도왔다. 정부는 노동자를 데려온 공무원에게 보조금을 줬다.

아이폰을 조립하겠다는 일념하에서 중국 공무원과 폭스콘 직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 것. 먼지투성이인 중국 중부의 평야는 거대한 산업 단지로 탈바꿈했다.

당시에 공장 설립에 참여했던 제프 윌리엄스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정말 감명받았다. 그들은 매우 집중했다”고 했다. 잡스도 “공장에 레스토랑, 영화관, 병원, 수영장이 다 있다. 공장치고는 꽤 좋은 곳”이라고 정저우시 폭스콘 공장을 호평한 바 있다.

정저우 공장에서 아이폰의 탄생과 여정은 다음과 같다. 공장은 전 세계 200개가 넘는 공급업체로부터 부품을 받는다. 이후 94개의 생산 라인에서 광택, 납땜, 나사 장착 등 400여 단계를 거친다. 이렇게 조립된 아이폰은 공장 앞 세관을 거쳐 보잉의 대형 여객기인 747 점보기를 타거나, 대형 트럭에 실려 대륙을 가로지른다.

정저우 공장은 하루에 50만 개(1분당 350개)의 아이폰을 생산할 수 있다. 정저우시 관계자들은 중국에서 아이폰을 미친 듯이 찍어내는 것을 두고 ‘정저우 스피드’라고 불렀다.

폭스콘 중국 정저우 공장에서 직원들이 제품을 조립하고 있다. 트위터 캡처
폭스콘 중국 정저우 공장에서 직원들이 제품을 조립하고 있다. 트위터 캡처
● 애플이 중국을 택한 이유 ①
애플과 쿡은 왜 중국을 공급망 핵심 기지로 택했을까. 애플은 2005년부터 ‘퍼플2’라는 코드명의 프로젝트를 작업하고 있었다. 이 프로젝트는 최고의 스마트폰을 만드는 것이 표면적인 목표였는데, 구체적으로는 제품의 품질을 높이면서도 빠르고 저렴하게 수백만 대의 물량을 만들어낼 수 있는 곳을 찾는 것이었다.

쿡은 중국이 해답이라고 봤다. 공급망 관리(클러스터 형성)에 유리하고 유연한 노동 여건이 매력적이라고 판단한 듯하다. 아이폰 안에 들어가는 수백 개의 부품 중 90%는 유럽(반도체)과 아시아(디스플레이), 아프리카(소재) 등 해외 각국에서 조달되는데 다수의 업체가 중국에 공장을 보유하거나, 낮은 인건비를 고려해 중국 진출을 계획하고 있었다.

실제로 중국에 아이폰 클러스터(산업 단지)가 차츰 형성됐다. 현재 애플의 공식 부품 공급업체는 190곳인데, 이 중 160곳이 중국 내륙에서 생산한다.

애플은 이를 이용해 제품 생산을 적시에 하고, 효율성도 극대화했다.

2007년 아이폰 출시를 한 달 앞두고 아이폰의 시제품을 써본 잡스는 청바지 주머니에서 열쇠와 함께 꺼낸 아이폰의 플라스틱 화면에 흠집이 난 것을 보고 플라스틱 화면을 유리로 바꿀 것을 지시했다. (신비월드 21화, ‘애플은 왜 접는 폰을 안 만들까?’ 참고)

애플은 코닝이라는 미국 회사에서 강화유리 거대 패널을 제조했다. 그런데, 이 유리를 수백만 개의 아이폰 크기로 자르는 게 문제였다. 유리 절단 공장, 테스트에 쓸 엄청난 양의 유리와 숙련된 노동자들이 필요했다.

애플은 중국에서 이를 해결할 공장 소유주를 만났는데, 이 공장은 애플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일부 설비까지 미리 갖춰놓은 상태였다. 준비한 창고에는 테스트에 필요한 유리 샘플을 채워놨고, 기숙사에 24시간 호출이 가능한 숙련된 노동자들을 준비시켰다.

결국 공장은 계약을 따냈다. 애플도 6주 안에 완벽하게 유리 화면으로 새 아이폰 모델을 재설계할 수 있었다.

