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러스 英총리, 44일만에 사임… 英 역사상 최단명 기록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0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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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세안 내놨다 금융혼란 불러

사퇴 밝히는 트러스 英총리… 지켜보는 남편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왼쪽)가 20일(현지 시간)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총리관저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굳은 표정으로 사임 의사를 밝히고 있다. 트러스 총리는 취임 직후 대규모 감세안을 발표해 
파운드화 급락 등 세계 금융시장에 대혼란을 일으킨 뒤 당 안팎에서 사퇴 압박을 받아왔다. 취임 44일 만에 사임해 ‘영국 역사상 
최단명 총리’가 됐다. 오른편에서 남편 휴 올리리가 기자회견을 지켜보고 있다. 런던=AP 뉴시스
사퇴 밝히는 트러스 英총리… 지켜보는 남편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왼쪽)가 20일(현지 시간)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총리관저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굳은 표정으로 사임 의사를 밝히고 있다. 트러스 총리는 취임 직후 대규모 감세안을 발표해 파운드화 급락 등 세계 금융시장에 대혼란을 일으킨 뒤 당 안팎에서 사퇴 압박을 받아왔다. 취임 44일 만에 사임해 ‘영국 역사상 최단명 총리’가 됐다. 오른편에서 남편 휴 올리리가 기자회견을 지켜보고 있다. 런던=AP 뉴시스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가 20일(현지 시간) 사의를 밝혔다. 지난달 6일 취임한 지 44일 만이다. 취임 직후 대규모 감세안을 발표했다가 파운드화 가치 급락으로 세계 금융시장을 대혼란에 빠뜨리며 사퇴 압박을 받아오다가 결국 물러났다. ‘제2의 마거릿 대처’를 표방하며 ‘영국 역사상 최초의 40대 여성 총리’로 출발했던 트러스 총리는 ‘영국 역사상 최단명 총리’라는 오명을 안았다.

트러스 총리는 이날 런던 총리 관저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공약을 지킬 수 없어서 물러난다”며 “장기간 이어진 경기침체를 해결하라는 소명을 가지고 선출됐지만 현 상황에선 총리로서 임무를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집권 보수당은 다음 주 후임 총리 선출을 위한 경선을 연다. 지난 경선에서 트러스 총리에게 패했던 리시 수낵 전 재무장관 등이 유력한 차기 총리로 거론된다. 하지만 야당인 노동당이 “즉각 총선 실시”를 요구해 혼란이 예상된다.

트러스, 감세안 실패로 리더십 치명상… 英 사상 최단명 총리 오명


英총리 44일만에 사임


“난 싸우는 사람” 野사임 요구 일축… 측근 내무장관 사임에 결국 백기
전임 존슨도 내각 사퇴에 물러나… 野, 총선 요구… 정계 혼란 가능성
가디언 “보수당 실험은 죽었다”… 보수당 “28일까지 후임선거 가능”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는 집권 보수당 내 총리 경선 때부터 ‘철의 여인’으로 불린 마거릿 대처 전 총리의 노선을 따르겠다는 뜻을 밝혀 ‘제2의 대처’로 불렸다. 하지만 취임 직후 성급하게 발표한 고소득자 소득세율 인하를 중심으로 한 대규모 감세안이 재정 건전성에 대한 우려로 이어졌다. 이는 영국 국채 금리 급등과 파운드화 급락을 불러 세계 금융시장에 대혼란을 초래했다. 이후 영국 중앙은행이 국채를 사들이는 등 긴급하게 개입해 일시적으로 혼란을 수습했지만 “영국이 세계의 문제 국가가 됐다”는 비판이 나오는 등 영국의 국가 신뢰도가 추락했다.


이로 인해 정치적 치명타를 입은 뒤 ‘좀비 총리’로 불릴 정도로 리더십이 훼손됐다. 수세에 몰린 트러스 총리는 감세 정책을 추진한 쿼지 콰텡 재무장관을 임명 38일 만에 해임하며 반전을 시도했다. 하지만 보수당 내에서 트러스 총리를 축출해야 한다는 여론이 커졌다. 19일 수엘라 브래버먼 영국 내무장관이 “정부가 공약을 깼다”며 사임하면서 트러스 총리의 입지는 더욱 줄어들었다. 결국 트러스 총리는 영국 역사상 최단명 총리가 됐다. 직전 기록은 19세기 초반 취임 119일 만에 사망한 조지 캐닝 총리다.
○ 측근 장관들 잇단 사퇴에 못 버틴 듯
BBC에 따르면 브래버먼 장관은 “정부 업무에 잘못이 있다면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며 “우리가 잘못한 게 없다고 하면 사람들이 모를 것이며 모든 일이 마법처럼 잘되리라고 바라는 것은 진지한 정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핵심 정책인 대규모 감세 정책을 철회해 놓고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트러스 총리를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앞서 제러미 헌트 신임 재무장관이 17일 ‘트러스표’ 감세 정책을 사실상 백지화하면서 트러스 총리는 사실상 ‘식물 총리’나 다름없게 됐다.

트러스 총리는 19일만 해도 하원에서 개최된 정례 주간 총리 질의응답에 참석해 야당의 사임 요구에 “나는 싸우는 사람(fighter)이지 그만두는 사람(quitter)이 아니다”라고 일축했지만 각료들이 잇달아 사임하는 등 당 안팎에서 거세지는 사임 압박에 더는 버티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전임 보리스 존슨 전 총리 역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방역 수칙을 어긴 ‘파티 게이트’ 및 이에 대한 거짓 해명으로 사퇴 압력을 받았음에도 버티다가 최측근 리시 수낵 전 장관이 사표를 던진 이후 장관들 사퇴가 이어지자 총리 직을 내놨다.
○ 보수당 “다음 주 경선”에 야당 “총선 요구”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가 20일(현지시간) 런던 관저 앞에서 총리직 사임성명을 발표한 후 다우닝가 10번가로 다시 들어가고 있다. 44일만의 최단명 총리를 기록했다. 런던=PA-AP/뉴시스
영국 언론들은 신임 총리가 44일 만에 사퇴한 초유의 사태를 강하게 비판했다. BBC는 “우리 현대사에서 일어난 가장 빠른 수반 교체다. 10월에 영국은 올 들어 세 번째 총리를 맞게 된다”고 보도했다. 가디언은 “보수당의 실험은 죽었다. 용서하지 말고 잊지 말자”고 논평했다.

집권 보수당은 이날 “28일까지 후임 선거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가디언은 대부분의 보수당 중진 의원들이 수낵 전 재무장관을 지지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경선 3위였던 페니 모돈트 국제통상장관, 벤 월리스 국방장관 등이 총리 후보로 거론된다. CNN은 일각에서는 보리스 존슨이 다시 전면으로 복귀할 가능성도 거론된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보수당보다 지지율이 크게 높은 야당 노동당이 총선을 요구하고 있어 영국 정계가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져들 가능성도 크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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