한 애플 전 임원은 NYT에 “고무마개 1000개를 만들 수 있는 공장이 바로 옆에 있고, 나사 100만 개가 필요하면 한 블록 뒤 공장을 찾아가면 된다. 나사 모양이 다른 게 필요한가? 3시간이면 구한다. 전체 공급망이 중국에 있다”고 전했다.

NYT가 2012년 전현직 애플 임원들을 인터뷰한 이 기사에 따르면 애플은 해외 공장 생산을 계획할 때 낮은 임금을 최우선 순위로 두지 않았다. NYT는 “인건비는 수백 업체로부터 부품을 확보하는 공급망 비용에 비하면 인건비는 미미한 수준”이라고 전했다.

폭스콘 중국 정저우 공장에서 직원들이 제품을 조립하고 있다. 트위터 캡처
폭스콘 중국 정저우 공장에서 직원들이 제품을 조립하고 있다. 트위터 캡처
● 애플이 중국을 택한 이유 ②
중국의 열악한 노동권도 애플에 도움이 됐다. 폭스콘은 정저우 공장이 설립되고 10여 년 동안 노동자들에게 한 달에 하루, 이틀만 휴가를 줬고, 초과 근무에도 제한을 두지 않았다. 직원들도 워라밸보다는 더 많은 임금을 원해 불만이 없었다.

한 번은 애플이 아이폰 신제품을 출시하기 직전에 화면을 재설계 해, 조립 라인을 다시 점검해야 했는데, 새 스크린이 자정 무렵에 공장에 도착했다. 공장 관리자는 곧바로 기숙사에 있던 8000명의 직원을 깨웠다. 비스킷과 차 한 잔을 받은 직원들은 업무 자리로 이동해 12시간 교대 근무를 시작했다.

작업량이 부족한 날에는 하룻밤 사이에 3000명을 추가로 고용하기도 했다. 2010년까지 애플에서 공급주문 담당자였던 제니퍼 리고니는 “하룻밤 사이 3000명을 고용하고, 이들에게 기숙사에 살라고 할 수 있는 미국 공장이 있나”라고 되물었다. 맞는 말이다. 전 세계 어디에도 없을 것 같다. (과거 폭스콘 선전 공장에서는 관리자가 직원에게 팔굽혀펴기를 시켜 논란이 일었다. 또, 유독성 화학 물질 사용과 폭발 사망 사고, 근로자 자살이 문제가 되면서 애플과 폭스콘은 결국 중국 노동자 처우 개선에 나서기도 했다)

애플은 정저우 노동자들의 숙련도도 근면성 못지않게 중요한 요소로 봤다. 쿡은 “공급망이나 인건비가 다가 아니다. 중국에서 제품을 만드는 것은 비용 때문이 아니라 기술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아이폰을 만들 수 있는, 중간 정도의 기술력을 갖춘 인력이 중국 외에 충분치 않다는 설명이다.

스마트폰 조립하는데 무슨 그리 대단한 기술력이 필요할까 싶지만, 반복된 작업에서 균일한 품질을 만들어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쿡은 2017년 포춘 글로벌 포럼에서 “애플 제품에는 고급 세공이 필요하고, 이 기술은 중국이 매우 뛰어나다”라고 언급했다. 부품을 정밀하게 고정하고, 다듬는 데에는 중국 노동자가 최고라는 의미다.

팀 쿡 애플 CEO가 2012년 폭스콘 중국 정저우 공장을 방문했을 때 모습. 당시 애플은 아이폰과 아이패드가 중국 공장의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만들어진다는 부정적인 여론으로 홍역을 치렀다. 애플 CEO가 중국 공장을 방문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동아일보 DB
팀 쿡 애플 CEO가 2012년 폭스콘 중국 정저우 공장을 방문했을 때 모습. 당시 애플은 아이폰과 아이패드가 중국 공장의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만들어진다는 부정적인 여론으로 홍역을 치렀다. 애플 CEO가 중국 공장을 방문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동아일보 DB
● ABC(Anywhere But China)보다 ‘차이나+알파’
이러한 점 때문에 애플의 탈중국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11년 전, 오바마가 제조 기반을 미국으로 되돌릴 수 없느냐는 질문에 잡스가 “(아이폰을 조립하는) 그런 일자리는 미국으로 되돌아오지 않을 겁니다”라고 답했던 이유도 결국 공급망 문제 때문이었을 것이다.

인건비를 떠나 공급망의 다양한 요소를 고려했을 때 중국에서 제조 기반을 옮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애플을 포함해 공급망 이전을 고려하는 기업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공장을 옮긴 지역에서 부품이나 소재를 구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의 이반 람 수석 애널리스트는 “아이폰의 부품 중 대부분이 여전히 중국에서 생산되고 있고, 이들은 장치가 조립되는 곳으로 배송돼야 한다”고 했다. 생산되는 곳에서 최종 조립까지 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일 것이다. 이동에는 비용이 따른다. 고객이 있는 시장과의 거리도 고려해야 한다.

인프라도 걱정거리다. 블룸버그는 “중국에 익숙한 글로벌 사업자에게 다른 지역에서의 물류는 효율적이지 않을 것”이라면서 “베트남 하노이에서 호찌민까지 속달 우편이 도착하는 데 최대 4일이 걸릴 수 있다. 이 같은 지연은 중국에서 발생하지 않는다”고 8월 전했다.

탈중국으로 발생하는 비용을 소비자들이 이해해줄까 하는 근본적인 질문도 있다. 블룸버그는 “과연 공급망이 멀쩡할 때도 사람들이 돈을 더 내려고 할까?”라고 되물었다.

공장을 옮기면 당장 제조 비용과 제품 가격이 올라갈 텐데, 공급망 차질이 정상화된 상황에서 사람들이 돈을 더 쓰겠느냐는 의미다. 어쩌면 중국에 그냥 남아 있는 회사가 ‘위너’가 될 수 있다. 제조 공장을 옮기면, 현지에서 대규모 노동력을 구해야 하고 당국의 규제를 하나하나 맞춰야 하는 문제도 발생할 것이다.

새로운 공급망 개발에서 더 싼 인건비는 생각보다 큰 메리트가 아닐 수 있다. 기업들이 중국보다 인건비가 더 싼 인도나 베트남으로 몰리게 되면 해당 지역의 인건비도 올라갈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경쟁이 붙어서 인력 구하기에 애를 먹을 가능성도 있다. 기업들이 공급망 재편, 특히 탈중국을 고민하면서도 쉽사리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이유다.

그런데도 중국에서 일단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은 많이들 하는 것 같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가트너가 8월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응답 기업 중 95%가 ‘중국에 제조 시설을 두는 것을 재고하고 있다’고 답했다.

미국 정부의 중국 견제와 양안 갈등 같은 정치적인 이슈로 기업이 부담해야 할 리스크가 너무 크다고 느낀 것이다. 중국 정부의 강력한 코로나19 통제는 기업들이 효율성이 다가 아니라는 생각도 갖게 했다.

다만 기업들은 ‘중국 아니면 어디든!’이라는 ‘ABC(Anywhere But China)’ 기조보다는, 당분간 중국 공장은 그대로 두고 다른 공급망을 추가하거나 보완하는 ‘차이나+알파’를 꾀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서 단순히 공장이 아니라 중국이 가진 ‘생산 체인’을 다른 지역에 옮길 수 있을지, 비용은 얼마나 더 들지 등을 따져볼 것이다.

신호정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정부의 지원이나 응급 노동비용, 수요 패턴에 대응하는 인력의 유동성 등 초기 중국이 지녔던 장점이 약화되는 시점에서 애플의 공급망 재편 이슈가 나왔다”면서 “장기적으로 부품 조달 등의 문제에서 해법을 찾아가면서 폭스콘, 중국과 차차 거리를 둘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는 애플이 중국 생산 여력의 10% 수준을 타 국가로 이전하는 데만 약 8년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뉴스가 쏟아지고 당장 엄청나게 바뀔 것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한참 걸린다는 의미다. 공급망을 바꾸는 것은 그만큼 복잡하고도 어려운 일이다.

김성모 기자 m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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